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연합 야생동물기록단(1)-산양
3월 3일은 세계야생동물의 날입니다. 세계야생동물의 날은 1973년 3월 3일,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 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 채택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녹색연합은 한겨레교육문화센터와 함께 [멸종위기 야생동물 기록단]을 모집하여 멸종위기 야생동물 5종의 서식지를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완성하였습니다.
5회에 걸쳐 한겨레 인터넷판과 녹색연합 홈페이지를 통해 <산양>, <사향노루>, <수달>, <반달가슴곰>, <담비> 취재 결과를 연재합니다.
봄이 온다. 그러나 꽃소식보다 산불 소식이 곳곳에서 들린다. 초유의 대형 산불이었던 2022년 울진삼척 산불이 발생한 지 1년이 지났다. 아직도 울진은 산불의 악몽이 여전하다. 사람도 동물도 삶의 터전을 잃었다.“연기가 막 푹푹 올라오더라고. 그러다 바람 타고 한순간에 다 태워버렸어요.”경상북도 울진군에 사는 홍옥예(74)씨에게 산불이 나던 순간은 여전히 생생하다. 지난해 3월 4일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은 강원도까지 번진 뒤 3월 13일이 돼서야 최종 진화됐다. 213시간 동안 서울시의 3분의 1 크기인 2만923ha를 집어삼켰다. 산불에 주민들의 집은 아스러졌다.
산불 위기는 천연기념물의 위기
산불은 야생동물의 터전도 삼켰다. 산불로 인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3988ha가 피해를 입었다. 여기에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 서식지도 포함된다. 화마가 휩쓸고 간 울진삼척은 산양의 지구상 최남단 집단 서식지였다. 산불로 인해 산양의 핵심 서식지 40~50%가 불탔다. 산양이 먹이로 삼던 초록빛 풀들이 자라던 땅은 회색 재로 뒤덮였다.산불이 끝난 지 일 년 남짓 지났다. 지금 산양은 어디서 살아가고 있을까. 산양의 발자취를 좇기 위해 울진 북면 두천리 산양 서식지를 살폈다.
사방이 산이었다. 응달에는 겨우내 내린 눈이 아직 녹지 않은 채 쌓여있다. 굽이진 길을 따라 개울가가 나왔다. 개울을 넘어 가파른 경사를 올라 먹이급이대에 도착했다. 국립생태원을 비롯한 산양 보전 협의체는 겨울철 먹이급이대를 통해 산양에게 먹이를 공급하고 있다.먹이급이대의 작은 지붕 아래에는 알팔파와 뽕잎이 있다. 한켠에는 큼지막한 정육면체 모양의 ‘미네랄 블록’도 보인다. 염분 등 야생에서 구하기 어려운 영양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먹이급이대 주변 곳곳에 산양의 흔적이 있다. 대표적인 게 산양의 똥이다. 검정색 타원형의 똥들이 동그랗게 퍼져있는데, 이를 똥자리라고 부른다. 먹이급이대 주변에선 대여섯 개의 똥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길목을 오가던 산양이 똥을 누며 잠시 쉬어간 것이다.
살아남은 산양 지금 어디에
녹색연합에 따르면 산불로 산양의 서식지 4353ha가 불에 탔다. 산양은 산불을 피해 떠나야만 했다.서식지를 떠난 산양은 위험천만한 국도와 마주쳤다. 녹색연합은 지난해 3월부터 12월까지 14회에 걸쳐 산양 서식지의 피해 상황을 조사했다. 녹색연합 보고서에 따르면 36번 국도에서 20m 떨어진 곳에서도 산양의 똥자리가 발견됐고, 울타리를 넘어 도로로 접근하는 개체가 촬영됐다.
