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 녹색연합이 진행 중인 ‘곰 이삿짐 센터’ 프로젝트는 웅담 채취용 사육곰들의 비극을 알리고 곰들을 철창에서 구출해 보호소로 이주시키기 위한 캠페인입니다. ‘곰 이삿짐 센터’에 공감한 싱어송라이터 이랑은 사육곰들을 위한 곡을 직접 만들고 공연까지 함께했는데요. 이랑이 녹색연합 그린콘서트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곡 작업 비하인드, 그리고 예술가로서 사회 문제에 참여하는 이유와 고민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낮 기온이 35도가 넘는 무더운 날, 잠시 맡아 돌보고 있는 개들(똘똘이, 맥스)과 함께 등장한 이랑은 자연스럽게 동물과의 관계, 돌봄, 사육곰을 만났던 순간에 대한 이야기로 인터뷰를 시작했습니다.

귀여운 곰이 그렇게 살고 있을 줄 몰랐죠.
이랑: 녹색연합에서 ‘사육곰’을 위한 노래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솔직히 말하면 그때까지 사육곰이라는 존재를 몰랐어요. 유기견, 유기묘 구조 활동이나 모금 캠페인에는 익숙했는데, 대형 포유류, 특히 곰이 그런 식으로 철창에 갇혀 있다는 건 상상도 못 했거든요. 곰 캐릭터나 곰 인형을 저도 무척 좋아하는데, 그래서 더 충격이 컸나 봐요. 그냥 이미지로만 소비하던 그 존재들이 실제로 나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고, 또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몰랐던 게 부끄럽기도 했고요.
녹색연합: 사실 캠페인을 새롭게 리뉴얼하면서 곰 캐릭터를 만들었는데, ‘귀엽기만 하면 안 된다’라는 고민이 컸어요. 팔 없는 곰, 귀 잘린 곰… 실제 현실이 너무 극단적이긴 해서, 캐릭터로 어떻게 담아야 할까 고심했습니다.
이랑: 맞아요. 뜬장 가까이 다가가니 코를 찌르는 냄새, 곰들이 내는 거친 숨소리와 울음소리, 철창을 흔드는 소리도 생생한데, 가까이서 보니 곰마다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너무 많은 거예요. 털이 듬성듬성 빠져 피부병이 심한 곰, 서로 싸우다가 귀가 찢기고 잘려 나간 곰, 앞발이 잘린 곰도 보였어요. 철창이 워낙 비좁으니 같이 살면 싸울 수밖에요. 좁은 뜬장 철창 안에서 계속 정형행동을 하는 곰도 있었거든요. 몸을 좌우로 흔들고, 앞발로 철장을 끊임없이 두드리고, 왔다갔다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모습을 봤죠. 처음 보면 마치 “저 곰이 신났구나”라고 착각할 수도 있는데, 사실은 갇힌 생활에서 오는 이상 행동이라는 설명을 들었죠.

녹색연합: 그래서 사육곰 농가 현장 방문을 제안했을 때 살짝 걱정했습니다. 그런 비극적인 현실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부담스럽지는 않으셨어요? 프로젝트 제안을 받고 어떤 마음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
이랑: 전혀 부담스럽지 않았어요. 오히려 농가를 직접 방문하면서 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어서 큰 배움이 되었죠. 사진이나 영상으로만 보던 걸 직접 오감으로 느끼는 것은 차원이 다르더라고요. 또 프로젝트 협업을 수락할 때 사육곰에 대해 더 알아봐야겠다,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제가 직접 찾지 않아도 배울 자료를 주고, 또 배운 것으로 작품을 만들 기회까지 주어진 거잖아요. 너무 이상적인 작업 방식 아닌가요! 이런 기획에 함께할 수 있는 아티스트로 제가 성장했다는 사실이 뿌듯합니다. 어렸을 때 ‘무한도전’ 출연자들을 부러워했거든요. 프로그램에서 뭔가를 배우고, 경험하고, 그 과정이 곧 일이 되고. 이번 프로젝트가 저에게는 ‘무한도전’ 같은 경험이었어요. 창작자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제안이었습니다.(웃음)
‘똑똑똑’ 곰들이 보내는 신호에 ‘우와~’할 수 있게
이랑: 처음에 <곰곰곰 나가자 문문문 열고> 가사를 쓸 때는 곰들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정말 잔혹한 버전으로 표현했어요. 하지만 캠페인 송은 널리 퍼지고 따라 부르기 쉬워야 하잖아요. 그래서 그 잔혹한 현실을 표현하되, 누구나 쉽게 부를 수 있도록 멜로디도 밝고 경쾌하게 바꾸고, 가사도 새로 썼어요.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해요. 음악만 들으면 “어? 뭐지, 되게 귀엽고 신나는 노래인데?” 하다가도 가사를 곱씹어 보면 눈물이 찔끔 날 수도 있는 노래가 됐으니까요.
