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평론] 기후변화와 에너지 대안

2009.05.11 | 기후위기대응

기후변화와 에너지

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가끔씩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이 신기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예를 들면, 30층을 눈 깜짝할 사이에 올라가는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거대한 고철덩어리 전철이 콩나물시루처럼 빼곡히 사람들을 태우고 빠른 속도로 달릴 때, 수도꼭지에서 물이 콸콸 나올 때 도대체 이 에너지가 어디에서 다 만들어지나 싶다. 도시는 하루에도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 지금 지구상의 수많은 도시를 움직이는 힘은 대부분이 석유, 석탄, 천연가스와 같은 화석연료이다. 지난 100년간 신나는 석유파티를 통해 우리는 편리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그런데 이제 파티의 끝이 보인다. 파티의 끝에서 우리가 맞이한 것은 단지 석유가 곧 고갈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만이 아니다. 화석연료를 태워 발생한 이산화탄소가 지구에 온실효과를 일으켜 지구의 온도가 올라가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지금 인류가 맞이한 가장 큰 위협이다. 굳이 지난 100년 동안 지구의 온도가 0.74도 상승했다는 수치를 들이대지 않아도 된다. 봄날임에도 불구하고 하루걸러 여름과 초겨울 날씨가 반복되는 불규칙한 기상현상을 이미 몸으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구온난화에 가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2007년 IPCC 4차 보고서만 하더라도 지구온난화가 지금과 같은 속도로 진행된다면 금세기말, 즉 2090년대 북극해 해빙(海氷)이 다 녹아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최근 미항공우주국 기후과학자들은 금세기 말이 아니라 빠르면 2013년 여름, 북극 얼음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고 발표하고 있다. 북극이 사라진 지구가 어떻게 변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이제 인류는 ‘에너지’와 ‘기후변화’ 문제를 동시에 풀어야만 하는 큰 숙제를 안고 있다.

화석연료의 대안을 찾아 ― 재생가능에너지와 원자력

지금의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기반을 둔 경제·사회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인류는 값싼 에너지원이 필요했고, 화석연료는 안성맞춤이었다. 특히 석유는 수송하기 쉽고, 열량이 높고, 자동차연료에서부터 전력생산과 각종 제품의 원료로 쓰임새가 무궁무진했다. 그러나 화석연료 시대의 끝이 보이자 정치가들과 기업, 과학자들은 기술개발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원을 찾아 헤매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의 기본전제는 기후변화를 심화시키지 않도록 이산화탄소와 같은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서 요즘 ‘녹색성장’ 동력으로 각광받는 에너지가 바로 재생가능에너지이다. 태양, 바람, 물, 바이오매스와 같이 재생가능한 자원으로부터 에너지를 얻는 것이다. 각국 정부는 재생가능에너지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어, 머지않아 재생가능에너지는 우리 생활에서 중요한 에너지로 자리 잡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재생가능에너지가 에너지 문제에 답을 줄 수 있을까?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우리가 이산화탄소 배출이 적다는 이유로 선택하려는 에너지원이 하나가 더 있다. 바로 원자력이다. 화석연료의 대안이자, 기후변화 시대를 대응하는 에너지로 ‘재생가능에너지’와 ‘원자력에너지’가 주목받고 있다.

원자력에너지, 기후변화의 대안일까?

