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6년 3월 27일. 친구에게 슬슬 벚꽃놀이 하러 가야 하지 않겠냐며 연락이 왔습니다. 서울대공원으로 갈까? 여의도보다 1주일정도 늦게 가면 됐던거 같은데? 서울살면 서울대공원이지! (정작 서울대공원은 과천에 있는데..크크) 등등의 재미없는 개그를 나누며 낄낄거리다가, 문득, 지난 벚꽃놀이 사진을 찾아보고 싶어졌습니다.
벚꽃이 만개한 서울대공원의 사진. 날짜는 잘 안보이지만 2000년 4월 15일의 모습입니다. 이 사진을 보면서 두 가지를 생각했더랬죠. 1)생각보다 벚꽃이 늦게 피었네? 2)얼굴 가리고 포스팅 해야겠다..이렇게 두 가지..
사진 찾아본 김에 과거를 조금 더 거슬러올라가보았습니다.
96년 4월 26일, 윤중로입니다. 온 가족이 저녁 먹고 여의도를 찾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어두워서 잘 안 보이지만, 잎이 듬성듬성 피어난 벛꽃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어라, 이거 꽤 늦네, 이거 기후변화 아냐? 지구 온난화 아냐?
하지만 두 사진 속 날짜만 놓고 섣불리 주장하거나 선동 해서는 안되겠죠. 저는 괜한 흥미가 생겨 신문기사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지구온난화, 기후변화가 인류의 중요한 문제라고도 하고, 작년 파리의 기후변화국제협약에서는 온 나라가 모여 1.5도 이상 지구의 온도를 높이지 않게 최선을 다하자는 약속을 하기도 했고요. 거창한 이야기 말고 우리나라 서울 시민들의 벚꽃놀이 날짜는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부터가 궁금해졌습니다. 신문기사를 하나 하나 찾다 보면 그 흐름의 보이겠지, 하는 마음으로요.
이왕 해보는거 10-20년 말고 더 범위를 넓게 잡아볼까, 하는 마음에 우리나라의 CO2 농도가 높아지는 시기를 구글링 해봤더니, 짠.
아, 1960년대부터 찾아봐야겠구나.
괜한 짓을 하는 걸까. 근 60년인데.
그래도 찾기 시작했습니다. 옛날 기사를 보는 재미도 쏠쏠했거든요. 명문들이었어요.
예를 들면 이런 기사,
“비끝인 15일 현재 창경원엔 산수유 개나리꽃등이 먼저 활짝 피어 봄나들이 손님들을 맞고 있는데…(후략)1969년 4월 15일 동아일보”
“예년보다 더딘 봄의 발걸음이 4월의 문턱을 앞에 두고 계절의 풍향이 바뀌자 템포를 빨리하여 27일 벌써 남녘 군항(진해)에서는 망울진 벚꽃봉오리를 터뜨렸다는 화신. (중략) – 창경원 벚꽃은 4월 22일께 피리라고 예보했다. 1970년 3월 27일 동아일보”
“이제 봄이 여물어 雙溪寺(쌍계사)의 벚꽃은 艶姿(염자)를 더하며 滿開(만개).暖冬(난동)과 寒春(한춘)이 엇갈려서울의 花信(화신)이 지각했어도 15일에는벚꽃이 필것이라는 관상대의 반가운 예보도있어(후략) 1972년 4월 14일 경향신문”
벚꽃놀이 시즌이 끝나면, 상춘객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로 인한 자연 훼손 이야기가 꼭 나오고, ‘왜 무궁화꽃축제는 없는가’ 라는 기사는 꼭 나오더군요. 마치 공식처럼요.
기사보는 재미를 만끽하며 몇 날을 꼬박 들여 1960년부터 2016년까지의 벚꽃놀이 시즌 (서울)이 정리가 되었습니다. 신문기사와 기상청 보도를 중심으로 잡아보았습니다. 문서에 의한 것이라 정확하지는 않을지라도 일련의 흐름이 보이더군요. 벚꽃 모양으로 엑셀을 완성시켜서 벚꽃이 다가오는 느낌을 주고, 이쁘게 정리해보려고 했는데.
매년 앞으로 갔다가 뒤로 갔다가 하는 차이는 있고 하더라도 벚꽃이 점점 앞으로 오고 있다는 흐름은 확실히 보여주네요. 그래서 우리는 어느 새 3월 말부터 벚꽃놀이를 즐길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예쁜 벚꽃 조금 일찍 만나보는 게 기후변화의 전부라면 차라리 좋겠습니다.
기후변화란 당장 오늘의 날씨가 예년과 다르게 춥다거나, 또 덥다거나, 국지성 호우가 갑자기 퍼붓는다거나, 하는 단순한 문제가 아닙니다. 커다란 흐름입니다. 기후변화의 문제는 디카프리오가 오스카상 수상 소감보다도 다급하게 이야기 했듯 전 지구적인 문제입니다.
히말라야 빙하는 연간 10~60m의 빠른 속도로 사라지고 있으며 사라진 빙하는 해수면상승으로 이어지겠지요. 기후변화가 가속화 된다면 가장 먼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몰디브는 2020년까지 화석 연료 사용을 금지 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이 외에도 수 많은 기후변화의 징후들이 우리를 감싸고 있다는 것은 구글 검색을 조금만 해봐도, 뉴스를 통해서도 많이 듣고 보고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변화라는 것은 늘상 있어오는 것이지만 지금의 기후변화는 자연적인 것이 아니라 이미 자연적 변화의 틀을 넘어선 수준이라는 게 문제입니다.
벚꽃은 한철이라 강렬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지구는 다음세대에도, 그 다음 세대에도 계속 아름다웠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글을 다 썼으니 벚꽃놀이 하러~
글 : 에너지기후팀 신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