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온난화 기획연재] 쓰레기가 희망이다

2008.09.08 | 기후위기대응

폐식용유·잡목·축산 분뇨 등으로 에너지 만드는 오스트리아 무레크…

“원자력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

7월8일 볕이 뜨거운 여름날. 오스트리아 동남쪽 끝 슬로베니아와 접한 국경마을 무레크에 도착했다.

인구 1700명의 작은 마을에는 입구부터 어른 키의 두 배는 될 법한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었다. 빽빽하게 심어진 옥수수밭을 따라 걸으면 3층 건물 높이의 초록색 원통형 건물 여섯 채가 나타난다. 이곳 소화조 속에서는 고동색 액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인근 20여 개 돼지농장에서 모아온 똥이랑 옥수숫대, 볏짚, 유채대 등이 한데 섞여 발효되고 있는 것이다. 박테리아와 효모균이 거름을 분해해 메탄을 생산해내는데, 메탄은 천연가스(LNG)의 주성분이다. 국내에서는 비료를 만들거나 물로 정화 처리를 하고 마지막 남은 찌꺼기는 바다에 버려 말썽을 일으키는 가축 분뇨가 이곳에서는 전기를 생산하는 연료로 변신하고 있었다. 여기서 만든 메탄은 열병합발전 연료로 쓰이고, 무레크 주민이 1년 동안 쓰고도 남는 8400MWh의 전기를 생산해낸다. 이곳은 바로 무레크의 발전소, 외코스트롬이다.

완전한 순환, 찌꺼기를 사료·비료로

외코스트롬 옆에는 잡목과 포장회사에서 쓰고 남은 자투리 목재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농부 칼 토터가 대표로 있는 지역난방회사, 나베르메의 창고다. “창고가 가득 차면 무레크 주민들은 1년 동안 연료 걱정 없이 지내요. 마을에서 50km 정도 안쪽에 있는 숲에서 불필요한 잡목들을 베어와요. 나무를 태워 물을 데웁니다. 데워진 물은 마을 전체에 깔아둔 파이프라인을 통해 마을 공공시설과 가정의 난방을 책임집니다.” 토터의 설명이다.

나베르메 바로 옆에는 바이오디젤 생산회사 SEEG가 자리잡고 있다. SEEG는 1989년 지역 주민 570명과 칼 토터가 손을 잡고 세운 회사로, 유채와 폐식용유를 이용해 연간 1천만ℓ의 식물연료와 바이오디젤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만들어진 바이오디젤은 지역의 자동차와 트랙터 등 농기계에 연료로 쓰이고, 무레크에서 30km 떨어진 그라츠에서 운영되는 바이오디젤 버스 152대의 연료로도 공급된다. 지역의 난방, 전기, 수송에너지를 책임지는 것은 물론 다른 지역에 팔기까지 해서 수익을 만들어내는 ‘바이오에너지 삼총사’가 모여 있는 이곳은 무레크의 바이오에너지 거리다.

무레크의 에너지 자립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 1985년 12월30일 추운 겨울밤. 칼 토터를 포함한 세 명의 농부가 언제나처럼 맥줏집에 모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농부들은 날로 떨어지는 곡물 가격과 매년 남아도는 곡물·사료로 근심이 깊었다. 정부 보조금을 받고 수출하기보다 지역에서 답을 찾고 싶었다. 때마침 가격이 오르던 에너지 문제를 이야기하다가 세 사람은 ‘에너지 농사’에 대해 토론하기 시작했다. 토터는 “대기업들만 에너지를 판매해서 돈을 벌라는 법은 없다. 우리도 밭에서 유채를 기르고 마을의 드넓은 숲을 이용하면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이날 세 사람의 의기투합으로 무레크에서 유채농사가 시작됐다. 유채로 자동차, 트랙터 등 운송수단의 연료가 되는 바이오디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무레크의 밭에서 ‘기름’이 생산되기 시작했고, 토터는 판을 더 크게 벌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정부 보조금과 마을 농부들이 모은 자금으로 1989년 바이오디젤 회사 SEEG를 설립했다. 그라츠대학과 바이오디젤 생산 컨설팅업체인 바이오디젤인터내셔널(BDI)의 도움도 받았다. 폐식용유를 정제해 바이오디젤을 생산하면서 수익률은 높아졌다. SEEG가 자리를 잡자 1998년 잡목 등으로 지역난방을 하는 나베르메에 투자했고, 나베르메가 자리를 잡자 2005년엔 바이오가스로 전기를 생산하는 외코스트롬이 세워졌다. 마을에 에너지 기업이 하나씩 만들어질 때마다 이전에 만든 회사가 적극 투자를 하면서 마을의 에너지 자립도는 높아졌다. 사실 무레크 주민들은 냉전시대 ‘철의 장막’의 영향권 안에 있었기 때문에 고립의 위험성이 높았고, 지리적인 불안 때문에 식량과 에너지 자립의 필요성에 일찍 눈을 떴기에 이런 발상이 가능했다.