2008년 한국 정부가 세운 ‘국가에너지기본계획’과 ‘기후변화종합대책’의 주인공은 ‘원자력’이었다. 한국수력원자력발전소가 텔레비전, 신문, 라디오를 통해 내보내는 광고의 주요 내용은 ‘기후변화시대’의 ‘대안 에너지’는 원자력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소 12기를 더 세운다. 그렇게 되면 국내 발전량 중에서 원자력 비중이 48퍼센트로 발전량의 절반을 담당하게 된다. 정부는 원자력발전 비중을 확대해 석유의존도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응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원자력발전이 연료 연소과정에서 화석연료에 비해 ‘온실가스’를 적게 배출한다는 이유로 원자력이 갖고 있는 수많은 문제점들을 덮으려는 것은 옳지 않다. 원자력발전의 연료가 되는 우라늄을 채굴하고,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고, 해체하는 전 과정을 감안하면 원자력의 온실가스 저감효과도 의문이다. 설계 실수나 관리자의 실수, 지진 같은 천재지변으로 사고가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며칠 전 한 시민이 이런 전화를 걸어왔다. “텔레비전에 유난히 원자력에너지가 ‘청정 에너지’라는 광고가 많이 등장하는데, 원자력기술이 발달해서 원전에서 사고가 나도 인간이나 자연에 전혀 해를 끼치지 않게 된 건가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광고가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닌가요”라고. 원자력에너지 공급을 지속적으로 증가시키는 것은 방사성폐기물 위험이 갖는 불확실성과 우라늄 가채연수를 고려할 때 지속가능하지 않은 정책이다. 따라서 ‘기후변화대응〓원자력 발전’이라는 단순한 결정을 내리기 전에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다른 대안을 먼저 선택해야 한다. 원자력에너지는 일단 투자를 결정하면 후세대의 선택권은 제한받게 된다. 지금의 세대가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시작하면, 그 결정에 따른 경제적 부담과 폐기물 처리 책임은 일방적으로 후세대에 떠넘기게 되는 셈이다. 우리가 2022년까지 원자력발전소 12기를 더 짓는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 후세대에 두고두고 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전체 에너지수급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과 기후변화대책으로서 원자력의 역할에 대해 깊이 있는 토론을 통해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현실은 정반대로 가고 있다. 정부는 이미 결정을 내렸고, 국민들은 일방적인 원자력 홍보광고를 보고 듣고 있다. 원자력문화재단은 연간 100여억원을 들여 원자력에너지를 홍보하고 있고, 그 예산은 국민들이 지불하는 전기요금에서 기금형태로 조성된다. 원자력을 지속가능하지 않는 에너지원으로 생각하는 국민들도 전기를 사용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원자력을 선전하는 광고비용을 지불하는 것이다.

재생가능에너지가 만능일까?

한라산 남쪽 중산간에 자리잡은 ‘동광마을’은 정부와 제주도가 20여 억 원을 투자해 조성한 그린빌리지이다. 동광마을 46개 가구 지붕 위에는 태양광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주민들이 태양으로부터 전기에너지를 얻은 후부터 매달 전기요금으로 200원에서 1,000원 정도만 내고 있다. 화석연료 고갈에 대비한 이상적인 마을처럼 보인다. 하지만 막상 집안으로 들어가면 주민들이 사용하는 전자제품은 종류도 많고, 크기도 크다.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전기를 더 많이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겉은 그린빌리지인데, 사람들의 생활은 ‘그린’이 아닌 것이다. 정부가 ‘녹색성장’을 외치면서 각 지자체마다 ‘저탄소마을’이니 ‘그린빌리지’니 ‘신재생에너지단지’니 하며, 재생가능에너지시설 보급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지붕 위에 ‘태양광’만 올린다고 ‘그린홈 200만호’를 짓는다고 에너지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에너지 절약이 몸에 밴 주민들의 ‘삶의 변화’ 없이 재생가능에너지만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 지난해 무려 축구장 93개 크기의 동양 최대 태양광발전소가 신안군에 들어섰다. 세계 최대 조력발전소인 시화호에 이어 새만금에도 조력발전소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심지어 강화도 네개 섬을 이어 812메가와트급 세계 최대 조력발전소를 만들 계획도 착착 진행되고 있다. 그 땅이 가지는 생태ㆍ환경적 가치는 고려하지 않고 태양광과 조력발전소를 세웠을 때, 그렇게 생산한 전기를 청정 에너지라고 할 수 있을까? 지역의 환경을 파괴하고, 지역사회에 나쁜 영향을 미치면서, 대량으로 생산하는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재생가능에너지가 무조건 ‘착한 에너지’는 아니다.

