‘무탄소전원’으로 포장한 기후위기 대응 포기 계획… 11차 전기본 실무안 전면 재수정되어야
- 턱없이 부족한 재생에너지 비중, 현 정부의 탄소중립기본계획에도 부합 못해
- 신규 원전과 SMR 도입, 윤정부의 잘못된 핵발전 집착 보여줘
- 적극적인 에너지수요관리 손놓은채 부풀려진 전력수요
- 잘못된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바로잡기 위해 22대 국회가 적극 나서야
5월 31일,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하 ‘전기본’) 실무안이 발표되었다. 신규핵발전소 건설과 SMR 도입 계획을 포함하고 있는 반면, 재생에너지 비중은 턱없이 부족하다. 화석연료발전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적극적인 수요관리는 손놓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 무책임 할 뿐더러, 잘못된 방향을 담고 있는 방안이다. 에너지수요를 줄이면서 재생에너지를 중심으로 빠른 전환을 하고 있는 전 세계적 추세를 외면한채, 원전에 대한 잘못된 집착을 보여주는 계획이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무탄소전원’으로 포장한 기후위기 대응 포기 계획일 뿐이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탈석탄, 탈핵, 재생에너지 확대에 기반한 계획으로 전면 수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22대 국회가 적극 나서서 현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바로잡아야 한다.
이번에 공개된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이 있다. 첫째, 재생에너지 비중 관련한 문제다. 전기본은 2038년까지의 계획이나, 기후위기 대응에 있어서는 2030년까지의 기간이 매우 중요하다. 실무안은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을 2022년 23GW에서 2030년까지 72GW로 확대하여 COP28에서 합의한 재생에너지 3배 확대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3배 확대’ 목표는 국제사회의 평균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같은 선진국은 그 이상의 목표를 이루는 것이 공정하다. 더군다나 현재의 한국 재생에너지 비중이 OECD국가 중 꼴찌 수준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것을 기준으로 겨우 3배라는 수치를 맞춘 것은 오히려 부끄러운 일이다. 또한 실무안에 따르면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전체 발전량의 21.6%다. 윤석열 정부 들어 수립된 10차 전기본에서는 이전의 재생에너지 2030 발전비중 목표를 30.2%에서 21.6%로 대폭 낮췄다. 이에 대해 많은 비판이 쏟아지자, 2023년 제1차 국가탄소중립기본계획은 ‘21.6%+@’로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번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재생에너지 목표를 조금도 상향하지 않은 채 21.6%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다. 사실상 상위 계획인 탄소중립기본계획에 부합하지 않는 셈이다. 이미 영국은 2022년 재생에너지 비중이 40%였고, 독일은 2023년 50%를 넘어섰다는 점은, 이번 11차 전기본의 재생에너지 목표가 어떤 수준인지를 말해준다.
둘째, 새로운 핵발전소 건설과 검증되지 않은 SMR 도입 문제가 있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3기까지 신규핵발전소 추가 건설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신한울 3, 4호기 사업을 재개하고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을 시도하는 것 외에, 또 다른 신규 핵발전소 건설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11차 전기본은 윤 정부의 ‘원전 최강국’을 앞세운 핵발전 진흥 정책의 연장선상에 있다. 하지만 이는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잘못된 집착에 불과하다. 핵발전소은 위험하고, 비싸며, 탄소감축에 비효율적이라는 점에서 기후위기의 해법이 될 수 없다. IPCC와 IEA 등 국제기구들은 원전이 아닌 재생에너지를 온실가스 감축과 기후위기 대응의 핵심적인 수단으로 보고 있다. IPCC 6차 보고서에 따르면, 핵발전은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에 비해서 탄소감축역량이나 경제성 모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뒤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미 전 세계의 핵산업은 정체 내지 축소되고 있는 반면, 재생에너지는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설령 신규핵발전소의 건설이 예정대로 되더라도 실무안에서 밝힌 것처럼 2037년 이후에나 완공된다. 2030년까지의 기후위기 대응 골든타임 동안 무용지물인 수단이다. 게다가 SMR과 같이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고 개발도 완료되지 않은 기술을 전력공급계획에 도입하는 것은 매우 잘못된 발상이며, 기후위기 대응에 불확실성만을 높일 뿐이다. 독일은 마지막 핵발전소를 멈추는 와중에도 온실가스를 2023년 한해 동안 10%나 줄였다. 이는 1990년 이후 독일에서 가장 큰 폭의 감소이다. 유럽연합 역시 2022년 대비 2023년에 온실가스를 15.5%(전환부문 24%) 줄였는데, 이는 핵발전소가 아닌 재생에너지의 급증 때문이다. 윤정부의 원전 집착은 그저 지난 정부 정책과의 차별화와 핵산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일 뿐, 기후위기 대응이나 탄소중립과는 무관하다.
