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엽수기록단 2기가 활동을 마무리했습니다. 침엽수기록단은 따로, 또 같이 백두대간과 국립공원 등산로에서 목격되는 나무의 죽음을 관찰하고 기록하며 고산침엽수 고사에 대한 기초적인 데이터를 축적하고,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알리는 활동을 합니다. 이번 2기 활동을 통해 총 323건의 기록이 쌓였습니다. 참가자 신보람님이 기록해주신 후기를 나눕니다.


사진 : 태백산 모니터링 / 신보람
산과 숲과 나무가 좋았다. 지도를 펼쳐놓고 어디서 살지 고민했다. 지리산, 한라산, 덕유산 등등을 놓고 고민하다가 백두대간이 흘러가고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이 이어지며 낙동정맥이 뻗어나가는 어드메, 경상북도 봉화군에 자리를 잡고 13년째 살고 있다. 밭 뒷산이 소백산 국립공원으로 묶여있는 갈곶산이라 맘만 먹으면 밭에서 일하다가도 백두대간 종주를 할 수 있다는 자부심과 숲과 나무의 품에 안겨 살고 있다는 기쁨이 크지만, 도시라 가능했던 여러 작당들을 함께하기 어려워 아쉬웠던 날들도 있었다. 그러던 중 녹색연합 기후위기 침엽수 기록단 소식을 들었고, 어렵지 않게 갈 수 있는 주변 산들이 조사 지역에 포함되어 있어 지난 겨울 1기에 이어 이번 여름 2기 활동에도 참여하게 되었다.
태백산에 종종 드나들며 나무들을 만나왔다. 태백산 장군봉 천제단 부근 능선엔 오래전 죽은 주목이 여러 그루 있는데, 산세와 하늘과 어우러진 모습이 멋져서 너도나도 사진 찍느라 걸음을 멈춘다. 기록을 위해 산을 찾은 날, 거의 모든 바늘잎나무 앞에서 걸음을 멈춰야 했다. 유일사 등산로 시작점, 해발 1000m가 조금 안 되는 태백사 부근 길에 심어진 주목과 일본잎갈나무부터 임도 끝부분의 주목들, 임도가 끝나고 본격 산길이 시작되는 지점부터 1500m 넘는 정상부까지 이어지는 능선의 주목 분비나무 소나무 잣나무. 거의 모든 나무들에게 고사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었다. 겨울에 왔을 땐 눈이 쌓여있어 미처 못 봤던 걸까? 아님 상태가 더 안 좋아진 걸까? 노랗고 붉고 갈색빛이 도는 잎을 달고 있는 바늘잎나무를 겨울보다 훨씬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물리적인 충격으로 꺾여 마른 가지라든가 가지 끝의 잎 일부만 보고 고사중이라고 기록할까봐 구석구석 속속들이 살펴보려고 노력했는데, 색이 변해가는 잎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나무 밑엔 가지에서 떨어진 노란빛 잎이 수북했다. 죽지 말라고 시멘트로 발라놓은 주목 줄기와 뼈만 남은 것 같이 보이는 분비나무 고사목도 꽤나 눈에 띄었다. 큰 나무는 죽어가고 어린 나무는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가끔가다 눈에 띄는 어린 나무도 여지없이 노란 잎을 달고 있었다. 바늘잎나무들이 이 정도로 아픈 줄 몰랐다.

백두대간 수목원에서 진행된 교육 프로그램에도 참여했다. 구상나무 관련 전시를 보고 알파인하우스와 멸종위기침엽수원을 둘러보았다. 북한에 산다는 종비나무, 아무리 봐도 헷갈리는 분비나무와 구상나무, 주목, 씨가 날아와 멸종위기침엽수인척하고 자라는 소나무 등을 만났다. 구상나무 양묘장과 기타 고산식물 양묘장도 둘러보았다. 교육을 맡으신 이동준 박사님께서 1년생, 2년생, 3년생 나무들이 어떻게 다르고 어떤 방식으로 가지가 뻗어 나가는지 알려주셨다. 소나무에 비해 아주 천천히 자라지만 작은 포트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한 번만 옮겨주면 잘 자란다는 이야기, 일시적 스트레스를 받아 잎이 시들었지만 새 잎이 잘 나면 걱정 안 해도 된다는 이야기 등등을 들었다. 3년생 구상나무의 뿌리가 얼마나 튼튼한지도 보여주셨다. 복원에 애쓰시는 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감동받고 아기 나무들을 만나 희망찼던 마음도 잠시. 불과 몇 년 만에 구상나무와 분비나무 씨앗의 발아율이 현저히 떨어졌고, 발아에 성공한 몇 안되는 새싹들마저도 씨껍질을 스스로 벗지 못할 정도로 약하다는 말씀에는 마음이 무거워졌다.
