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녹색연합이 2003년부터 바라왔던 미래가 곧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바로 2026년부터 대한민국에서 더는 개인이 곰을 소유하거나 사육할 수 없고, 웅담도 채취할 수 없는 나라가 되기 때문이지요. 웅담을 빼먹기 위한 곰 사육이 합법인 나라는 이제 중국이 유일합니다. 오로지 인간의 욕망을 위해 곰을 번식시키고 죽을 때까지 좁고 더러운 뜬장에 가둬 산 채로 즙을 빨리게 하다니요.
녹색연합은 한의학계와 웅담을 대체할 수 있는 한약재를 조사하기도 하고, 더 이상 곰을 사육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마련하며 오랫동안 싸워왔습니다. 2023년 사육곰 산업 종식을 위한 「야생생물법」 개정안이 국회본회의를 통과했고, 개정된 법안에 따라 2026년, 실질적인 사육곰 종식을 앞둔 것입니다.
농가에 남은 곰들이 곧바로 자유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여전히 곰들은 농장주의 사유재산이기에 이들을 생츄어리로 옮기기 위해서는 큰 비용이 필요하지요. 오랫동안 열악한 환경에 내몰렸던 곰들이기에 의료 지원과 안전한 이동 역시 보장되어야 하고요. 그래서 녹색연합은 올봄 곰 이삿짐 센터를 열고 후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 오백만 원을 후원하신 거예요. 오백만 원은 정말 정말 큰돈이잖아요. 더운 여름 망고빙수를 삼백 번 이상 사 먹을 수도 있고,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가 아니라 두세 달은 살아도 될 돈이잖아요. 그런데 이 큰돈을, 곰 구출하는 데 써달라고 후원해 주신 거예요. 구출할 곰의 이름도 지어주셨어요. 바로 ‘동치미’입니다. 자유를 얻은 곰 동치미라니, 시원하고 유쾌한 이름입니다. 도대체 어떤 분이 후원해 주셨을까 정말 너무 궁금해서 직접 만났습니다. 환경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과 이어지는 순간, 녹색희망 <초연결>! 강진숙 님입니다.
왜 곰에게 ‘동치미’라는 이름을 지어주셨나요? 그게 가장 궁금했습니다(웃음).
사실 이렇게 큰 금액을 후원할 생각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제가 만든 곰 캐릭터가 있거든요. 그 캐릭터 이름이 동치미예요. 오백만 원을 후원하면 곰 한 명에게 이름을 지어줄 수 있는 옵션이 있더라고요. 제가 후원해서 구출된 그 곰이 동치미라는 이름을 갖게 되면, 캐릭터에 불과했던 곰이 실제 존재하는 곰이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바로 후원하고 이름을 ‘동치미’로 하고 싶다고 문자를 보냈죠.
동치미처럼 시원하고 개운하게 살아라, 라는 의미는 아닐까 생각했었어요. 한 마리를 구해서 이름을 지어 주면, 내가 만든 곰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신 거네요. 그래도 이름 하나에 500만 원은 적은 금액이 아니잖아요.
100% 순수한 이타심이라기보다는 개인적 욕망이 많이 투영되었어요. 제가 사실 오타쿠거든요. 내가 만든 캐릭터로 실재하는 곰의 이름을 지어줄 수 있다는 옵션이 아무래도 큰 매력으로 작용했어요.
어디서 봤는지 자세히 기억은 안 나는데요, 예민한 사람은 자신의 심리를 안정시키려는 도구로 ‘이타성’을 사용하면 좋다는 이야기를 봤거든요. 사실 저도 이상한 면이 많고 성격이 좋다고 할 수 없지만, 후원을 하고 나면 살면서 그래도 ‘이 부분은 이렇게 세상에 기여했다’ 안도감이 들면서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해요. 그런 마음이었습니다.