에너지원에서 에너지 생산과 소비 문제로

지금까지 우리는 ‘에너지원’을 찾아 헤맸다. 석유, 석탄, 수소, 원자력, 천연가스 등. 그러나 인류가 마음껏 사용하면서 고갈되지 않고, 더구나 환경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는 꿈의 에너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날 에너지위기는 ‘에너지원’ 자체에 있다기보다는 우리 사회가 에너지원을 어떻게 생산하고, 소비하며, 누가 선택하고 공급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우리 사회의 에너지체제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전환하는 차원에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우리나라는 석유 수입 5위, 천연가스 수입 3위, 석유 소비량 7위, 에너지 소비량 10위 등 세계 최고 에너지 소비 국가(2005년 통계)이다. 1인당 소비전력량은 1991년 2,412킬로와트시에서, 2005년 7,403킬로와트시로 3배나 증가했고, 일본, 독일, 영국, 이탈리아 국민들보다 1인당 전기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다. 이렇게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는 왜 이렇게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것일까? 국민들의 과소비가 문제일까, 아니면 에너지정책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공급 중심의 에너지정책

우리 에너지정책 기조는 정부가 에너지수요를 예측하고, 공급계획을 수립하면, 계획에 따라 에너지기반시설 투자가 진행된다. 그런데 국민들이 10년이나 20년 후에 에너지를 얼마나 사용할지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부족’하기보다 조금 더 ‘넉넉히’ 예측하는 경향이 있다. 전력부문만 하더라도 수요계획을 세울 때마다 과도하게 수요를 추정한다. 특히 정부가 원자력발전소를 전력정책의 중심에 세우면서 공급 중심의 에너지정책이 고착화되었다. 원자력발전소는 건설에서 준공까지 평균 7~10년이 걸리고, 1기당 100만~140만 킬로와트의 엄청난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따라서 원자력발전소 1기가 준공하면, 짧은 기간 내에 전력공급량이 엄청나게 증가한다. 1980년대 중반, 국민들의 전력수요는 애초 정부가 예측한 수치의 절반도 되지 않는데 1970년대 착공된 원전이 잇달아 준공했다. 원자력발전소는 완공했는데, 전력수요가 없어 전기가 남아돌기 시작했다. 정부는 남아도는 전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규모 발전소 건설계획을 취소하고, 전기요금을 9차례나 인하하는 정책을 펼쳤다. 값싼 전기요금은 에너지소비를 부추겼다. 특히 발전원가보다 낮게 공급되는 산업용 전기는 산업부문에서 전력 과소비를 심화시키고 있다. 고유가와 같이 다른 에너지원 가격이 상승하면, 산업계는 에너지원을 전기로 전환했고, 전력수요는 더욱 늘어났다. 비용을 절감하려는 산업계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지만 국가 전체적으로는 2차 에너지인 전기사용이 늘어나 에너지를 비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중앙집중적 에너지생산 구조

우리의 전력수급 방식은 중앙집중식으로, 화력 또는 원자력발전소에서 대량으로 전기를 생산해서 전국 각지로 공급한다. 지역별 전력에너지자립도를 분석해보면 서울의 전력자립도가 2.45퍼센트에 불과하고, 광주, 대전, 대구, 충북, 전북의 전력자립도는 10퍼센트 내외이다. 반면 충남은 무려 413.79퍼센트에 달하고, 전남, 경남, 부산, 경북, 인천은 전력자립도가 100퍼센트 이상이다. 특정지역에 원자력발전소와 화력발전소가 편중해 있기 때문이다. 발전소 주변지역 주민들은 전력생산에 따른 환경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하고 있다. 또 지역에서 생산된 전기의 38퍼센트를 수도권으로 송전하는 문제도 발생한다. 요즘 밀양시민들은 765킬로볼트 고압 송전탑 때문에 잠 못 드는 밤을 보내고 있다. 한국전력공사가 신고리원전 1, 2호기에서 생산한 전기를 북경남 일대에 공급하기 위해 초고압 송전탑을 세우는데, 계획대로라면 69기의 철탑이 밀양을 관통한다. 주민들은 초고압 송전선이 유발할지도 모르는 암발생률 증가 같은 건강피해를 두려워한다. 또 수십개의 철탑과 거미줄 같은 송전선로가 들어서면 밀양의 아름다운 경관을 해치고, 땅값도 떨어뜨린다고 걱정한다. 수도권에서 전기를 흥청망청 쓰는 동안, 누군가는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 송전탑 근처에 살면서 전기생산에서 발생하는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살고 있다. 대형발전소 중심의 전기생산 방식이 환경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다.

