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만의 ‘너무 소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2009.11.09 | 기후위기대응

한 사회가 간절히 바라는 목표는 숫자를 통해 표현되기도 한다. 한참 성장가도를 달리던 시기엔 ‘수출 100만 불탑’이 목표였고, ‘국민소득 2만 불’이 회자되다가 2년 전에는 ‘747성장’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숫자들의 공통점은 더 많이 생산하고, 더 잘살기 위한 ‘성장’을 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후변화 위기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지는 지금에 와서 우리가 가슴에 품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숫자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이다. ‘성장’이 아닌 ‘절제’를 요구하는 숫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8월 4일, 녹색성장위원회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대한 3가지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2020년 온실가스 배출전망치(BAU) 대비 각각 21%, 27%, 30%를 줄이자는 숫자가 등장했다. 얼핏 보면 많이 줄이는 것 같아 보인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80%는 석유, 석탄과 같은 화석연료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단순히 해석해 화석에너지 사용량을 2020년까지 30% 줄인다는 뜻일까? 아니다.

함정은 배출전망치, BAU라는 단어에 숨어있다. 우리가 온실가스에 대해 아무런 신경을 안 쓰고 그냥 살면 2020년에는 지금보다 37%가 늘어나서 8억1천3백만 톤CO2가 되는데, 거기서 줄이겠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앞으로 늘어날 것까지 미리 계산 하고, 거기에서 줄이겠다는 것이다.  BAU를 기준으로 삼으면, 앞으로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엄살을 피우면 피울수록 감축량을 크게 만들 수 있다. 정부안에 따르면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은 2005년도에 배출하던 양에서 오히려 8% 늘거나, 현상유지를 하거나, 겨우 4% 줄어든다는 계산이 나온다.  

지구에 살고 있는 66억 명의 사람들은 1년에 1인당 4톤씩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낸다. 우리나라는 한 사람당 12톤 이상을 배출한다. 올해 초 과학자들은 북극 해빙(海氷)이 빠르면 2013년 다 녹아버릴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IPCC 보고서는 우리가 지금수준으로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2020년 양서파충류가 멸종하고, 4~17억 명이 물 부족에 시달리며, 홍수와 폭우, 전염병 등이 일상이 된다고 전망한다. 그런데, 그 때에도 우리나라는 2005년 수준으로 1인당 온실가스 12톤을 계속 배출해도 되는 것일까?

정부가 제시한 안은 딱 개도국의 감축 목표량이다. 경제규모 세계 10위, OECD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세계 9위, 누적배출량 22위. 정부가 자랑하는 경제수준으로 보나 기후변화에 대한 역사적인 책임으로 보나 우리가 ‘개도국’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대로라면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곧 영국을 넘어서 세계 8위로 올라설 전망이다. 2020년에도 2005년 수준의 온실가스를 배출하겠다는 것은 그동안 이명박 대통령이 국내외에  ‘얼리무버(Early mover)’와 ’녹색성장‘을 널리 홍보해 온 것에 비해 한없이 초라한 목표치이다. 우리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량은 선진국 수준에는 못 미치더라도 적어도 개도국 수준보다는 높아야 한다.  

너무 소박한 감축목표보다 더 심각한 것은 정부가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녹색성장위원회’ 만의 숫자라는 점이다.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국민들 모두가 의미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숫자’가 되어야 한다. 일본은 2012년까지 1990년 대비 평균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6% 감축해야 한다. 목표 달성을 위해 ‘팀 마이너스 6%’ 캠페인을 펼치는데 시민들이 ‘팀’을 만들어, 온실가스를 줄이는 것이다. 심지어 프로야구팀도 야간경기 시간을 줄여 조명 에너지를 절약하고 있다. 공수 교대도 2분15초 이내에 하고, 투수들도 주자가 없으면 빨리 공을 던진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야구 경기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처럼 정부는 국민들에게 온실가스 감축 목표의 의미가 무엇이며, 우리의 삶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기후변화를 방치했을 때 우리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시하고, 감축목표량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어야 했다. 그러나 녹색성장위원회는 3가지 시나리오를 일방적으로 제시했다. 시나리오가 발표하기 전에 딱 한 곳 산업부문만의 의견을 청취했을 뿐, 어떤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산업계의 입장만 반영하다 보니 턱없이 낮은 목표치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라도 정부는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우리가 감내해야 할 몫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해야 한다. 지난 100년간 지구 평균온도가 0.74도 상승할 때, 우리나라는 그 두 배인 1.5가 올랐다. 우리가 배출한 온실가스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우리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다. 온실가스 감축을 이야기하면서 ‘녹색기술’, ‘녹색산업’ 투자활성화와 같은 ‘꿈’같은 이야기만 늘어놓아서는 안 된다.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은 우리의 ‘생존’을 보장하는 목표량이어야 하고, 그만큼 에너지 다이어트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지을 가장 중요한 숫자인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거쳐 ‘반듯하게’ 결정하자.    

이유진 (녹색연합 기후에너지국장)

“벌써 3개월 전의 글이네요. 녹색교통 소식지에 보낸 글입니다. 요즘 온실가스 감축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조금은 무기력해집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밤 진지하게 고민을 좀 더 해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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