녹색연합: 농가에서 들은 ‘똑똑똑’ 소리를 곡에 넣으신 게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그 이유를 좀 더 설명해 주시겠어요?
이랑: 현장에 갔을 때, 곰들이 내는 ‘똑똑똑’ 소리를 녹음해 뒀어요. 그게 너무 신기하게 들리더라고요. 처음엔 “이게 뭐지?” 싶었어요. 귀엽고 재미있는 소리처럼 들렸거든요. 나중에 알아보니 스트레스받은 곰이 반복적으로 내는 소리더라고요. 그래서 ‘아, 우리가 듣고 있는 소리에도 의미가 있구나’ 싶었어요. 처음엔 귀엽다고만 생각했던 소리가 사실은 평생 갇힌 채 반복되는 하루를 살아가는 곰의 신호였던 거죠. 그 이후엔 고민이 생겼어요. 이 소리를 어떻게 음악 안에 넣을 수 있을까? 그냥 효과음처럼 쓰기보다는, 듣는 사람들이 ‘이게 뭐지?’ 하고 따라 하다가 어딘가에서 그 정보를 접하게 되면, “아, 이게 곰이 괴로워하는 소리였구나” 하고 깨닫도록 의도했죠.

‘똑똑똑’은 아무 정보 없이 들으면 귀엽고 단순한 리듬처럼 들리지만, 그 의미를 알고 나면 슬픔과 절규가 담긴 소리로 다가오도록 구성했어요. 그리고 그것이 이어져 ‘울지 말고’라는 가사로 자연스럽게 연결돼요. 갇힌 존재가 보내는 구조 요청을 리듬 속에 숨겨둔 셈입니다.
녹색연합: 노크처럼 들려요. 문 두드리는 소리요. 곰이 철창 안에서 ‘나 여기 있어요’라고 신호 보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구조 요청의 의미도 있지만, 동시에 밖으로 나가고 싶은 열망으로도 느껴지고요. ‘문을 열어줘’, ‘나도 나가고 싶어’ 같은.
이랑: 사실은 울부짖음의 ‘우아~’와 감탄의 ‘우와~’ 사이에 있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경계를 의도적으로 모호하게 만들었고요. 노래의 후반부에 나오는 ‘우와~’는 일종의 감정적 분출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리듬감 있게 진행되다가, 마지막에 폭발하듯이 모든 억눌린 감정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이거든요. 곰이 느껴보고 싶은 모든 감정들 — 놀람, 공포, 기쁨 같은 — 그런 감정들을 다 겪어보고 싶다는 열망이 담긴, “나는 살아 있다”라는 외침이자, 존재를 증명하는 소리였어요.
녹색연합: 저희도 ‘감탄’과 동시에 ‘절규’를 들었어요. 듣는 사람 감정에 따라 다르게 들리는 부분도 무척 좋더라고요.
이랑: 맞아요. 어떤 사람은 우아~를 듣고 “해방이다!”라고 느끼고, 또 어떤 사람은 “나 지금 너무 억눌려 있어”라고 느낄 수 있죠. 그 모호함을 그대로 두고 싶었어요. 왜냐면 해방이라는 게 항상 명쾌하거나 완전하지 않잖아요. 기쁘면서도 두렵고, 슬프면서도 아름답고, 벅차면서도 불안한 감정이 다 섞여 있잖아요. 그 복잡한 감정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그게 ‘우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예술이 어디에나 자유롭게 닿을 수 있기를
녹색연합: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느낀 건, 이랑 님은 단순히 음악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사회를 향해 목소리를 내는 아티스트라는 점이었어요. 이랑 님이 과거 인터뷰에서 “사회에 속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 예술은 정치나 사회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이 프로젝트 제안할 때도 ‘이랑 님이라면 진지하게 바라봐 주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그 철학이 단순한 태도가 아니라, 신념의 연장선에 있다는 걸 느꼈거든요. 그런데 아티스트로서 이런 태도를 유지하는 게 쉽지는 않으실 것 같은데요.