산책하기 좋은 숲, 꽃 구경하러 나들이 가는 곳, 친구들 놀러 오면 호랑이 보러 가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던 수목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면적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한다. 관람객에게 공개된 곳의 몇 배(몇십 배?)에 이르는 수목원 부지의 숲, 시드볼트, 연구시설 등이 있다고 했다. 수목원 부지와 인근의 숲, 산불이 휩쓸고 지나간 숲이라든가 개발로 훼손된 숲, 전국 곳곳의 산과 숲과 섬을 다니며 식물의 생체와 종자를 수집하고 기록하고 연구하고 복원과 증식에 애쓰고 계신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조사하고 지키고자 하시는 분들의 노고가 느껴졌다. 수목원에 놀러갔을 때 보던 것이 다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사진 : 백두대간수목원 오프라인교육 / 신보람
온라인 교육과 오프라인 교육, 지난 겨울과 이번 여름 두 번의 태백산 산행과 기록을 통해 바늘잎나무와 가까워졌다. 구상나무와 분비나무는 보고 또 봐도 계속 헷갈리지만, 주목과 분비나무는 멀리서 봐도 한눈에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내 몸 바깥의 것이 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날이 있다. 바늘잎나무들을 만나고 교육을 듣고 사진을 정리하고 후기를 쓰는 동안 내내 뾰족한 잎과 뼈다귀 같은 줄기가 흘러들어왔다. 바깥의 것이 들어오면 나와 그것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것 같다. 지금껏 나라고 느꼈던 존재랄까 범위랄까 하는 것들이 더 이상 나라고 느껴지지 않기도 하고,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나인지 잘 모르겠기도 하고, 다 나인 것 같다가 나도 내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언제나처럼 일을 하고, 지금은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을 뿐이지만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바늘잎나무와 이름을 알고 안부를 묻는 정다운 사이가 되어 기쁘고, 산을 더 자주 찾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봉화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책 속에서 이야기하는 기후변화라든가 기후재난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나의 행동을 돌아보기는 했지만 지구 반대편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매년, 아니아니 더워서 잠 못 이루는 매일 밤마다 뭔가 크게 달라졌음을 느낀다. 지난 달, 온다던 장마가 사라져 발을 동동 구르며 비를 기다렸다. 평년보다 보름이나 늦게 들깨를 심었다. 들깨밭을 적셔준 고마운 비는 어딘가엔 엄청난 집중호우로 쏟아졌고, 강이 넘치고 산이 무너져 논밭이 잠기고 집이 쓸려갔다. 봄철의 산불도, 6월의 우박에 이은 6월의 폭염도, 한 번 올라치면 쏟아붓는 폭우도 모두 기후재난이다. 평년이라는 말을 갖다 붙이기가 머쓱할 정도로 재작년과 작년이, 작년과 올해가 다르다. 그야말로 시시각각 다르다. 처음에 봉화에 왔을 때 뒷집 할머니께서는 ”여기는 태풍이 안 오니더.“ ”이 동네는 풍수해가 없니더.“라고 하셨다. 하지만 재작년엔 “내가 여기서 태어나 올해 86살인데 강이 넘친 건 처음”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구에서 숨쉬며 살아온 지 40년 남짓밖에 안된 작은 사람도 날씨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겠는데 느리고 긴 호흡으로 아주아주 오랜 세월을 한 자리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큰 나무들한테 이 변화가 얼마나 당혹스럽고 갑작스러울까? 며칠 전 책에서 “우리의 생명이 나무들의 생명과 함께 존재하고, 우리의 안녕이 식물들 생명의 안녕에 달려 있고, 우리가 네 발 달린 동물의 가까운 친척임을 우리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라는 글귀를 읽었다. 산과 들과 강과 바다에서 일어나는 일들, 도시에서 시골에서 일어나는 일들, 바로 여기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 바늘잎나무에게 산양에게 물떼새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나의 이야기임을 확실히 알고 있다. 죽어가는 나무를 만나 마음 아파하고 울다가도, 고마워하며, 사랑하고, 지금 여기서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하지 않고, 할 수 있는 일들을 하는 수밖에 없다.
녹색연합 이다솜 서해 활동가님, 서재철 전문위원님, 백두대간수목원 허태임 이동준 박사님, 애써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쓴이 : 침엽수기록단 2기 참가자 신보람
침엽수기록단 3기는 가을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8월 중순에 참가자 모집 공지를 올리겠습니다. 보람님의 이야기처럼 바늘잎나무와 새롭게 관계 맺게되는, 그래서 이전의 나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침엽수기록단 활동에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문의: 자연생태팀 이다솜 팀장 (leeds@green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