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주능선에 29개소 대규모 산사태…기후변화 때문 추정

2004.10.11 | 고산침엽수



백두대간의 정점인 지리산국립공원의 핵심 지역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하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과 녹색연합은 지난 2003년 5월부터 2004년 9월까지 1년4개월간 지리산국립공원 내에서 발생한 산사태를 조사했다.

이 결과 총 29곳의 대형 산사태를 현지 확인했으며, 이 중 27개소 지역이 천왕봉을 중심으로 한 지리산 동부 지역이었다. 산사태 발생 지 중 26개 지역을 분석한 결과, 길이 100m 이하가 12개소(46.2%)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100~200m의 산사태(9개소, 34.6%)였으며, 400m 이상의 규모를 가진 宕?1군데 확인됐다.

평균 폭은 10m 이상이 23개소로 대부분 매우 넓은 폭을 가지고 있었고, 산사태 발생 지역의 평균 경사는 30°이상으로 급경사였다. 나머지 3개소는 2004년 1월 이후 확인되어 계속 관찰 중이다. 발생한 산사태는 모두 자연형 산사태로 집중호우, 지반 불안정 등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 지리산 주능선 총 29개소에서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했다. 하지만 천왕봉에서 중봉쪽으로 보이는 2개소를 제외하면 주능선 등산객들도 알지 못한다. 하늘에서 봐야 정확한 실상을 알 수 있다.  

규모가 비슷한 백두대간의 타 산지보다 유독 지리산에 자연형 산사태가 다수 발생한 것은, 지리산이 집중강우를 몰고 오는 태풍의 길목인 남해안 바로 북쪽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지리산은 비구름층이 고도 1500m 주능선을 넘을 때 집중적인 강우를 유발한다. 일반적으로 산사태는 1차적 원인이 강우이며 2차적 원인은 지반 및 지질 상태, 3차적 원인이 지형(경사)으로 보고 있다.



백두대간과 주요 산지형 국립공원 중 지리산에서 대형 산사태가 집중 발생하는 것은 지리산의 지질, 지형적 특징과 함께 기후 변화의 한국적 상황에서 오는 현상으로 보이며, 향후 국가적 차원의 지속적인 관찰과 조사 연구가 요청된다.

산사태는 해발 1500m가 넘는 아고산대 식생지역에서 많이 나타났다. 이곳은 지리산국립공원의 주요 지역들로 생태적으로 가장 민감하고 보전 가치가 높은 곳들이다. 가문비-구상-주목 등 고산침엽수림과 사스래나무-야광나무-신갈나무 등이 어우러져 있는 국내의 으뜸인 숲들으로 녹지 자연도 9등급 이상인 곳이다.

산사태가 발생하기 시작한 것은 대략 10~15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지금처럼 30개소 가까이 나타난 것은 2000년 이후로 보인다. 하지만 발생 지역 자체가 등산로와 떨어져 있거나 등산로 상에서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탐방객들도 거의 모르고 있는 상태다.

▲ 산사태의 규모는 대부분이 대형이다. 냉장고와 승용차만한 바위가 계곡 아래까지 쓸고 내려갔다.  



천왕봉 정상에서 관찰되는 중봉 서남사면 2개소를 제외하면 대부분 하늘에서만 관찰이 가능하다. 항공기를 이용하거나 발로 직접 7부~9부의 구석구석을 살펴 보지 않으면 쉽게 확인하기 어렵다.

대부분 국민들은 지리산국립공원 내에서 30여회에 달하는 산사태가 발생한 것을 모르고 있다. 하지만 국내의 14곳에 달하는 산지형 국립공원을 비롯해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수십 개의 주요 산들 중 유독 지리산이 대형산사태가 많이 나타나고 있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다.

인위적인 재해형의 산사태가 아닌 자연형의 산사태가 30여회나 발생한 것을 단순한 자연 현상으로 넘기기에는 지리산의 환경 생태적 가치와 자연자원적 가치가 너무도 크고 중요하다.

이에 국립공원관리공단 지리산사무소와 녹색연합은 함께 본격적인 산사태 모니터링을 시작했다. 하지만 전체 발생 지역에 대한 기본 현황은 새롭게 파악한 전수조사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제석봉에서 중산리로 쓸려간 산사태 현장. 발생 현장별로 상당한 규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번 모니터링은 향후 지속적인 작업을 위한 토대마련과 준비의 성격이 강하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장기적으로는 지리산국립공원에서 발생한 유례가 드문 산사태의 원인까지 규명할 수 있을 것이다.

지리산의 이례적인 산사태와 관련하여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일단 1년에 2회 전수 항공조사 및 위성 조사를 실시하여 산사태의 추가 발생상황과 변화상황을 모니터 하는 것이 필요하다.

봄과 가을인 5월과 10월, 2회 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지리산 전체 산사태 발생 지역에 대한 변화상을 조사하기 위해선 필수적이다. 또 항공조사와 위성 조사를 통한 입체적인 방법을 동원해야만 산사태의 확산 여부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발생 지역은 아고산대로 지속적인 생태계 변화 모니터를 수행할 경우 민감 지역의 자연복원 가능성에 관한 귀중한 데이터로 활용할 수 있다. 이에 산사태의 추가 진행 여부뿐만 아니라 발생한 지역의 식생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에 대한 정밀한 모니터가 절실하다.

▲ 산사태가 발생한 곳은 백두산에 집단 자생하는 가문비군락을 비롯하여 구상나무, 주목 등 남한 최고의 생태계를 자랑하는 곳이다.  

현재 지리산국립공원에서는 장터목(천왕봉지역 포함 관리), 벽소령(세석지역 포함), 노고단(반야봉 지역 포함) 등 세 지역에 AWS(자동기상관측시스템)을 설치 운영 중이다. 여기서 관찰 및 축적되는 기상자료도 산사태 발생지역의 모니터링에 기초가 될 수 있다.

또한 이는 향후 타 국립공원과 백두대간에 확대하여 기상인자와 산사태와의 연관성을 조사연구하는 바탕자료가 될 것이며 국가적 차원에서 기후변화에 대비하는 초보적 대책이 될 것이다.

또 지리산의 산사태에 대해 환경부, 과기부, 산림청, 기상청, 국립공원관리공단, 한국지질자연구원 등이 합동으로 관찰하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관련기관간의 정보 교류와 공동 모니터링 등 협조 체계 구축을 통해 한국형 기후변화 현상에 대한 조사와 연구분석 작업이 필요하다.

이제 우리 나라도 본격적인 기후변화의 재앙이 시작된 것은 아닌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지리산 산사태가 우리 국민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 자연의 엄중한 경고가 아닌지, 지금부터라도 냉정하게 겸허한 자세로 자연의 변화를 파악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글 : 자연생태국 서재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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