높은 석유취약성지수

우리나라 자동차 등록 대수가 1,600만대를 돌파했다. 세 사람당 한 대 꼴로 자동차를 보유하는 셈이다. 도로에 차고 넘치는 차량만 봐도 우리나라가 만만치 않은 석유소비국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자동차와 도로를 기반으로 한 교통체제는 사람들을 자동차중독에 빠지게 만들었다. 2008년 3월호 《에너지 정책》에 따르면 28개 석유순수입국 중에서 우리나라가 두번째로 석유취약성지수가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석유취약성지수가 높다는 것은 고유가와 석유정점 위기에 다른 나라보다 더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으며, 사회경제적 위험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석유수입의 80퍼센트를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중동에서 수입한다. 1차 에너지의 약 50퍼센트를 석유에 의존하며, 국내총생산에서 석유가 차지하는 석유집중도는 인도, 필리핀, 중국 다음으로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2006년 원유수입은 560억 달러로 전체 수입액의 18퍼센트를 차지했다. 국제적으로도 석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갈등과 환경파괴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도달했다. 석유를 수입해서 사용하는 나라 국민은 생산국의 비극을 잘 알지 못한다. 2003년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한 이유가 석유 때문이었다. 중동에서 시작된 석유를 둘러싼 분쟁은 석유자원이 희귀해지면서 아프리카까지 확대되고 있다.