이 외에도 화석연료 발전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문제도 있다. 이번 실무안에 따르면 2030년 석탄과 LNG를 합한 화석연료의 비중이 42.5%에 달한다. 석탄발전 비중도 2030년 17.4%, 2038년 10.3%나 되어, 국제에너지기구 등이 말하는 선진국의 2030년 탈석탄 목표에 크게 못미친다. 또한 전력수요도 과도하게 부풀려진 것은 아닌지 검증이 필요하다. 11차 전기본의 2038년 목표수요 157.7GW는 10차 전기본의 2036년 목표수요 144.0GW에 비해 약 10%나 증가하였다. 전기화 등의 수요증가 요인을 감안하더라도 수요전망의 적절성에 의문을 갖게 한다. 또한 온실가스감축을 위해서는 에너지수요 자체를 줄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수단임에도, 수요관리목표는 10차 전기본의 17.7GW에서 11차 전기본 16.3GW로 오히려 후퇴했다. 에너지수요 관리정책을 포기한 채, 부풀려진 수요전망에 기반해서 원전 등 추가설비를 도입하는 잘못된 정책수립을 보여주는 것이다.
11차 전기본은 2030년부터 ‘무탄소전원’의 비중이 50%를 넘어서고, 2038년에는 70%를 넘어선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무탄소전원’이라는 용어는 턱없이 부족한 재생에너지 비중을 감추기 위해 핵발전소과 재생에너지를 뒤섞어 만든 단어일 뿐이다. 기후위기가 말해주는 바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에너지 생산과 소비 시스템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화석연료발전과 핵발전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쓰레기 – 온실가스, 방사능, 핵폐기물 – 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핵발전소과 재생에너지가 ‘무탄소전원’이라는 이름 하에 같이 분류될 게 아니라, ‘지속가능하지 않고 위험한 전원’으로 핵발전과 화석연료발전이 한데 묶여야 마땅하다. 현재 필요한 것은 탈화석연료, 탈핵, 재생에너지 확대의 내용을 담은 에너지전환계획이다.
정부는 11차 전기본 실무안을 전면 재수정하고 지금이라도 기후위기 대응에 부합하는 제대로 된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아울러 윤정부의 잘못된 에너지정책을 바로잡기 위해 국회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정부가 22대 총선의 민의에 귀기울일 의지가 없다면 국회가 나서야 한다. 이미 22대 총선에서 다수가 된 더불어민주당,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 야당은, 탈석탄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공약하였다. 아울러 신규핵발전소 추가건설 금지와 노후핵발전소 수명연장 금지를 선거과정에서 약속한 바 있다. 11차 전기본 실무안은 전면 재수정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어떤 역할을 하는지가, 기후위기 대응과 에너지전환을 위한 22대 국회의 의지를 보여주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핵발전소에 발목잡혀 시급한 기후위기 대응의 소중한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22대 국회는 잘못된 윤석열 정부의 에너지정책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문의 : 기후에너지팀 황인철 팀장(070-7438-8511, hic7478@green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