산양의 서식지 이동은 개체 간 경쟁으로 이어질 수 있다. 수컷 산양은 행동권의 배타성이 강하다. 따라서 유입된 개체가 기존 개체와 경쟁하고, 밀려난 개체는 또 다른 곳에서 경쟁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영역을 못 찾고 도태되는 개체가 나올 수 있다.다행히 서식지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녹색연합에 따르면 두천리 등 먹이급이대 근처에서 지난해 3월부터 산양이 다시 나타났다. 7월부터는 출현 빈도가 평년 수준을 회복했다. 산불 이후 콩과식물이 돋아나며 먹이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됐기 때문이다.산불이 산양 서식지에 끼친 영향에 관한 연구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립생태원은 산불 이전부터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산불 전후로 산양 서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연구 중이다.
울진이 국내 최남단 산양 서식지가 될 수 있던 이유는 구불구불한 ‘길’에 있다. 울진은 충청남도 보령에서 시작해 동서로 이어진 36번 국도와 닿아있다. 2020년 이전 서울에서 울진에 가려면 36번 국도를 타고 굽이진 산악지대를 지나야 했다. 자연스레 인적이 드물어진 그곳에 산양이 보금자리를 틀었다.그러나 2020년 울진~봉화 구간을 직선화한 신규 36번 국도가 개통했다. 남북으로 뻗은 백두대간을 동서로 이어진 국도가 관통했다. 산불을 피하는 산양의 발걸음도 36번 국도에 가로막혔다. 서식지가 단절됐다. 녹색연합 박은정 팀장은 “서식지가 단절되면서 로드킬 위험이 크게 늘었다”라고 말했다.
예방책이 없는 건 아니다. 신규 36번 국도에는 생태통로와 유도 울타리가 조성돼 있다. 유도 울타리는 야생동물의 도로 유입을 막고 생태통로로 유도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박 팀장은 “조사 결과 울타리가 끊어져 있거나 미설치된 구간이 8곳 존재했다”고 말했다. 부실한 지점은 지난해 대구지방환경청에서 고쳤다.서식지 단절과 로드킬을 예방하기 위해선 더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 그러나 36번 국도가 그런 공간이 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신규 36번 국도는 기존 36번 국도를 생태복원 하는 조건으로 건설됐지만, 착공 이후 생태복원은 이뤄지지 않았다. 울진 지역 주민들이 복원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며 논의가 길어지고 있다. 화재나 원전 사고 등 비상시에 기존 36번 국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주민들의 입장이다.부산지방국도관리청은 향후 계획에 관해 “기존 36번 국도 중 금강송면 답운재 1.5km 구간은 생태복원하고, 금강송면 삼근리~근남면 행곡리 12.2km 구간에는 도로와 탐방로 조성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산양
산양은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이자 천연기념물 제217호로 지정된 법정보호종이다. 국제적으로는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 부속서Ⅰ에 등재돼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의 적색 리스트에도 올라 있다. 1950년대까지는 고지대 산악지형에서 산양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서식지 파괴와 밀렵, 임산물 채취로 개체수가 크게 줄었다. 2019년 기준 전국에 약 1300마리가 남아있다.산양은 풀과 산열매, 도토리, 이끼 등을 먹는다. 겨울철에는 침엽수의 잔가지나 나무껍질을 먹기도 한다. 산양은 10~20mm 길이의 타원형 똥을 눈다. 한 번에 100~400개의 똥을 누는 게 일반적이다. 주로 일정한 자리에 똥자리를 형성한다. 겨울철이나 통풍이 잘되는 똥자리에서는 수개월전의 똥이 보존돼있기도 한다.산양의 발굽은 바위에 미끄러지지 않는다. 그래서 바위를 이리저리 타고 옮겨 다니며 천적을 피할 수 있다. 성체 수컷은 배타성이 강해 주로 단독생활을 하고, 암컷이 어린 새끼를 데리고 다닌다. 정주성이 강해 한번 선택한 서식지를 쉽게 떠나지 않는다.
이서현 녹색연합 야생동물기록단
담당 :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김원호(070-7438-8523 / democracist@greenkore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