지역에너지가 희망이다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가 심각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위기를 인식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우선 에너지가 너무 멀리서 생산되기 때문에 에너지 생산과 소비에 따른 문제를 잘 모르기도 하고, 모든 에너지정책을 정부가 ‘알아서’ 결정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 에너지공급의 주체는 거대 정유회사나 한전과 같은 독점기업이 담당하고 있어서 시민들이 에너지생산에 관여할 수 있는 통로 자체가 없다. 정부 중심의 중앙집중식 에너지공급 정책은 시민들을 ‘에너지맹’으로 만들어 버렸다. 따라서 기후변화와 에너지위기에 대한 대안을 찾기 위해서는 ‘에너지정책’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시민들이 지금까지 국가와 기업이 독점해온 에너지정책에 대한 결정권을 되찾아 와야 한다. 국가가 아니라 지역중심으로 에너지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의 ‘에너지 정치’가 필요한 것이다. 지역에너지는 지역에서 에너지 절약과 에너지 효율향상을 전제로 에너지정책을 만들고 에너지를 생산해 지역의 에너지자립도를 높이는 것이다. 중앙집중형 에너지공급시스템을 분산형으로 전환해 에너지 생산과 소비지의 거리를 가능한 가깝게 하는 것이다. 또 지역주민들이 에너지 생산과 소비에 대한 결정과정에 참여 하고, 함께 에너지를 생산함으로써 지역사회가 에너지생산에 대한 비용과 편익을 책임지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서 에너지를 생산한다면 어떤 에너지원을 이용할 수 있을까? 낮 동안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 땅속 열, 농사를 짓고 남은 볏짚과 가축분뇨 같은 바이오매스처럼 지역의 다양한 재생가능에너지자원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동네에서 직접 에너지 농사를 짓는 것이다. 지역에서 에너지를 생산하는 방법에는 전기 생산, 열 생산, 전기와 열을 동시에 생산(열병합)하는 방법이 있다. 전기만 생산하는 방식은 주로 풍력과 태양광을 이용한다. 풍력은 블레이드가 세개 달린 수직축 방식이 일반적인데, 1킬로와트급 가정용 풍력발전기를 사용할 수 있고, 최대 5메가와트를 생산할 수 있는 풍력발전기도 상용화되었다. 태양광발전기는 햇빛을 직접 전기에너지로 변환시키는 기술이다. 태양광발전기는 태양전지로 구성된 태양전지 모듈을 이어놓은 태양전지판과 축전지, 전력변환장치로 구성된다. 지붕 위에 2~3킬로와트 용량의 태양전지판을 설치해 태양광을 인버터(전류변환기)를 통해 직류를 교류로 바꿔 가정용 전기를 공급하는 원리다. 태양광은 현재 포켓용 계산기에서부터 우주 통신위성에까지 널리 사용되고 있다. 강변이나 계곡 지대에서는 소수력을 활용할 수 있다. 열을 생산하는 방식에는 태양열, 히트펌프, 바이오매스에너지가 있다. 태양열은 주로 온수를 생산하는 데 쓰인다. 8제곱미터 태양열집열판은 방이 세개 있는 집에서 사용하는 온수의 2/3를 생산할 수 있다. 히트펌프는 땅속 지열에너지를 잡아서 물이나 공기를 덥혀 난방에 사용한다. 반대로 활용하면 냉각이나 에어컨으로 냉방에 활용할 수도 있다. 바이오매스를 활용한 스토브나 보일러는 에너지 작물이나 나무를 직접 태워서 열을 얻는다. 열병합발전은 천연가스나 바이오매스를 연료로 열과 전기를 동시에 생산하는 것이다. 대형 발전소는 전기생산 과정에서 생기는 열을 그냥 방출하지만 열병합 발전은 열을 지역에서 활용한다. 가축분뇨 메탄발효 과정에서 발생하는 바이오가스를 모아 열병합발전을 할 수도 있다. 지역에너지는 단순히 기술문제만은 아니다. 이 기술을 활용하는 사람의 이해와 참여가 필수다. 지역에너지 구성요소에는 지역에서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의 특징과 생산의 한계를 인식하고, 그것에 맞춰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구성원이 있어야 한다. 또 에너지생산자로서 뜻을 세운 주민들을 지원할 수 있도록 잘 만든 정책과 법도 필요하다.

