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 세 마리의 새로운 시작, 그러나 전국에는 아직 537마리의 ‘들이’가 남아있다.

2019.01.11 |

지난 12월 7일 강원도 동해의 한 농가에서 특별한 일이 일어났다. 2014년 1월 태어난 이후 지금까지 철창 안에만 갇혀있던 세 마리의 반달가슴곰이 철창 밖을 처음으로 나서게 된 것이다. ‘반이’, ‘달이’, ‘곰이’가 그 주인공이다.

오전 9시, 이송을 위한 마취를 준비했다. 이들이 임시로 보금자리를 틀 곳은 청주동물원과 전주동물원이다. 장시간 이동을 대비해 항온, 항습이 가능한 무진동차량을 대기시키고 곰들의 상태를 살폈다. 마취를 위해 꼬박 하루 동안 굶었을 녀석들은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가자 흥분하기 시작했다. 외관상 큰 이상은 없어보였다. 열흘 전, 곰의 몸 상태를 체크하기 위해 청주동물원 수의사가 건강검진을 진행했었다. 다행히도 혈액과 소변 검사 상 별 문제가 발견되지는 않았다. 다만 오랜 시멘트 생활로 인해 발바닥이 갈라져 피가 나고 염증이 생긴 상태였지만, 다행히 치료가 가능했다.

마취를 하고 들것에 실린 세 마리의 사육곰은 난생 처음 철창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아직은 무슨 영문인지 모른 채 케이지에 들어가 반이와 달이는 청주동물원으로, 곰이는 전주동물원으로 새로운 삶을 위한 첫 여행을 시작했다. 낯선 곳에 도착한 곰들은 조금 불안해하는 듯 했지만, 이내 적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난생 처음 받아보는 생닭을 신주단지 모시듯 고이 두 손에 들고 먹기도 하고, 이미 살고 있던 곰들과 인사라도 하듯 벽 너머로 한참을 마주하고 있기도 했다.

이들이 약 4년 동안 2평 남짓 철창 안에만 갇혀 있어야 했던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시작은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정부는 농가의 수입 창출 방안으로 재수출하기 위해 곰을 수입할 것을 장려한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 중국, 일본, 대만 등에서 493마리의 곰이 수입되었다. 1985년 대한뉴스는 ‘반달가슴곰은 잡식성으로 사육이 쉽고, 곰 사육은 농가 소득에 도움’이 된다고 홍보했다. 재수출 용도로 수입을 시작했지만 농가의 사유재산으로 전락한 반달가슴곰들은 불법으로 웅담을 채취당하는 일이 빈번했고, 곰 요리도 암암리에 판매되었다. 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곰을 사육하는 것에 대해 비난 여론이 거세지자 정부는 1985년 사육곰 수입 금지 조치를 내린다. 이후 1993년 CITES(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가입하며 사육곰 수출이 막히게 되었다. 농가의 불만을 지우기 위해 환경부는 1999년 조수보호 및 수렵에 관한 법률에 따라 24년 이상 된 곰들에 한해 합법적 웅담 채취를 허용했고, 2005년 야생동식물보호법을 제정하면서 도축 연한을 10년으로 낮췄다. 결국 사육곰들은 웅담 채취라는 인간의 이기적 욕심으로 10년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녹색연합은 우리나라 사육곰 산업을 끝내기 위해 WAP(World Animal Protection)이라는 국제단체와 협력하여 2003년부터 활동해왔다. 1981년 시작된 사육곰 산업은 2000년대 중반 약1,400마리까지 늘어나기도 했다. 각종 캠페인을 진행하고 여론조사, 보고서 등을 작성하여 사육곰 실태를 알리고 사육곰특별법 공동발의, 민관협의체 구성 등을 통해 사육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들을 모색해왔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정부에서 모든 사육곰을 매입하여 별도 시설을 마련하여 관리하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미 사유재산이 되어버린 사육곰을 위해 정부가 예산을 투입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는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에 사육곰이 더 이상 늘어나는 것만은 막아보자는 취지로 사육곰 중성화 수술을 진행했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동안 967마리의 사육곰을 중성화시키고 2017년 이후 더 이상 철창 안에서 태어나는 사육곰은 없어졌다. 국내 웅담 수요 감소와 동물 복지 문제 등이 국민적 여론으로 등장하면서 국내 웅담 산업은 사양길로 접어들었다. 수요가 줄어들며 판로가 막히자 농가는 경영난을 이유로 제일 먼저 사료를 줄였다. 매일 주던 사료를 2~3일에 한 번으로, 양도 3분의 1 정도로 줄였다. 사육곰은 낙후된 시설에서 먹이도 제대로 먹지 못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사육곰을 구출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온라인 모금을 통해 3639명의 시민들이 4천만 원이 넘는 구출 비용을 마련해주었다. 사육곰이 처한 현실에 안타까워하며 많은 분들이 사육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인지 문의하고 함께 해주었다. 가장 큰 문제는 구출한 사육곰이 머물 수 있는 장소를 구하는 일이었다. 녹색연합은 2013년에도 사육곰 구출 캠페인을 진행했었다. 전남의 한 농가에서 우리나라 토종 곰과 유전적으로 가장 비슷한, ‘보담이’라 이름 지은 곰을 구출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시민모금으로 보담이를 구출하여 좀 더 안락한 시설로 옮기고자 하였지만, 보담이 구출에는 실패했다. 보담이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캠페인을 성공시키기 위해 사육곰이 머물 수 있는 장소를 찾으려고 환경부 등과 지난한 협의 과정을 거쳤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2곳의 동물원에서 3마리를 임시로 보호해줄 수 있다는 답변을 받았고 캠페인을 진행할 수 있었다. 녹색연합과 환경부, 청주·전주 동물원은 MOU를 체결하고 구출한 사육곰을 안전과 행복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하였다.