이랑: 진짜 어려워요.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정치적인 말’이 아니라, 그냥 ‘자기 삶의 이야기’를 꺼낸 것뿐인데 왜 이렇게까지 불편해하는 걸까 싶죠. 저는 예술과 사회를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사회의 일부로 살아가는 한, 정치적인 이슈를 피해 갈 수 없잖아요. 환경 문제도 그렇고, 여성·소수자 인권 문제도 그렇고, 우리가 세상 돌아가는 일에 아무 관심 없이 창작의 방에만 콕 박혀 있을 수는 없는 거죠.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예술가가 자기 목소리를 내면 “왜 정치적인 발언을 하느냐” 하고 비난하거나, 심한 경우 일거리를 끊어버리는 분위기가 있어요. 대중 예술계에서 저에게 거리 두는 걸 느낄 때면 솔직히 속상하기도 해요. 제가 엄청 과격한 주장을 하는 것도 아닌데, 외국 친구들이 듣기엔 “정치적 의견은 누구나 일상적으로 낼 수 있는데 왜 한국에선 그게 어렵냐” 할 정도거든요.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안 하고 살 수는 없으니까요. 다행히 저를 신뢰해 주는 분들 덕분에 오히려 좋은 기회들도 찾아와요. 이번 사육곰 프로젝트처럼요. 팬들이나 대중 일부는 “이랑은 이런 사회 문제는 당연히 알고 있겠지, 앞장서겠지” 하고 높은 기대를 갖기도 해요. 가끔은 그 기대가 부담일 때도 있어요. 저도 사람인지라 세상의 모든 이슈를 다 알 수도 없는데, 어떤 분들은 자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문제를 제가 몰랐다 하면 실망하기도 하고 심지어 저를 비난하기도 하거든요. 그럴 때면 ‘내가 뭘 놓쳤나, 난 부족한 사람인가’ 혼란스럽고 버거울 때도 있었어요.
그렇지만, 그런 기대와 요구가 쌓여서 저를 지금처럼 만든 면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역사나 다른 공익적인 프로젝트 제안들도 하나둘 오는 거겠죠. 제가 가진 재능과 예술이 사회를 위해 쓰일 수 있음에 감사하게 생각해요. 음악을 계속하다 보니, 이제는 이런 의미 있는 작업 제안도 받는구나, 내가 그만큼 성장했나 보다 하고 뿌듯하기도 하고요.
모든 생명과의 공존을 꿈꾸며
녹색연합: 곰 캠페인을 함께하면서, 혹은 평소 창작을 하시면서 인간과 다른 생명들에 대해 특별히 달라진 시선이 있을까요? 곰뿐 아니라 여러 동물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보고 싶어요.