국가도 기업도 아닌 공동체의 힘으로 ― 에너지 협동조합

영국의 에너지세이빙트러스트는 2050년까지 영국의 모든 가구가 소형 열병합발전과 소형 풍력발전, 태양광발전을 활용한 지역에너지로 에너지자립을 이루고 난방에너지의 절반을 공급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스트리아와 독일에서는 에너지자립마을이 속속 생겨나고 있고, 미국에서도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저지, 위스콘신을 중심으로 자가발전 마을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미국에서 무려 18만 가구가 마을과 가정에서 직접 전기를 생산해서 사용한다. 오스트리아 무레크는 인구 1,700명이 사는 시골 마을인데, 에너지자립도가 170퍼센트이다. 마을에 자리잡은 바이오에너지 거리에는 발전소(외코스트롬), 지역난방회사(나베르메), 바이오디젤 회사(SEEG)가 모여 있다. 1985년 12월 마을 농부 세명이 의기투합해 지역에너지자립 준비를 시작했다. 정부보조금과 마을 농부들이 모은 자금으로 1989년 바이오디젤 회사 SEEG를 설립했다. 폐식용유를 정제해 바이오디젤을 생산하면서 수익률은 높아졌다. SEEG가 자리를 잡자 1998년 잡목 등으로 지역난방을 하는 나베르메에 투자했고, 나베르메가 자리를 잡자 2005년엔 바이오가스로 전기를 생산하는 외코스트롬이 세워졌다. 마을에 에너지기업이 하나씩 만들어질 때마다 이전에 만든 회사가 적극 투자를 하면서 마을의 에너지자립도는 높아졌다. 바이오에너지 거리에 있는 세개의 에너지공장에서 사용되는 원료들은 폐식용유, 잡목, 축산분뇨, 옥수숫대 등이다. 폐기물이 무레크에서는 마을에서 필요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소중한 바이오매스자원으로 대접받는다. 그리고 여기에는 순환의 법칙이 있다. 유채씨로 바이오디젤을 만들고 남은 유채씨 찌꺼기는 돼지사료로 쓰고, 돼지 똥으로 메탄을 만들어 발전을 하고, 여기서 나오는 액비는 고스란히 밭에 뿌려 유채를 키우는 완전한 물질순환이 이뤄진다. 무레크 주민들은 석유가격이 아무리 올라도, 아니 석유가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해도 지금과 다름없는 평화롭고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다. 마을주민 한 사람이 1년에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들이는 돈은 1500유로(약 230만원). 예전에는 이 돈을 고스란히 석유와 천연가스 구입에 썼지만 지금은 마을에서 해결한다. 자신이 투자한 에너지회사에서 에너지를 구입하고, 일자리도 얻는다. 1998년 덴마크는 재생가능에너지 섬 만들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삼쇠섬은 울릉도와 비교하면 면적은 넓고 인구는 절반 정도이다.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전력회사, 시민들이 풍력터빈 11기로 전기를 자급하게 됐다. 주민 450명이 공동출자한 풍력터빈 회사가 2기를 소유하고 나머지 9기는 개인 농장주가 운영하고 있다. 독일 니더작센주 괴팅겐에 있는 윤데마을주민은 조합을 결성해 직접 전기와 열을 생산하는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마을 전기생산량은 마을이 사용하는 전기의 2배나 된다. 농사가 끝나고 들판에 버려진 각종 부산물과 가축분뇨를 모아 혐기성소화를 통해 메탄가스를 만들고 메탄가스를 이용해 열병합발전을 하는 것이다. 전기는 생산해서 판매하고 생산단계에서 발생하는 열로 물을 데워 난방용으로 사용한다. 정부가 높은 가격으로 잉여 전기를 구매하기 때문에 조합원은 출자한 만큼 돈을 벌고 있다. 오스트리아, 덴마크, 독일의 성공적인 에너지자립마을들은 특징이 있다. 바로 에너지자립마을을 만든 주체가 시민들이라는 점이다. 시민들은 에너지를 국가에도 기업에도 온전히 맡기지 않았다. 시민들이 협동조합을 만들거나 시민발전소를 통해 에너지생산에 참여하고 있었다. 주민들이 자신들이 사는 마을에 필요한 에너지량을 정하고, 가장 적합한 방식을 찾아서 에너지생산에 나섰다. 지역에너지는 말 그대로 지역 주민의 삶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역에너지는 지역의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된다. 정부도 발전차액지원제도를 통해 재생가능에너지로 생산한 전기를 비싸게 구매해주는 제도를 마련하거나 초기 보조금과 투자비를 지원하고 있었다. 정부가 주민들의 에너지생산을 제도를 통해 지원하는 것이다.

