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문] 대선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 기후대선을 위한 선택

2022.02.23 | 기후위기대응

연말 화제가 된 영화가 있다. <돈룩업(Don’t Look Up>.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 명배우들이 대거 출연하는 이 영화는 혜성 충돌을 둘러싼 블랙코미디다. 인류 앞에 닥친 초유의 위기 앞에, 정치, 언론, 기업 등이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 현실을 풍자하고 있다. 혜성충돌의 위기를 저마다 자기의 이익과 재미에 따라 ‘이용’할 따름이다. 정치인은 스캔들을 타개하기 위해, 기업은 희귀광물을 이용한 돈벌이를 위해, 미디어와 SNS는 시청률과 ‘좋아요’ 횟수를 올리는 데 열중한다. 영화 속 과학자는 지구를 향해 날아오는 밤하늘 혜성을 쳐다보라고 외치지만 (Just look up), 정치인은 득표에 도움이 안된다는 계산에 혜성 충돌은 별로 중요한 문제 아니라며 “don’t look up”을 자신의 선거 캠페인 메시지로 선택한다.

20대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역대급 비호감 경쟁이라는 평가가 들린다. 시민들을 가슴 뛰게 하는 비전과 정책은 보이지 않는다. 막장급의 비리와 스캔들만 난무한다. 우리가 맞닥뜨린 혜성충돌 – 기후위기, 불평등, 차별 – 의 위기에 어떻게 맞서고 해결할지 진지한 토론과 논의는 실종 상태다. 애써 쳐다보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한국의 현실이 답답하니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 보자. 작년 11월 남미의 칠레에서는 35살의 보리치라는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한국이라면 대통령 출마도 못 할 나이다. 칠레의 새 대통령이 내건 개혁의 핵심 비전이 ‘여성권 확대’와 함께 ‘기후위기 대응’이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생태 전환을 통해 경제를 개혁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런 칠레의 변화 배경에는 2019년 대중교통 요금 인상을 계기로 시작된 칠레 시민의 대규모 시위가 있다. 오랜 군사독재의 잔재와 불평등한 사회경제구조를 바꾸기 위한 시민들의 열망은 새로운 헌법 제정으로 모아졌고, 기후위기 대응의 비전을 내세우는 30대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나라, 유럽의 독일에서도 작년 새 정부를 구성하는 총선이 있었다. 11월 사회민주당, 녹색당, 자유민주당, 3개의 정당이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하게 되었다. 기존보다 석탄발전 중단을 8년 앞당기는 녹색당의 기후공약은 새 정부의 정책으로 채택되었고, 새 정부의 기후위기대응장관직을 녹색당에서 맡게 되었다. 기후를 앞세운 녹색당의 약진에는 작년 여름 유례없는 홍수피해를 겪으며 높아진 독일 국민의 기후위기 심각성에 대한 여론이 작용했다. 또한 유권자의 투표결과에 비례하여 정부 구성이 이뤄지는 독일의 정치제도도 한 몫을 했다. 사회민주당이 얻은 표가 25.7%였고, 녹색당과 자유민주당은 각각 14.8%, 11.5%를 얻었는데, 만약 1당 승자독식의 선거제도였다면, 고작 25% 득표율을 얻는 정당이 모든 권력을 가져갔을 것이다.

나라마다 다른 역사적 배경과 정치문화가 있으니 단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나라들의 경험과 비교해서 생각해 볼 점은 있다. 칠레와 독일의 정치변화의 배경에는, 아래로부터 시민들의 강력한 목소리와 행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시민들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그릇’(칠레의 새로운 헌법, 독일의 선거제도)이 마련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대선에서도 중요한 것은 후보가 아니다. 대선의 주인공은 후보들이 아니라 바로 유권자인 시민들이다. 시민들이 원하는 삶, 우리들이 원하는 사회에 대해 함께 모여 상상하고 와글와글 떠드는 공간이 바로 선거여야 한다. 투표권은 중요하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꼭 필요한 중요한 권리다. 하지만 주어진 선택지 중에서 어디에 표를 줄지가 민주주의의 전부가 아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헌법에 적혀있다. 하지만 주권자의 역할은 투표장 안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 수 있다. 후보만이 아니라 새로운 정치, 새로운 사회, 새로운 시스템을.

기후위기는 모든 시민의 삶에 영향을 준다. 좋은 일자리를 찾는 취준생, 야근에 지친 노동자, 해마다 농사가 힘들어지는 농부, 아이를 키우는 부모, 밥상물가가 걱정인 1인 가구, 제2의 코로나가 걱정인 시민, 공정한 사회를 원하는 청년, 이들의 모든 관심과 걱정들은 기후위기와 연결되어 있다. 탄소에 기반한 산업을 전환하면서 기후를 살리는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수 있다. 노동시간을 단축하면 삶의 질은 높아지고 에너지사용은 줄일 수 있다. 기상이변으로 인한 식량위기에 대비하려면 식량자급률을 높이고 농촌을 살려야 한다. 공항과 도로 건설 같은 불필요한 토건사업에 들어갈 예산을 줄이고 제2, 제3의 코로나에 대비한 공공의료를 대폭 확충해야 한다. 아이들의 안전한 미래를 위해서는 미세먼지, 온실가스, 방사능 없는 에너지로 전환해야 한다. 소수의 부유층과 기업이 대부분의 탄소를 배출하는 불평등한 사회구조를 깨뜨려야 한다. 이렇게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것은, 민생과 밀접히 연결된 일이다. 그러니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삶, 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삶을 원한다면, 기후를 얘기해야 한다.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하고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필요한 것은, 더 나은 상품을 고르는 자본주의의 ‘소비자’가 아니라 더 나은 사회를 직접 만드는 민주주의의 ‘시민’이다. 이 시민이 바로 대선의 주인공이다.

해당 글은 빅이슈 269호에 실렸습니다.

글. 황인철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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