바이오에너지 거리에 있는 세 개의 에너지 공장에서 사용되는 원료들은 폐식용유, 잡목, 축산 분뇨, 옥수숫대 등이다. 우리 농촌에서는 태워버리거나 정화시설을 갖춰 처리하는 폐기물이 무레크에서는 마을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소중한 바이오매스 자원으로 대접받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순환의 법칙이 있다. 유채씨로 바이오디젤을 만들고 남은 유채씨 찌꺼기는 돼지 사료로 쓰고, 돼지 똥으로 메탄을 만들어 발전을 하고, 여기서 나오는 액비는 고스란히 밭에 뿌려 유채를 키우는 완전한 물질순환이 이뤄진다.

더 중요한 건 공동체적 삶의 방식

무레크 주민들은 석유 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아니 석유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지금과 다름없는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다. 마을 주민 한 사람이 1년에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들이는 돈은 1500유로(약 230만원). 예전에는 이 돈을 고스란히 석유와 천연가스 구입에 썼지만 지금은 마을에서 해결한다. 자신이 투자한 에너지 회사에서 낮은 가격에 공급받는 것이다. 무레크의 바이오에너지 삼총사는 해마다 1100만유로(약 170억원)의 영업 성과를 올리며, 난방 부문에서만 석유 1500만ℓ를 대체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도 5만5천tCO₂(이산화탄소톤)이나 줄였다. 마을에서 필요한 에너지의 총량은 난방·전기·운송연료를 모두 합해 9만MWh인데, 마을에서 생산하는 에너지가 15만2천MWh에 이른다. 에너지 자립도가 무려 170%다.

에너지 생산은 마을의 주요 산업이기도 하다. 마을 노동인구의 4.5%가 에너지 생산시설에서 일하고 있고, 폐식용유 수거와 잡목·가축 분뇨 수송 등 연관된 일자리 창출 효과도 무시 못한다. 무레크는 2001년과 2006년 유럽 재생에너지 정책을 이끄는 기구인 ‘유로솔라’로부터 ‘세계 에너지 대상’과 ‘유럽 태양에너지 대상’을 각각 받았으며, 무레크의 에너지 자립 비결을 배우러 매년 6천여 명이 마을을 방문한다.

바이오에너지 거리를 한 바퀴 돌고 나자 토터는 글쓴이 일행을 마을 음악회로 안내했다. 마을 제재소에서 열리는 음악회. 매년 여름이면 국경 너머 슬로베니아 마을을 포함해 인근 6개 마을에서 돌아가며 엿새 동안 음악회를 연다. 이날은 마침 무레크에서 음악회가 열리는 날이다. 어느새 멋진 콘서트장으로 변한 제재소 옆에서 60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음악도 듣고 이야기도 나누고 있었다. 요들송을 들으면서 여기가 오스트리아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됐다. 오스트리아뿐만 아니라 유럽연합 전체가 정부 보조금이나 연구 프로젝트를 받을 때 마을 간의 연대와 국가 간의 공동 연구를 반드시 조건으로 내건다고 한다. 이 음악회에서도 국경을 넘어선 6개 마을 공동체 간의 신뢰의 기운이 느껴졌다.

제재소 옆에서는 물레방아가 돌아간다. 오래된 것이 낡고 뒤떨어졌다는 생각은 버리시라. 물레방아는 무레크의 풍경에 잘 어울렸고, 무레크 사람들은 물레방아를 개선해서 여전히 실생활에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다음날 아침 찾아간 물레방앗간은 새벽부터 북새통이었다. 호박씨 기름을 짜기 위해서였다. 아침부터 물레방앗간에 모인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고 마을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기름 짜는 방식은 우리 시골 참기름집과 똑같다. 이 작은 방앗간에서 호박씨 기름을 짜서 가공해 판매하는 일에 10여 명의 마을 주민들이 함께하고 있다.