우리 동네 에너지 농부들

지리산 산청 민들레공동체 식구들이 함께 모여 사는 건물에는 풍력발전기(1킬로와트)와 태양광발전기(600와트)가 설치되어 있다. 나무 합판과 버려진 접시형 안테나에 알루미늄 호일을 붙여 만든 태양열오븐과 태양열조리기로 여름에는 밥을 지어 먹는다. 민들레공동체에서 시작된 에너지자립 시도는 이제 갈전 마을로 번져가고 있다. 짚으로 집을 짓고, 단열도 강화하고 또 에너지를 적게 쓰는 생활양식을 실천하고 있다. 충북 서천에 만들어지고 있는 산너울 마을은 집을 지을 때부터 에너지를 덜 쓰도록 세심하게 설계했다. 2중 흙벽돌로 지어진 집의 벽두께는 벽돌과 벽돌 사이 공기층을 포함하여 36센티미터이다. 창문은 유리 한쪽 표면에 금속을 코팅해 단열성능을 향상시킨 로이복층유리를 사용했다. 지붕 위에는 태양열 난방시설이 있어 급탕용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태양광발전시설도 곧 설치할 예정이다. 입주민들은 난방으로 기름보일러 외에 목재펠릿보일러와 구들장벽난로를 선택할 수 있다. 산너울 마을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에너지 부담을 줄여 자연을 보존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꾸려나가는 것이다. 부안군 하서면에 자리잡은 등룡 마을은 30여 가구에 50여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등룡 마을에서는 2005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마을의 총에너지 50퍼센트를 태양광, 풍력, 바이오매스(메탄·에탄올 등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는 생물·미생물 자원) 등으로 대체하는 에너지자립마을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에너지자립을 선언한 등룡 마을이 중점을 두는 것은 에너지 절약과 효율향상이다. 마을주민들은 집집마다 사용하는 전기량을 기록하고, 백열등을 고효율 전구로 교체하고, 멀티탭으로 대기전력을 차단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지금도 마을주민들이 사용하는 가정용 전기의 60퍼센트는 마을 안에서 생산해낸다. 등룡 마을에 설치된 시민 햇빛발전소만 해도 시간당 36킬로와트를 생산한다. 괴산에서도 ‘마을 에너지 농부학교’를 열고, 농사일을 마친 농부들이 에너지 공부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주시, 가평군, 임실군, 진안군 등 마을공동체와 지자체가 머리를 맞대고 지역에너지와 에너지자립마을을 어떻게 제대로 만들어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풀뿌리 동네 에너지 정치가 하나둘 싹을 틔워가고 있다. 전세계에 불어닥친 경제위기는 ‘시장’도 ‘국가’도 우리 사는 세상의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우애와 환대에 기반을 둔 공동체경제, 협동조합체제가 어쩌면 에너지 문제에 있어서도 해답이 될 수 있다. 자기 집 지붕에서 태양광에너지를 직접 생산하는 일에 관심 있는 시민이 직접 ‘에너지 농부 클럽’을 만들어 서로 정보를 나누고, ‘농촌에너지협동조합’을 만들어 에너지 문제 해결에 함께 할 수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재생가능에너지 기업이 생기고, 기존의 거대 발전소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의 숙련된 경험과 기술을 지역에너지 체제를 만드는 데 활용할 수도 있다. 지역에너지의 잠재력은 무궁하지만 그 지역에 적합한 기술, 방법, 생활방식에 대해서는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고 지역주민의 합의를 바탕으로 선택해야 한다. 기후변화시대에 우리는 어떤 에너지를 선택해야 하는가? 우리는 이 질문 자체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금까지 더 나은 에너지원을 찾아 헤매고 있었다. 그러나 에너지원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에너지에 대한 생각 자체에 있다. 지구상에서 무한히 값싸게 얻을 수 있는 ‘꿈의 에너지’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한계를 인식하는 것이 인간을 좀더 겸손하게 만들고, 우리가 소비하는 에너지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게 만든다. 아껴 쓰고 잘 써야 한다. 또 지역에서 직접 에너지를 만들어서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삶을 바꾸고, 에너지체제도 바꾸자. 지역에 기반을 둔 에너지협동조합체제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하자. 우리들의 아름다운 공동체인 ‘마을’에서 에너지 문제를 고민하자. 답은 지역에 있다.

이유진 ― 녹색연합 기후에너지 국장.

《녹색평론》제106호 2009년 5-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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