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달가슴곰 출현주의”
지리산을 좋아한다면 위와 같은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본 적 있을 것이다. 근 몇 년 사이에는 탐방로에서 곰을 목격했거나 반달가슴곰이 농가를 습격했다는 기사 역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불과 1999년까지만 해도 국토개발로 인한 서식지 파괴와 보신 풍조가 만연하며 무분별하게 행해진 밀렵으로 인해 개체수가 격감하였고, 멸종위기에 처한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에서 5~10개체만이 서식할 것으로 조사되었다. 반달가슴곰의 실체는 1983년 설악산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반달가슴곰 이후로 찾아보기 어려웠는데 17년 만인 2000년 11월, 진주 MBC의 카메라에 바위샘에서 물을 마시는 반달가슴곰의 모습이 선명히 포착되었다. 이로써 지리산에 야생 반달가슴곰이 서식한다는 것이 확실해졌고 반달가슴곰 보호와 복원에 대한 요구도 본격화했다.
2001년 사육곰 농장에서 태어난 4개체 장군, 반돌, 반순, 막내가 새끼곰의 자연적응실험을 위해 지리산에 시험적으로 방사되었다. 이후 2004년 러시아 연해주에서 토종 반달가슴곰과 유전자가 동일한 어린 6개체를 들여와 지리산에 방사하며 멸종위기종 복원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섬처럼 고립된 서식지, 지리산
5개체 내외가 서식하고 있을 것으로 추측되는 반달가슴곰을 개체수의 변화, 환경의 변화를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100~1000년 동안 생존확률이 99% 이상 되는 ‘최소존속개체군’인 50개체까지 늘리는 것이 반달곰 복원 1단계의 목표였다. 그러나 이러한 목표는 당초 계획했던 2020년보다 2년 앞당긴 2018년에 56개체로 조기 달성하게 되었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목표치를 웃도는 수를 이르게 달성한 것을 두고 반달가슴곰 복원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평가했다. 단순히 반달가슴곰의 개체수가 늘어난 것만으로 복원사업이 성공했다고 볼 수 있을까?
백두대간의 생태축으로 연결되어야 할 지리산은 섬처럼 고립되고, 내부 또한 탐방로로 파편화되어있다. 복원사업 계획 단계부터 반달가슴곰과 같이 활동 영역이 넓은 대형 야생동물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서식지 확보에 대한 구체적 계획 없이 진행되는 것에 문제의식이 컸다. 현재 지리산 일대에 서식하고 있는 반달가슴곰은 100개체 내외로 추측되며, 지리산 내 최대 적정 개체수인 56~78개체를 훨씬 넘어선 상황이다. 방사된 반달가슴곰 KM-53은 경북 상주시 천탁산에서, KM-55는 전남 광양시 백운산에서, 표식기가 없는 새끼 반달가슴곰은 전북 장수군에서 발견되는 등 서식지로서 이미 포화 상태인 지리산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곰들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인간이 그은 울타리
가장 처음 지리산 밖으로 서식지를 개척한 곰은 KM-53, 일명 ‘오삼이’었다. 오삼이는 두 번의 포획 및 방사에도 불구하고 덕유산, 수도산, 민주지산 등 백두대간을 따라 북쪽으로 서식지를 넓혀갔다. 2018년 5월에는 수도산으로 올라가던 중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건너다 관광버스에 치이는 교통사고를 당하기까지 이른다. 오삼이의 의지를 꺾지 못한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수술 후 회복한 오삼이를 수도산에 방사했다. 그로부터 5년 뒤 2023년 6월 오삼이는 천탁산 인근에서 민가로 향하다 마취총에 맞은 채 계곡에 빠져 사망하게 된다. 제대로 된 서식지 복원 없이, 야생동물의 멸종 그리고 인위적인 종복원에 대한 철학적 숙의 없이 진행된 멸종위기종 복원사업. 좁디좁은 서식지 안에 곰을 가두고, 발신기를 통해 하나하나 뒤쫓는 관리 방식 아래서 오삼이와 같은 죽음은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사건 중 하나에 불과했다.

복원사업의 성패는 곰이 아닌 인간에게 달렸다
반달가슴곰은 협소하고 열악한 서식지 안에서도 예상보다 빠르게 적응하고 개체군을 형성했다. 그러나 인간은 과연 반달가슴곰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을까. 생태조건이 우수한 서식지가 마련되고 곰이 안착한다고 하더라도 곰과 삶의 공간을 공유하는 주민들이 반대한다면, 탐방객이 곰을 두려워한다면, 더 나아가 국민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그 공간은 곰을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환경부와 국립공원공단은 반달가슴곰을 복원하는 한편, 모순되게도 그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행위에 동조하고 있다. 지리산국립공원 바로 앞에 골프장 건설을 위해 나무 1만 그루가 베어지고, 정령치까지 이어지는 산악열차 사업이 계획되고, 지리산에 걸친 4개군 모두 케이블카 설치를 요구하고, 벽소령을 관통하는 도로를 건설하겠다고 한다. 국립공원을 보호하고 반달가슴곰을 지켜야하는 일에 앞장서야 할 환경부는 정작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한다.
반달가슴곰은 지리산의 너른 품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는 반달가슴곰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을까. 늦었지만 이제라도 준비와 고민이 필요한 때이다.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서해
2025.4.14
*이 글은 빅이슈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