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을 거닐다 – 영국 기후변화 대응의 중심, 런던의 24시

2009.01.19 | 기후위기대응

런던을 거닐다 – 영국 기후변화 대응의 중심, 런던의 24시
상품에 CO2 배출량과 운송수단 보여주고, 야간 조명은 LED로

2008년 2월, 그린피스 운동가들이 영국의 관문 히드로 공항에서 기습시위를 벌였다. 맨체스터로 이륙하기 직전의 브리티시항공사 소속 비행기 꼬리날개 위에 올라가 “기후비상: 히드로 공항 제3활주로 건설 반대”현수막을 펼쳤다. 그린피스 시위는 항공기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계기가 됐다. 런던시가 배출한 총 이산화탄소량에서 항공 부문은 무려 34%를 차지했다. 영국 항공업계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서둘러 탄소상쇄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버진 애틀랜틱 항공사는 바이오 연료를 이용해 시범비행을 하기도 했다. 12시간의 비행 끝에 런던에 도착했다. 국제정치 무대에서 미국에 밀려 있던 영국이 기후변화 협상을 기회로 ‘탄소경제’와 ‘국제정치’ 주도권 잡기에 나섰다. 그 중심에 영국의 수도 ‘런던’이 있다. 런던은 지금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을까?

CCTV로 촬영해 혼잡통행료 징수
런던 탄소경제의 중심지인 유럽기후거래소에 가기위해 버스를 탔다. 악명 높던 런던 시내의 교통 상황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 전임 런던시장인 켄 리빙스턴이 정치적 위험을 감수하고 추진한 혼잡통행료 덕분이다. 2003년부터 런던 시내 중심지로 차를 몰고 들어가려면 하루 8파운드(1만6천원)를 내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봐도 남산 1·3호 터널처럼 톨게이트에서 통행료를 징수하는 곳이 없다. 영국은 폐쇄회로텔레비전(CCTV)의 나라 아닌가. 시내 중심부에 들어온 차는 곳곳에 설치된 CCTV에 촬영된다. 시내로 승용차를 몰고 들어가면 자발적으로 은행에 통행료를 내야 한다. CCTV에 찍히고도 밤 12시까지 지불하지 않으면 연체 시간에 따라 무거운 벌금이 부과된다. 런던 교통청은 혼잡통행료를 징수한 이후 도심의 자동차 교통량은 21%,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가 줄었고, 자전거 통행량은 66%나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그래서인지 땅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런던 도심 곳곳에서 자전거판매 전문점을 찾아볼 수 있다. 런던의 도심, 버스와 자전거가 속도를 경쟁하며 달린다.

탄소를 사고팔아 돈방석에 앉는다?
런던의 금융중심지 ‘시티오브런던’에 유럽기후거래소가 있다. 일반 증권사처럼 시세 현황판이 있고, 객장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사무실과 컴퓨터, 직원 몇 명이 전부이다. 탄소 거래는 인터넷상에서 온라인 거래로 이뤄진다. 2005년 4월 문을 연 이후 20억 톤의 이산화탄소 배출권을 사고팔았고, 거래 액수는 연간 50조원이다.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권의 80%가 런던의 기후거래소에서 거래되고 거래량은 매년 2배 이상 급성장하고 있다. 금융의 나라 영국이 런던에서 ‘탄소경제’ 시대를 열고 있는 것이다. 날로 심각해지는 기후변화는 탄소를 사고팔아 돈방석에 앉는 새로운 직업군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매슈 휘텔 기후거래소 기술총괄 담당자는 “시장이 기후변화로부터 지구를 구할 것이다”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탄소 거래가 활발해질수록 탄소를 줄이기 위한 관련 기술과 산업도 성장할 것으로 낙관했다. 그러나 카본트레이드워치 활동가 케빈 스미스는 ‘탄소시장’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그는 2005년부터 가동한 유럽연합할당량거래 시장에서 영국 정부가 각 기업이 배출할 수 있는 배출량의 한도를 과도하게 책정한 것이다. 그래서 석탄화력발전소업자들이 남은 할당량을 탄소시장에 판매해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필 울라스 영국 환경식품농업부 차관도 배출량 과잉공급 리스크가 실제로 발생했고 2차 운영 기간인 2008년부터는 할당량을 낮게 설정했다며, 1차 운영 기간의 오류를 인정한 바 있다. 미국발 금융시장 위기가 세계 경제를 뒤흔드는 지금, 인류의 가장 큰 숙제 기후변화를 ‘탄소시장’에 맡겨 해결할 수 있을 것인가? 쉽지 않은 질문을 뒤로 하고 다시 런던 거리로 나왔다.

탄소라벨링 먼저 확인하세요
런던 시내 할인매장 테스코에서 이산화탄소 라벨이 붙은 감자칩과 오렌지주스를 샀다. 감자칩은 원료 재배에서 가공, 유통까지 75g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했고, 오렌지 주스는 265g을 배출했다. 상품 구매에 있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따져 선택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한다는 취지인데, 테스코는 이를 위해 해마다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다.
슈퍼 체인이자 의류업체인 막스앤스펜서는 식료품에 운송수단을 표시하고 있다. 항공기로 운송한 딸기와 포도에는 ‘항공기 마크(Air Label)’가 붙어 있다. 탄소를 많이 배출해가며 비행기로 운반한 것이니 구입할 때 생각하고 선택하라는 뜻이다. 의류에는 ‘기후를 생각하세요'(Think Climate)‘ 라벨이 붙어있다.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세탁물 온도를 30℃로 하자는 것이다. 막스앤스펜스 지속경영팀의 마이크 배리는 “영국민 모두가 30℃로 세탁을 한다면 막스앤스펜서가 1년 동안 줄일 수 있는 이산화탄소 양보다 더 많은 양을 감축할 수 있다”고 전한다.
그런가하면 우편공사인 ‘로열 메일’은 심지어 우편물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계산해준다. 개인이나 기업이 우편물을 보낼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량을 계산해주고, 종이·포장지·잉크를 통해 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하기도 한다. 마지막 단계로 우편을 보내는 사람이 나무를 심어서 우편배달 과정에서 발생한 이산화탄소를 상쇄하면, 우편물에 ‘탄소 중립’이란 로고를 새겨준다.

