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지난 일요일(10월 29일), 새:친구들은 이른 아침부터 모여 태안으로 갔습니다. 새가 유리창에 부딪혀 죽는 일을 막고 싶은, 그리고 이 일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 가지길 바라는 마음을 모아 도로 방음벽에 점 스티커를 하나씩 꼭꼭 눌러 붙였습니다. 새: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새:친구 엄현경님
길에 떨어진 쓰레기를 줍지 않은 지 꽤 됐다. 주워도 주워도 끊임없이 쏟아지는 한강 변의 쓰레기. 아름다운 동해안 모래사장에 파도 파도 나오는 어망, 담배꽁초, 불꽃놀이 잔해. 미국이나 중국 같은 거대한 땅덩어리에서 한 번에 뒤섞여 버려지는 쓰레기봉투들. 교토의정서, 파리협약 같은 국가 간 약속도 안 지켜지는 마당에 나 하나 나선다고 뭐.
그러다 새들의 방음벽 충돌사고를 막기 위해 스티커를 붙이는 ‘새 친구’ 활동에 참여하게 됐다. 비 때문에 일정이 한 주 늦춰져 추가로 긴급 모집한다는 카톡을 우연히 봤을 땐 한가한 주말 스케줄을 떠올리며 가벼운 마음으로 신청했는데, 갑자기 여러 가지 가정사가 폭풍처럼 몰아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다음날 바로 시아버님 건강이 나빠지셨고 며칠의 간호 끝에 요양원에 들어가시게 됐다.
적당한 요양원을 물색하고 건강보험공단에 등급 변경을 신청하며 바삐 보내는 와중에 사전 교육 영상을 진득이 볼 여유는 없었다. 빌딩 벽이나 방음벽에 부딪혀 죽는 새들이 하루 200마리, 1년에 800만 마리에 이르러도 나에겐 딴 나라 얘기였고 당장은 눈앞에 닥친 가족의 안위가 더 중요했다. 취소를 고민하다 날이 다가왔고 출발 버스에 오르자마자 별생각 없이 곯아떨어졌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한 태안의 도로는 새들의 무덤이기에는 너무도 평범했다. 투명 방음벽은 높지도 않았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한적한 국도변의 모습이어서 여기가 맞나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활동가 선생님께서 아침에 수거한 빳빳한 촉새 시체를 보여주셨을 때 얼마나 많은 새들이 어이없이 죽어가는지 비로소 실감 났다. 하루만 빨리 왔더라면 이 새는 살았을 것이라는 말씀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눈이 측면에 달린 새들은 정면 시야가 좁아 생각보다 조밀하게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여줘야 한다. 이번 활동에는 주황 점과 검정 점이 번갈아 박힌 테이프형 충돌 방지스티커를 붙이기로 했다. 작업 자체는 단순해서 방음벽을 깨끗이 닦고 스티커를 10cm 간격으로 세로로 길게 붙였다 떼면 끝. 주황 검정 점들이 투명 방음벽에 1차원 픽셀처럼 가득 들어차면 새들에게 피해 가라는 경고가 되는 것이다.
이 큰 세상에 점 하나 찍는다고 뭐가 달라지겠냐는 생각을 쭉 해왔다. 그래도 한 마리의 생명이라도 구할 수 있는 점이라면 조금은 의미가 있겠지. 정말 이 점들이 효과가 있기를 바라며 한 땀 한 땀 꾹꾹 눌러 붙였다. 테이프를 떼면 일련의 점들이 생기면서 내 마음속 생존 게이지도 주르륵 채워지는 것 같았다. 한동안 친구 만나기, 오운완(오늘 운동 완료) 같은 일상이 하찮게 느껴져 우울했었는데 힘을 내야겠다. 포기하지 말고 하루하루 잘 살아가야겠다.
🔊새:친구 이주은님
2년 전 서울역 옥상정원에 있는 상점을 오픈하고 얼마 안 되어 우리 상점 건물에 플라스틱 인조 넝쿨이 달렸다. 그 덕에 우리 상점은 숲인 양 푸릇푸릇해졌고 새들이 상점 안으로 들어오기도 했다. 유리창에 비치는 상점은 반사해 정말 풀숲에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얼마 안 가 비극적인 일이 생겼다. 근처에 새가 죽어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때 알게 되었다. 유리창의 충돌로 죽었다는 것을. 이후 그리고 지금도 종종 집 근처, 건물 근처의 땅에 떨어져 죽어있는 새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때부터 새에 더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 유리창 충돌로 인해 새들이 하루에 2만 마리, 1년엔 800만 마리가 죽는다고 한다. 눈 깜박할새 1마리씩 어디선가 부딪혀 죽고 있다. 새는 하늘에 떠 있기 위해 빠른 속도로 날아가야 하는데 차 속도와 마음먹는다. 시속 37-70km (400km까지 나는 새도 있다고 한다)로로 난다. 새는 맹금류를 피하기 위에 넓게 옆으로 보는 시야가 발달했기 때문에 앞으로 보는 시야는 좁다. 빠른 속도로 날다가 유리를 보지 못하고 충돌하여 죽는 것이다.
