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특강 세미나 <기후위기 시대, 재판정에 선 법>

2023.02.10 | 기후위기대응, 참여

지난 2월 9일 저녁, 라다 드 수자(Radha D’Souza) 교수님을 모시고 <기후위기 시대, 재판정에 선 법> 이라는 주제로 특강 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라다 드 수자 교수는 인도 출신으로, 영국 웨스트민스터 대학 교수이자 작가, 변호사, 활동가로써 오랫동안 지금의 법체계가 기후위기와 생태위기 앞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문제의식을 가지고 활동해왔습니다. 최근에는  ‘세대간 기후 범죄법(Intergenerational Climate Crimes Act)’과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Court for Intergenerational Climate Crimes; CICC)’를 주제로 한국과 유럽 등지에서 여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특강세미나는 한시간 정도의 라다 드 수자 교수님의 강의와 Plan 1.5 윤세종 변호사, 청년긴급행동 강은빈 대표 두분 패널의 질의응답, 그리고 청중 질문 순서로 진행되었습니다. 온라인 줌을 통해 60명의 참가자가 세미나에 함께했습니다.

강의에서 라다 드 수자 교수는 근대 자본주의의 출현과 함께 등장한 ‘권리’ 개념에 대한 비판을 중심으로 세대간 기후범죄 재판소 프로젝트의 취지를 소개했습니다.

인권 변호사로써 오랫동안 인권을 위해 일해온 라다 드 수자 교수는 여러 인권 활동가들을 만나며 ‘대체 인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묻게 되었다고 합니다. 드 수자 교수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인권이라는 개념이 역사 속에서 언제 어떻게 등장하는지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는데요.

현대의 인권 개념은 존 로크, 루소 등 계몽주의 사상가들에 의해 제기된 것으로, 당시의 인권은 재산에 대한 권리와 시민권(정치참여권) 두 가지를 포함했습니다. 당시 새롭게 떠오르던 상업가 계층은 전통적인 지주와 봉건주의 귀족 및 왕족에 대항하여 자신들의 권리를 얻길 바랬고, 이에 새로운 권리 개념을 창조하는데요. 판매자와 소비자 간에 물건을 사고 파는 계약관계를 정립하는 ‘권리’라는 개념이 정립되지 않는다면 자본주의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상업가들에게는 이러한 권리 개념의 발명은 필수적이었습니다.

근대 이전 봉건시대의 법의 기원은 성경과 교회제도였는데, 새로운 계몽사상가들은 이에 맞서 전근대적 봉건 시스템을 전복시키길 원합니다. 토지 중심의 전근대 사회가 상품 중심의 근대사회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토지를 상품화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을 땅으로 부터 추방하고(인클로저), 폭력적인 방식으로 토지와 사람을 분리시킵니다. 이러한 분리과정을 통해 토지는 재산으로, 사람은 노동력으로 전환되게 됩니다. 

인클로저 이후 상품 생산에 필수적인 두가지 요소, 즉 사람과 천연자원을 다시 합쳐내는 방법은 새로운 법과 기관을 만들어내는 것이었고, 그것이 바로 근대 국가와 기업입니다. 국가는 물론 근대 이전에도 존재했으나, 이 과정에서 중앙집권화되고 전문적인 관료와 군대를 갖추며 근대화되었습니다. 새로운 법체계는 국가와 기업에 법인격을 부여하고 이들이 법제도 안에서 자연인으로 인식되도록 했습니다. 법인격(국가와 기업)이 자연인과 같은 권리를 가지게 되었을 때, 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고 드 수자 교수는 말합니다. 

이어서 ‘인간’이라는 접두사가 어떻게 ‘권리’라는 말 앞에 붙게 되었는지, ‘인권(Human Rights)’이라는 개념의 탄생과정에 대해 드 수자 교수는 설명했습니다. 인권 개념이 출현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 UN 체제가 확립되었던 시기로, 20세기 초반에 들어서 자본주의 또한 근본적인 변화를 거치게 됩니다. 18-19세기 자본주의는 근대국가를 기반으로한 산업적 자본주의였으나 20세기 초반에 들어서 자본주의는 초국가적 형태로 변모하며 금융자본주의로 변화합니다. 또한 18-19세기에는 세계의 3분의 2가 식민주의 체제 하에 있었기 때문에 권리, 주권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UN이 성립되고 새로운 세계 질서가 확립되면서 인권이라는 권리가 국제화되고 제도화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인권은 UN에서 주관하고, 재산권에 대한 사항은 세계은행과 IMF 같은 별도의 기관들이 다루게 되면서 재산권과 인권은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인권이 어떠한 경제적 권리 없이도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는 거짓된 전제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홈리스에게 재산권을 논하는 것이, 실업자에게 노동권을 논하는 것이 무슨의미가 있으냐는 것이죠. 경제적 권리 없는 인권은 사실상 껍데기 뿐인 개념입니다. 그 가운데, 자본주의 체제를 존속시키는 세계은행과 같은 기관이 인권의 보호를 주창하는 동시에 재산권을 주장하며 사람들을 땅에서 쫓아내는 모순적인 행태를 지속하고 있습니다.