이랑: 아까 곰 캐릭터 얘기도 했지만, 사람들은 보통 ‘귀여운 동물’과 ‘무서운 동물’을 나눠서 생각하잖아요. 강아지나 고양이는 “우리 아기” 이러면서 끔찍이 여기는데, 곰이나 멧돼지 같은 야생동물은 “무섭다, 가까이 오면 안 된다”하고, 심지어 곤충이나 벌레는 그냥 죽여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고요. 저도 한때는 크게 다르지 않았어요. ‘준이치’라는 고양이와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 그리고 무지개다리 건널 때까지 쭉 함께 살았어요. 예전엔 저도 제 고양이를 맨날 “아가, 아가” 했는데, 막상 고양이가 늙으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이 친구에게는 이 시간이 자기 인생의 노년기인데, 내가 자꾸 아기 취급하며 귀여워만 하는 게 과연 이 존재를 존중하는 걸까? 싶었어요. 밥 잘 챙겨주고 약 먹여주는 것만이 다가 아니고, 하나의 생명체로 존중해 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죠. 우리 사회가 반려동물은 가족이라고 하면서도, 정작 그 생명의 한살이를 끝까지 존중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런 깨달음 이후로 가능하면 어떤 생명이든 해치지 않으려고 해요. 예를 들어 집에 바퀴벌레 한 마리 나와도 예전엔 기겁하며 잡았겠지만, 요즘은 그냥 두거든요. “쟤도 자기 갈 길 가는 건데 내가 왜 죽이나” 싶은 거예요. 생각해 보면 인간이 이 땅 위에 도시를 짓고 사는 것도, 다른 생명에게 양해를 구하고 한 일은 아니잖아요. 그냥 우리 멋대로 지어놓고 “여긴 내 집이니 벌레는 나오지 마” 이러는 건 좀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당장은 불편할 수 있지만, 그렇게 시야를 조금 바꾸면 보이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결국 공존이 답이라고 봐요. 사람만 안전하고 편하면 그만이 아니라, 다른 생명들도 최소한의 터전은 보장받을 수 있게 하는 게 인간의 도리 아닐까요. 이번 사육곰 프로젝트도 같은 맥락이라고 봅니다. 인간이 곰을 가둬서 웅담을 뽑아 쓰고 착취했으니, 이제는 그 곰들의 남은 삶은 편히 지내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윤리인 것 같고요.
녹색연합: 오늘 긴 시간 여러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읽고 계신 분들, 곰 이삿짐 센터 프로젝트를 후원해 주시는 분들, 그리고 앞으로 참여하실 분들께 이랑 님의 응원 메시지를 부탁드립니다.
이랑: 사실 다들 자기 삶을 꾸려나가기도 바쁘고 벅찬 세상이잖아요. 제가 함부로 “이런 일에 꼭 나서세요”라고 말하기는 어려워요. 다만 저는, 인간에게는 충분히 그럴 만한 능력과 마음이 있다고 믿어요. 나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들지만, 때로는 내 주변을 돌볼 마음과 에너지가 생길 때가 있거든요. 꼭 사람이 아니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향한 연대와 연민의 마음이 생겼다면, 그 마음을 곰들에게도 보내주셨으면 해요.

이랑과의 인터뷰를 진행하며 도나 해러웨이의 ‘반려종(Companion Species)’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떠올렸습니다. 여기서의 ‘반려’는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 얽히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깊은 관계성을 의미합니다. 단순히 함께 사는 반려동물만이 아닌, 곰, 곤충, 미생물, 식물처럼 인간과 얽히고설켜 함께 세계를 구성해 가는 존재들을 칭하는 것이지요.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구출해야 할 사육곰을 단지 보호가 필요한 불쌍한 동물로 여기지 않습니다. 함께 살아가는 생명으로서, 우리 사회가 어떤 존재들과 어떤 방식으로 관계 맺고 있는지를 돌아보게 하는 존재로 바라보고자 합니다. 인간이 만든 사육장의 삶에서 벗어나, 곰이 곰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일은 동물을 비극적인 현실에서 구출하는 행위를 넘어, 세계와의 관계를 맺는 방식과 태도를 바꾸는 실천이기도 합니다.
곰 이삿짐 센터 프로젝트는 오래 갇혀 지내던 곰들에게 처음으로 이름을 갖게 하고, 처음으로 흙을 밟을 기회를 주는 일을 합니다. 2018년과 2019년, 녹색연합이 구출했던 반이, 달이, 곰이, 들이가 철창을 나오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우리가 조금만 힘을 보태면, 철창이 아닌 흙을 밟는 삶을 250여 마리 곰들에게 선물할 수 있습니다. 반달가슴곰이 더 이상 고통받지 않고, 인간과 비인간 모두가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세상을 기대하며 인터뷰 정리를 마칩니다.
부디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곰들의 해방을 응원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곰곰곰 나가자, 문문문 열고! 곰들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그리고 다시는 이런 아픈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녹색연합의 곰 이삿짐 프로젝트와 곰의 자유를 노래하며 함께해 주세요!
인터뷰와 정리: 홍보팀 배선영, 김다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