런던에서 에너지 만들어서 쓰기
석양 무렵 런던 템즈 강변에는 조깅하는 사람들과 산책하는 사람들로 붐빈다.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만든 테이트 마던을 지나 런던시청에 도착했다. 세계적인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해 유명한 런던시청은  햇빛을 최대한 받아들여 조명에너지를 덜 쓰고, 지붕에 67㎾ 태양광 발전을 설치해 전기를 직접 생산한다.  타워브릿지에 올라서면 런던시청의 태양광발전도 보이고, 조력발전소 건설을 위해 템즈강에 떠있는 바지선도 보인다. 강의 조수간만의 차이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한다.
런던의 기후변화 전략은 ‘지역에너지(Local Energy)’ 정책이다. 2025년까지 런던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25%를 런던에서 생산하는 것이 목표이다. 도시에서도 냉방·난방·전기를 한꺼번에 생산하는 열병합 냉난방 시스템, 태양광, 지열, 조력과 같이 지역에서 직접 생산하는 에너지 량을 늘려가고 있다. 서울시민들이 사용하는 전기의 2%만이 서울에서 생산되고, 나머지는 송전탑을 통해 다른 지역에서 생산한 전기를 받아서 쓴다. 런던은 이렇게 에너지의 생산지와 소비지가 멀어지면 손실되는 에너지가 크고, 그 과정에서 온실가스도 더 많이 배출되기 때문에 ‘지역에너지’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 경기장도 필요한 에너지의 20%를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런던개발청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시가 직접 회사를 만들었다. 이름하여 런던기후변화청. 이사회 의장에 런던시장을 앉혔다. 런던시장이 온실가스 감축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관리하라는 것이다.

은은한 조명이 비취는 거대한 박물관 ‘런던’
어둠이 내려않은 템즈강에 웨스턴민스턴 사원이 투영된다. 고딕양식의 아름다운 건물 웨스턴 민스턴 사원이 은은한 조명을 받아 아름답다. 연극 무대에서 주인공이 독백을 할 때 조명이 주인공을 비추듯이 고색찬연한 건물의 아름다움을 더욱 돋보이는 따뜻한 불빛이다. 여왕이 사는 버킹엄 궁전과 템스 강을 마주하고 있는 국립극장, 트라팔가 광장으로 대표되는 런던의 야경을 보면, 조명이 잘 배치된 고즈넉한 박물관에 들어온 느낌이다. 런던시는 필립스와 협력해 야간조명을 LED(발광다이오드)로 교체했다. 그 결과 ‘에너지효율’과 ‘아름다운 야경’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LED등은 기존 조명보다 에너지효율이 40%나 뛰어나고, 전구 평균 수명은 5만 시간으로 25년이나 지속된다. 국립극장은 조명 설비를 바꾼 것만으로 에너지 비용을 70%나 줄일 수 있었다. 연간 100만파운드(약 2억원)를 절약하게 된 셈이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법으로 만들다
지난해 영국의회는 기후변화 법안을 통과시켰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을 법으로 명시하는 것이다. 영국은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80%로 줄여야 한다. 법을 집행하기 위해 5년 단위로 탄소 예산안도 세워야 한다. 영국 정부의 일관된 정책 의지는 지자체와 기업들이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목표를 세우고 실행에 옮기는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영국이 기후변화에 대응에 있어 모범답안만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고유가 영향으로 화력발전소 증설 계획이 발표되고 있는 것이다. 영국 남부 켄트 지역의 지자체는 24년 만에 처음으로 석탄을 연료로 하는 화력발전소 건설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전력회사인 이온유케이(E.ON UK)사가 킹스노스 일대에 화력발전소 2기를 건설할 예정이다. 카본트레이드워치 활동가 케빈 스미스는 영국이 기후변화 시대를 열겠다면서 화력발전소를 건설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지난 9월11일, 기후변화를 경고하기 위해 킹스노스 화력발전소 굴뚝에 총리 이름인 ‘고든’을 페인트로 칠해 손실을 입힌 그린피스 활동가 6명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배심원단이 “피고인들의 행위는 기후변화라는 더 큰 손해를 예방하려는 ‘합법적 이유’에 따른 것”이라는 그린피스 쪽 주장을 받아들였다. 환경운동가들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시민 불복종 행동을 ‘합법적 이유’로 손을 들어준 배심원들의 판단을 반기는 분위기다.

런던의 도심을 잘 관찰하면서 걷다보면 적어도 이 도시가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무엇인가 준비하고 있다는 증거를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가까운 미래, 우리들의 도시에서도 이런 변화를 느끼며 걸을 수 있기를 고대한다.

글·사진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장)

<한겨레 21 제 745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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