만약 재산권과 인권을 모두 지지한다면, 유일한 해법은 금전적 보상 뿐입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돈으로 치환하여 보상할 수 있다는 전제는 개인적 차원에서는 가능하나, 사회적 생태적 문화적 손실에 대해서는 적용될 수 없습니다. 이는 금전적 보상으로 회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결국 이러한 역사적 맥락 속에서 이루어진 인권과 재산권의 분리가 지금의 법체계의 주요한 문제임을 드 수자 교수는 지적합니다. 

이러한 배경을 바탕으로,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CICC)에서는 사람들과 모여 새로운 모습의 경제와 사회, 그리고 법체계를 이야기합니다. 법에 대한 우리의 상상력은 18-19세기에 멈추어져 있다고 수자 교수는 말합니다. 이 재판소에서 사람들은 ‘법인격’ 개념에 도전하며, 국가와 기업 같은 자연인이 아닌 존재들이 자연인과 같은 법적 권리를 가질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법과 제도는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살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에 목적이 있지만, 현재 우리의 법체계는 사람과 생명의 터전을 파괴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과 사람의 권리를 재정립하고, 와해된 관계와 문화를 재생시키는 데에 법이 어떻게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새로운 상상을 기존의 법정에서 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연대와 대화의 공간으로써 ‘세대 간 기후범죄 재판소’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고 드 수자 교수는 이야기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패널들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는데요. Plan1.5 윤세종 변호사는 기업 포스코가 삼척에 짓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을 중심으로 질문을 제기했습니다.

“삼척에 새로 지어지고 있는 석탄화력발전소는 우리 사회 전체에는 엄청난 악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함에도 기업의 재산이기 때문에 권리를 회수하거나 중단하기 매우 어렵다. 싸움을 하다 보면 이러한 기업의 재산권이 이토록 신성하고 보호해주어야 하는 것인가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법인격의 부여가 지난 50년간의 사회발전과 경제성장의 토대였기 때문에 그 자체를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인권보다 재산권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는 지금의 법체계가 문제인가? 아니면 법인에게 자연인과 같은 권리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문제인가? 만약 이러한 권리가 기업이 아니라 기업 내의 어떤 사람들에게 있었다면 무엇이 달랐을까?”

한편 청년기후긴급행동의 강은빈 대표는 새로운 세계의 법체계는 어떤 모습일지 질문했습니다. 

“근대 이전의 통치체계는 교회권력과 성경이라고 언급했다. 우리가 새로 상상해야하는 법체계는 과거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새로 만들어가야할 법의 토대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첫번째 질문에 대해 수자 교수는 “재산권과 인권 개념이 분리된 것 자체가 문제다”라고 말하면서, 자연과 인간이 법체계 속에서 어떻게 분리되었고 이것이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을 유지시키는데 어떻게 일조하고 있는지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법인은 개인의 모임과는 질적으로 다른데, 법인은 양심도 없고 계속해서 이윤을 창출하고 사업을 영위해야 한다는 본질적 속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이 하고 있는 글로벌한 규모의 개발과 사업은 몇 명의 자연인이 할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뛰어넘은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두번째 질문에 대해 수자 교수는 당연히 우리는 과거의 전근대적 사회로 다시 돌아갈 수 없고 새로운 연대와 평화의 토대를 닦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열망 뿐만 아니라 지식도 함께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유럽의 근대화 모델이 왜 그토록 파괴적이었는지, 단 500년 만에 지금과 같은 파국적인 세계를 만들어내게 되었는지 물어야 한다고요. 유럽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전환을 고민하는데 있어 중요한 핵심이라고 말했습니다. 

강연에서 라다 드 수자 교수는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변화된 사회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이러한 상상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역사가 우리를 여기에 데려다 놓았기 때문에 이곳에 있고, 우리가 하는 행동들은 모두 미래에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던지 간에, 과거와 미래를 현재와 연결시키는 사고방식을 가져야 함을 수자 교수는 강조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수자 교수가 기후위기, 생태위기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법체계’를 상상함에 앞서 과거 자본주의 출현과 함께 등장했던 기존의 법체계의 역사에 대해 긴 시간 설명했던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현실에 한쪽 발을 담그고, 지금의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초래한 지금의 법체계에 정면으로 맞서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새로운 세계의 새로운 법을 상상하는 노력이 함께 필요할 것 같습니다. 기후위기를 막기에 느리고 무력하기만 한 현실의 제도와 법을 보며 답답했던 와중에, 과거와 현재라는 더 큰 맥락속에서 새로운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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