이렇게 마을 주민들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면서 부가가치를 생산해내고, 농업만으로도 먹고살 만하고, 그래서 사람들이 농촌을 떠나지 않는 게 ‘에너지 농사’와 같은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는 것이다. 인구 1700명인 이 마을에서 600여 명이 바이오디젤 생산공장에 투자할 수 있는 것도 농촌생활에 여유가 있고, 마을 공동체가 건강하기 때문이다. SEEG의 경영자 요제프 라이터 하스는 “에너지 생산시설도 좋지만 우리 삶의 방식, 우리의 철학을 읽어주세요. 무레크는 주민들이 직접 지역을 움직이는 답을 찾고 있어요. 우리는 단순히 에너지를 수출하는 것도, 농산물을 수출하는 것도 아니에요. 마을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만들어낸 ‘아이디어’를 수출하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지속 가능한 길, 샘솟는 아이디어들

오스트리아는 1986년 체르노빌 사건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 그래서 원자력발전소 1기를 완성하고도 가동하지 않고 있다. 원자력발전소를 멈춘 뒤 20년이 지나 무레크와 같은 마을이 탄생했다. 쉬운 길을 가지 않는 대신 더디지만 지속 가능한 길을 선택한 것이다. 지금 무레크는 원자력의 유혹에서도, 석유 위기에서도 비껴서 있다. 이제 무레크 주민들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태양광시민발전소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이미 주민 80명이 출자를 결정했다. 메탄을 자동차 연료로 활용하는 방안과 소수력에너지 이용 계획도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에너지와 관련한 아이디어들이 계속해서 샘솟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에너지 자립 마을이 가능할까? 인구 2천 명 규모의 농촌마을이라면 우리나라로 치면 면 단위다. 고유가에 농촌도 시름시름 앓고 있다. 마침 전북 부안군 주산면을 중심으로 유채로 바이오디젤을 생산하자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 이제 우리 농촌도 지역 에너지 문제에 대한 고민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토터는 에너지 자립 100%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역의 자원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려는 노력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정부의 역할은 농민들이 그런 마음을 먹었을 때 제도로써 응원해주는 것이라고 한다. 자신이 직접 생산한 포도주와 호박씨 기름을 건네던 그가 꼭 하고 싶은 말이라며 덧붙였다.

한국 사람들이 너무 쉬운 대안, 원자력에 대한 유혹에 빠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원자력을 택하면 그만큼 더 위험하고 제대로 되지 않을 길을 가는 것이라고.

폐식용유 재활용 시스템

식용유 2만4천t을 자동차로

오스트리아 그라츠에서는 폐식용유를 수거하는 3~5ℓ 용기를 각 가정에 무료로 배포한다. 시민들은 폐식용유가 가득 차면 마을 공동 폐유수거장에 내놓기만 하면 된다. ‘에코서비스’라는 사회적 기업이 이를 수거해, 인근 마을 무레크에 있는 바이오디젤 생산회사 SEEG로 운송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폐식용유로 자동차 연료를 생산하는 SEEG의 경영자 요제프 라이터 하스는 오스트리아에서 소비되는 식용유는 한해 1인당 8kg이고, 수거 가능한 폐식용유는 이 가운데 3kg이라고 이야기한다. 800만 인구를 곱하면, 프라이팬의 식용유 2만4천t을 자동차 연료로 전환할 수 있는 셈이다.

폐식용유를 이용한 바이오디젤은 1985년 그라츠대학 마틴 미텔바흐 교수가 연구를 시작해 1994년 그라츠의 벤츠 버스 2대를 대상으로 실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후 대상을 점차 확대해 10년 만에 150여 대로 확대됐다.

이제 오스트리아는 모든 경유 차량에 대해 연료의 5%를 바이오디젤로 채우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바이오디젤은 일반 경유보다 5~7% 저렴하고, 이산화탄소와 미세먼지 발생량도 경유의 절반 수준이다. 오스트리아 시민들은 10여 년째 수송연료로 쓸 폐식용유 수거에 동참하고 있고, 전국 170곳의 맥도널드 지점도 폐식용유를 전량 수거하고 있다.

14년 전 그라츠에서 시작된 실험이 한국에서도 차근차근 준비되고 있다. 충남 천안의 백석중학교에서는 2년째 학교 급식에서 나오는 폐식용유를 수거하고 있고, 서울 강동구는 폐식용유를 모아 바이오디젤을 만들어 구내 청소차 연료로 사용할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경기 과천시도 지역에서 발생하는 폐식용유량 조사를 끝냈다.

최근 법원은 바이오디젤을 만들어 지식경제부에 등록하지 않고 자신의 차량에 직접 사용한 경우 처벌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지금까지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석유법)에 따라 지식경제부에 등록하지 않고 연료를 만들어 쓰면 ‘유사석유 사용’으로 처벌을 받았지만, 이번 판결은 대체 연료 생산·사용과 관련해 한층 완화된 해석을 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폐식용유의 변신, ‘프라이팬에서 자동차 연료로’가 실현될 날이 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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