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울진에서 공존을 엿보다

2024.11.27 | 산양, 야생동물, 활동

녹색연합 야생동물탐사단 14기를 다녀와서

등허리 긁어 손이 닿지 않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바로 울진이라는 말이 있다. 정말 그렇다. 마치 섬처럼 어디서 출발해도 먼 곳. 오지라는 것이 다 다르기 전부터 실감 나고, 그래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잘 보전되고 있기도 하다.

서울에서 차로 5시간가량 달려야 하기에 갈 때마다 “울진 정말 멀다”라는 말이 절로 나오지만, 이 글을 읽은 뒤부터 우리는 울진을 먼 곳이라 부르지 않기로 하자. 두천리 이장님의 말에 따르면 이곳은 자연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멀다’는 수도권과 대도시 중심 사고이며, 다분히 상대적인 개념이다. 자연을 기준으로 야생동물의 입장에서는 그 어디보다 가까움임이 틀림없는 곳, 바로 울진이다.

10월의 끝자락. 선선한 날씨와 함께 야생동물탐사단 14기가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1박 2일간 진행되었다. (야생동물탐사단은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삶을 고민하기 위해 2011년부터 꾸준히 진행해 온 녹색연합의 시민참여 프로그램이다) 열세 명의 야생동물탐사단원은 전국 각지에서 이곳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소광리에 모였다. 온라인 사전교육으로 만났던 얼굴들과 반갑고도 어색하게 자기소개를 나누고 준비 운동을 한 뒤 본격적으로 산에 들었다.

오늘의 조사지는 금강송면 소광리의 한 임도이기도 하지만, 일부 ‘울진금강소나무숲길’과 겹친다. ‘울진금강소나무숲길’은 과거 내륙지방으로 행상할 때 넘나들던 길에 12개의 고개가 있다고 하여 ‘보부상길’ 또는 ‘십이령길’로 불렸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마을 공동체를 유지하는, 야생동물과 주민 모두가 공존하는 길을 만들기 위해 녹색연합과 전문가, 주민 모두 참여해 만든 숲길인 것이다.

초입의 ‘울진금강소나무숲길’ 안내판을 지나고 해발 500m에 가까워질수록 야생동물의 흔적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진흙 위에 선명히 찍힌 고라니와 너구리로 추정되는 발자국부터 길의 가운데쯤 보란 듯이 놓인 최상위 포식자 삵의 똥까지. 해발 600m에 다다르자 산양의 똥도 조금씩 확인되기 시작했고, 백골이 된 머리뼈까지 발견할 수 있었다.

전날 내린 비로 인해 진흙 위에 고라니로 추정되는 동물의 선명한 발자국이 찍혔다.
삵의 것으로 추정되는 똥 안에서 발견한 뼈를 관찰하는 모습.

산양은 해발 600~700m가량의 경사가 급하고 험준한 바위 지대에서 주로 서식한다. 그 때문에 한반도 남쪽에서는 설악산 일대, 비무장지대 그리고 이곳 ‘아무르산양’의 최남단 집단 서식지인 울진-삼척에서만 산양을 만날 수 있다.

포유류 박사를 통해 산양의 머리뼈로 확인된 백골.

열세 명의 야생동물탐사단은 똥과 발자국이 나올 때마다 흔적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내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맞댄 뒤 똥을 헤집고, 책을 들추었다. 각자 나름의 지식을 펼쳐놓고 토의하는 시간은 산을 오르는 내내 계속되었다.

소광리에서의 1일 차 조사가 끝난 뒤, 숙소가 위치한 울진군 북면 두천리로 이동했다. 야생동물탐사단의 숙박과 식사는 모두 두천리 이장님을 비롯한 주민분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저녁에는 두천리 부녀회장님이 차려주신 정성스러운 식사로 고픈 배를 채운 뒤 주민들과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마을에 찾아오는 야생동물, 오지로 불리는 이곳의 과거 생활 환경, 2022년 울진-삼척 산불이 일어났던 당시의 참담했던 상황 등을 생생히 들려주셨다.

이튿날에는 두천리 주위로 펼쳐진 산에서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는 산불 피해지를 둘러보며 당시의 상황과 산불로 인해 야생동물이 겪어야만 했던 피해에 대해 듣는 시간을 가졌다. 불을 끄기 위해 며칠간은 밤낮없이 물을 퍼 나르며 집을 지켰다는 주민들의 어젯밤 이야기와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야생동물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기후위기로 야기된 참담한 현실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울진에서 녹색연합은 어떤 역할을 해내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멀리 펼쳐진 2022년 울진-삼척 산불 피해지를 바라보는 야생동물탐사단 참가자들의 모습.

호기심 넘치는 눈으로 야생동물의 흔적을 탐구하는 모습뿐만 아니라, 그들이 처한 위태로운 상황에 누구보다 깊이 안타까워하고 더 나은 방향에 대해 고민하던 야생동물탐사단 참가자들. 단순히 야생동물의 흔적만을 보고 가는 것이 아닌, 마을로 들어와 주민들과 만나며 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기획이 소중하다는 소감을 나눴다. 

울진은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아가는 생태계의 보고이면서, 주민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이다. 기후위기 시대에 접어든 오늘날에 울진은 산불과 폭설, 바이러스성 질병 등으로 인해 수많은 존재가 위태로운 상황에 놓여있다. 야생동물과 주민, 야생동물과 인간,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삶은 무엇일까. 끊임없이 상상하고 고민하는 야생동물탐사단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야생동물과 인간의 발자국이 한 데 뒤섞여 있는 모습.

*이 글은 오마이뉴스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오마이뉴스] 울진에서 공존을 엿보다

*문의) 자연생태팀 서해 활동가 (070-7438-8565, shuane@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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