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오만 원. 2015년에 받았던 일당이다. 나는 당시 학생이었는데 돈이 당장 필요해서 돈 나올 구멍을 찾아다녔다. 그런 내게 졸업식은 기회였다. 2월 초면 학교 정문서부터 담장을 따라 꽃다발을 늘어놓고 파는 보따리장수들이 즐비했고, 나는 그중 한 군데서 일용 근로 계약을 맺고 꽃을 내다 팔았다. 한 다발에 이만 원, 풍성하고 예쁘게 포장된 다발은 특별히 이만 오천 원을 부르고는 여건에 따라 금액을 깎아가며 눈치껏 장사를 했다. 몇 시간만 고생하면 될 거라 생각했지만 꽃장수에게 자리 선점은 곧 그날의 판매 실적과 직결되었기에 늘 자리다툼이 치열했다. 빨리 나가 명당에 좌판을 펴자는 사장님의 지시에 맞춰 행사 시작 시각과 관계없이 집결 시간은 늘 새벽 여섯 시였다. 2월 초의 새벽바람은 아찔하다. 모자며 장갑이며 온갖 방한용품으로 무장해도 바람은 빈틈을 찾아 살을 에어 왔다. 식이 끝나고 사진촬영용 떨이 꽃을 사 가는 손님까지 받아야 했기에 오전 내내, 때로는 늦은 점심까지 밖에 서 있었다. 몸이 얼지 않도록 쉼 없이 움직였지만 발은 꽁꽁 얼고 감각은 사라졌다. 그럼에도 매번 추위와 싸울 수 있었던 건 막판에 쥐어지는 오만 원 때문이었다. 일을 한 꿀맛 같은 대가. 대가가 주어지는 한 내게 노동은 정의로운 일이었다. 일한 자는 돈을 받고, 일하지 않은 자는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야말로 공평한 계산법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의롭다고 여겼던 계산법은 ‘일하고 싶을 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된 이들에게만 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도 비 오니까 나오지 마.” 미장 공사를 하는 형부는 며칠째 울상이다. 건설 현장에 나갈 수 없었기 때문인데, 문제는 어디에도 읍소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예년보다 자주 내리는 비는 걸핏하면 형부의 밥벌이를 방해했다. 현장에 도착했는데 취소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일을 해야 돈도 받을 수 있고, 공사 기일도 맞추는데 날이 이래서는 어떤 것도 곤란했다. 노동 자체를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공정한 노동의 대가’를 바라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요즘 같은 여름엔 일을 하러 가도 걱정이다. 서 있기만 해도 땀범벅이 되는데 힘까지 쓰려면 오죽 힘들까 싶었다. 형부는 기력이 뚝뚝 떨어지다 못해 머리가 팽- 돌 때는 잠깐 쉬고, 물을 마신다고 했다. 불볕더위에 공업용 선풍기를 틀어봤자 후덥지근한 바람이 성가실 뿐이었다. 끈적거리도록 더운 날에 숨이 턱턱 막혀도 먹고살기 위해 형부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견디는 일이다.
뉴스에서는 지속되는 폭염과 산불 등 재난을 보도한다. 기후 위기 때문이라고 했다. 폭우, 태풍, 가뭄 등 하루하루 느껴지는 기상이변 역시 부정할 수 없는 기후 위기의 현실이다. 변화는 분명한데 이를 체감하는 방식은 모두 달랐다. 형부는 휘청거리는 일터에서 기후 위기를 체감했고, 반지하에 작업실을 둔 언니는 폭우에 침수 걱정하는 날이 늘었다고 했다. 그러나 어떤 친구는 ‘여름이니 당연히 더운 거’라며 그저 비가 많이 와서 장화를 하나 샀을 뿐이라 했고, 전 직장 동료는 사무실이며 버스며 시원하다 못해 추울 정도여서 바깥만 안 나가면 견딜만하다고 웃었다. 동시대를 살지만 재난은 불공평하게 찾아왔다. 기후 위기의 인과관계는 복잡하고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삶을 위협하는 기후재난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치부하거나, 한 개인의 불운함이나 노력 부족 탓으로 돌리기도 한다. 그러나 전 세계 과학자들이 합심해 기후변화를 측정하고 대응하려는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의 보고서를 비롯한 수많은 연구결과에 따르면, 기후변화를 일으키고 가속화하는 것은 화석연료 사용, 개발로 인한 토지이용 변화, 생태계 훼손 등이다. 그리고 그 뒤에는 이를 주도하며 이익을 가져가는 이들, 기후위기에 더 많은 책임이 있는 유발자들이 있다.
지금 한국은 어떤 모습일까? 기후재난이 삶에 균열을 불러와도 정부와 지자체는 아랑곳하지 않고 더 빠른 성장, 더 많은 개발에만 빠져있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 원전산업을 진흥하고, 환경을 망치고 탄소를 배출하는 신공항을 지어 경제 부흥을 일으켜보겠다는 심산이다. 줄여도 모자랄 화석연료를 채굴하겠다며 동해에 석유 가스전 개발을 시도하고, 국립공원의 자연 생태를 망가뜨리는 케이블카와 개발사업 역시 전국 곳곳에서 우후죽순으로 추진되고 있다. 반지하주택 침수를 예방할 수 있는 차수판 사업은 부동산가격 하락 우려를 구실로 설치를 지연시키며 시민의 안전을 방치하는 반면, 지역을 희생 삼아 이미 막대한 전기를 사용하고 있는 수도권에는 세계 최대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더 건설하겠다고 한다. 이윤창출에 몰두할수록 기후변화와 재난의 범위 역시 가파르게 우리의 삶을 파고든다. 문제는 이윤을 누리는 이들과, 그로 인한 재난을 당하는 이가 다르다는 데 있다. 물이 새는 부서진 틈을 막아주지는 못할지언정, 더 많은 물을 들이붓는 격이다. 그러는 사이 틈은 더 벌어지고 균열은 방치된다.
“기후가 아니라 세상을 바꾸자”는 907기후정의행진은 이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기후 위기는 이미 시작되었다. 어떻게 대처할지야말로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몫이다. 지금과 같은 이윤에 집중한 사회구조를 벗어던지고 ‘누구나 살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9월 7일 강남에서 함께 걷는다. 지금의 위기가 기상이변 그 이상의 문제라고 느낀다면, 불의한 세상에 함께 목소리 내고 싶다면, 기후위기를 유발한 잘못된 세상을 변화시키고 싶다면, 9월 7일, 함께 행진하자.
글. 오송이(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활동가)
*이 글은 빅이슈 코리아에 기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