사육곰 산업, 그리고 곰 이삿짐 센터 프로젝트에 대해 어떻게 처음 알게 되셨나요? 후원을 결정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것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시묘일이라는 트위터 계정에서 처음 사육곰 이야기를 접했던 기억이 나요. 예전에도 생츄어리 사업을 하는 단체가 있어서 후원했던 적이 있었고요. 곰의 복지를 위해 서명을 하고 후원 요청 전화를 받았는데, 막상 전화를 받자 괜히 모른 척했어요. 제가 어떤 문제를 감당하려고 마음먹는 순간 책임이 생기는 거라 생각했거든요. 더 이상 내면의 죄책감을 외면할 수 없이 마주해야 하고, 안고 가야 하니까요. 불편하잖아요. 내가 사육곰 문제를 만들어 낸 당사자도 아닌데 왜 이렇게까지 책임감을 가져야 해, 불편해! 하는 거죠. 이런 마음을 느낀 사람들이 사회의 다양한 문제에 의도적으로 무관심해지는 경향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도 결국 저는 후원을 했어요. 저에게 전화하신 활동가분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상황이 심각하다고 느꼈어요. 농장의 곰들에게 시간이 얼마 없다는 것도요. 만약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면 이렇게 후원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당장 내년 1월부터는 곰들이 도살될 수 있다고 하니까 후원을 결심했죠.
녹색연합이 걸었던 그 한 통의 전화로 인해서 앞으로는 사육곰 문제에서 눈 돌릴 수 없게 된 거잖아요. 진숙 님은 농장주도 아니고 웅담을 먹은 당사자도 아니니 불편함을 덮고 살아갈 수도 있는데, 이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끝까지 보겠다고 결심하신 거였네요. 큰 금액을 후원해 주신 것도 물론 쉽지 않은 일이지만, 문제를 직시하겠다는 결심이 더 대단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 자연 환경이나 야생동물의 권리에 대해 관심이 많으셨나요. 어려움에 처한 다양한 동물종 중 곰에게 더 마음이 쓰인 이유도 궁금합니다.
그냥 많이 안타까웠어요. 개 농장의 개가 처한 상황과 다름없다고 봤거든요. 사육곰도 굉장히 열악한 뜬장에서 살잖아요. 그런데 곰은 인간을 해치는 동물이라는 인식 때문인지 개 농장 이슈에 비해 사육곰 이슈는 주목받지 못하는 게 안타깝더라고요. 유튜브에서 지리산 반달곰을 검색해 보면 악플이 너무 많이 달렸어요. 결국 먹으려고 해외에서 들여온 것도 사람이고, 복원해 방사한 것도 사람인데 인간이 초래한 일에 희생되는 곰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일시후원과 더불어 정기후원도 시작하셨지요. 녹색연합 회원이 되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녹색연합 활동에 어떤 기대를 품고 계신지요.
녹색연합에 기대한다기보다는 제가 더 참여하고 싶어요. 연초 서명을 통해 녹색연합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 다양한 활동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비건 짜이 만들기 워크숍도 가보고 싶고, 제가 구한 곰을 만나러 가는 행사에도 꼭 함께 하고 싶고요. 동치미, 실제로 너무 만나고 싶어요.
사육곰 구출 참여를 망설이는 시민들께 건네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저는 영화 메리다를 보고 곰을 좋아하게 됐어요. 혹시 안 보신 분이 있다면 꼭 한 번 보시길 추천 드려요. 그리고 한국인은 웅녀, 곰의 후예잖아요. 곰과 뗄 수 없는 민족이니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리고 정말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이 기회에 곰에게도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리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곰이사’로 삼행시 부탁드립니다.
곰: 곰들의
이: 이사를 응원해 주세요!
사: 사랑합니다

우리는 곧잘 ‘고도’를 기다립니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줄 영웅적인 누군가를 기다리죠. 하지만 실제로는 한 사람의 영웅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지난 봄, 광장에서도 그랬고요. 곰 한 명을 구할 후원금을 내고, 그 곰에게 사랑이 담긴 이름을 지어줄 사람이 누구일까 활동가들은 기다렸습니다.
서명을 받고, 전화를 걸어 후원을 요청하는 과정은 단순히 모금을 위한 활동은 아닙니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달라는 초대이자 요청입니다. 우리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는지 지켜보고, 그것에 이의가 있다면 거침없이 제기하고, 새로운 방향이 필요하다면 가리키고, 그렇게 한 팀으로 협업해 달라는 요구이지요. 강진숙 님은 그 모든 과정에서 외면하고 싶은 불편함을 끌어안고, 곰의 현실과 변화의 가능성에 적극적으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뜻깊고 감사한 만남입니다.
곰 이삿짐 센터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곰 한 명이 동치미라는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의 대모 강진숙 님이 생츄어리에서 동치미를 만날 때가 머지않았습니다. 이제 동치미에 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이름도 속속 등장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인터뷰 진행과 정리: 홍보팀 김다정, 배선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