이런 죽음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도 있다. 종종 고속도로 옆쪽에 맹금류 스티커가 붙어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맹금류 그림 스티커 사이 공간으로 날아가기 때문에 작은 새들의 유리창 충돌로 인한 죽음을 막지 못한다고 한다. 충돌 방지를 위해 유리창에 모양을새겨넣어도 괜찮다고 적혀있었다. 나름 상점의 창문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하고 삐뚤빼뚤이지만 5*10크기에 맞춰 점을 찍어내며 이런 죽음에 대해서 SNS를 통해 정보도 공유했었다. 광주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이 이를 보고 새 충돌 관련책자와 스티커도 주었고 같이 충돌 방지 스티커도 붙였었다. 진짜 더운 여름날 땀을 어찌나 많이 흘렸던지,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땀의 짠맛이 느껴지는 것 같다. (알맹상점 새 충돌 방지 스티커 붙인 이야기: https://www.instagram.com/p/Cf-hQRmp0si/?igshid=MzRlODBiNWFlZA%3D%3D / https://m.blog.naver.com/almangmarket/222798381305)
스티커를 붙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야생 동물들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중심의 사고가 아닌 같이 살아갈 시선으로 이야기하고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유리창이 있는 모든 곳에 죽음이 깔려있다. 작은 소형주택에서도, 아파트나 유리창이 많은 건물에서도 죽음을 피하기 어렵다. 숲속에 들어가 있는 건물, 물에 떠 있는 유람선, 크루즈는 더 최악. 만일 부딪혀 살았더라도 이렇게 한번 부딪힌 새들은 오래 날아가지 못하여 결국 죽는다고 한다.
<조류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이는 방법>(5x10cm 간격에 맞춰 직접 디자인해도 좋다고 한다. 밖에 먼지가 많은 곳은 스티커가 잘 안 붙어서 청소가 필요하다.)
1. 물로 뿌려주고 걸레로 닦아준다.
2. 5*10cm 간격으로 구멍을 뚫어놓은 자를 이용하여 유리창 맨 위와 아랫 부분에 점을 찍어준다.
3. 위아래에 찍어둔 점에 맞춰 새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인다.
4. 고무 헤라 등을 이용해 스티커가 유리에 잘 붙도록 눌러 준다.
5. 스티커 가이드 부분을 떼어 내면 점박이 무늬 창문으로 변신!
새:친구 8기는 아침 일찍 모여 태안으로 향했다. 비건식을 별도로 챙겨주셨고 난 아침부터 밥 두 끼를 거뜬히 먹었다. 작년에 이어 태안에 77번 국도에 스티커 작업을 하고 있다며, 새들이 많이 죽는 이곳에 스티커 작업을 하기로 했다고 하였다. 우리는 작년에 작업한 다음 구간에 이어 붙였다. 서산에 사시는 가족분들이 매번 새:친구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주신다며 인사와 함께 시범을 보여주셨다. 역시 전문적인 포스가 느껴졌다.
1~3조로 나눠서 창문 세척조&점 찍는 조&스티커 부착하는 조로 나눠 번갈아 돌아가면서 진행하였고, 중간 휴식 이후 우리는 시키지 않아도 척척 누군가의 오른손과 왼손들이 되어주며 빈틈없이 척척 붙여 빠르게 마무리 되었다. 1단 높이의 창문이었기에 더 빨리 끝났기도 했지만, 각자의 위치에서 땀 흘리며 묵묵하게 해 나간 분들과 함께한 덕분에 일찍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곳에서만큼은 유리창 충돌로 인한 어떠한 죽음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새:친구를 8회차 진행하였다고 했는데 안전 문제나 필요한 것을 쓰레기 없이 깔끔하게 진행해 주신 녹색연합 담당자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한다.
🔊새:친구 현동민님
녹색연합 새:친구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태안 77번 국도에 유리창 새 충돌 저감조치 활동을 했다. 올해 1학기부터 조류 충돌 문제에 관심을 가지며 모니터링 활동을 시작했었다. 전부터 조류 충돌에 대해 여러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한 번도 정확한 수치나 정확한 저감조치 방법을 들어본 적은 없었다. 사실 정확한 수치를 들어도 이게 얼마나 많은 숫자인지 감이 안 왔었는데 직접 공부도 하고 모니터링과 저감조치 활동을 하면서 더욱 실감 나게 느낄 수 있었다.
녹색연합에서도 좋은 프로그램을 기획한 거 같아 참여했다. 전에 학교 창문과 버스 정거장에 저감조치 스티커를 붙여봤었지만, 이 정도로 큰 규모는 처음이었다. 여러 사람이 일을 나누어 닦고 붙이니 금방 진행됐다. 차가 쌩쌩 다니는 도로 바로 옆에서 하는 작업은 꽤 재밌기도 했다. 저 차에 타 있는 사람들도 우리를 보고 궁금증과 관심이 생겼길 바란다. 원래 가기로 한 일정이 미뤄져서 29일에 갔는데 그사이에 충돌로 새가 죽어있었다. 미리 붙였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니 이 저감조치가 죽음을 막는 일이라는 게 느껴졌다. 처음부터 저감조치가 된 제품으로 나왔다면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 일이다. 하지만 예산이 많이 들고 미관상 좋지 않다는 이유로 이렇게 많은 존재가 목숨을 잃는 건 정말 중요한 문제이지 않을까.활동 전에 한 강의에서 유리창에 부딪히는 게 사람이 아니라 새라서 그렇다는 말이 떠올랐다. 정말로 사람이 하루에 2만 명씩 부딪혀서 죽었으면 유리창은 바뀌었을 것이다. 그래도 이번 활동으로 태안 77번 국도 방음벽에서 생기는 충돌을 막을 수 있을 테니 다행이다. 앞으로도 시민들과 같이 방음벽에 스티커를 붙일 수 있으면 좋겠다.
정리 | 이음팀 유새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