사육곰들의 새로운 거처를 마련하는 것이 어려웠던 이유는 우리나라 토종 곰인 ‘우수리종’ 이 아니라는 이유다. 보담이를 비롯하여 반이, 달이 곰이도 모두 가슴에 하얀 반달무늬가 뚜렷하다. 반달가슴곰, 정확히 말하면 아시아흑곰(Asian Black Bear)은 CITES 부속서1에 속하는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며, 문화재청 지정 천연기념물,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야생동물 1급이다. 그러나 사육곰은 찬밥 신세다. 사육곰이 웅담을 위해 희생되는 동안, 정부는 2003년부터 막대한 예산을 들여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을 진행하였다. 연간 15억 원 이상씩, 수백억 원을 들여 ‘우수리종’의 복원을 하고 있다. 한 마리만 태어나도 온 나라가 떠들썩하며, 올해는 50개체 복원을 조기 달성했다며 대대적인 행사도 열었다. 한 쪽에서는 복원하고, 한 쪽에서는 웅담을 채취하기 위해 사육하고 있는 모순적인 현실이다.

사육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시민단체가 함께 나선 베트남과 중국의 사례는 주목할 만하다. 정부가 곰 보호를 위한 생츄어리 부지와 초기 시설을 지원하고 시만단체가 곰 매입과 시설 운영을 맡는 식이다. 가장 대표적인 생츄어리는 애니멀아시아와 베트남 정부가 협력하여 팀다오 국립공원에 조성한 생츄어리다. 사육농가에서 구조된 약 180마리의 곰이 이곳에서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안락한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런 사례를 바탕으로 남아있는 사육곰들의 구조와 관리방안을 새롭게 모색해야 할 시기가 되었다.

국내 최초로 사육곰을 구출한 이번 캠페인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전히 철창 안에는 많은 곰들이 남아있다. 캠페인을 진행한 동해 농가에는 구출된 세 마리의 곰과 같은 해 태어난 곰이 한 마리 남아있다. 시민들의 도움은 충분히 더 많은 곰을 구출할 수 있었지만, 구출하여 보호할 수 있는 여건이 3마리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남겨진 한 마리이다. ‘반이’, ‘달이’, ‘곰이’ 가 철창 밖으로 나오는 매 순간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곧 다시 철창 속에서 꺼내주겠다는 약속을 남기며 ‘들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전국에는 아직 537마리의 ‘들이’가 남아있다.

글: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임태영(catsvoice@greenkorea.org)
*이 글은 참여와 혁신 2월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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