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후원하면 1년 안에 산양이 2백 마리가 되나요?”
환경 단체 모금 활동가로 일하면서 후원을 요청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입니다. 야생동물 생태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 말이 무지에서 나온 황당한 우스갯소리로 들릴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 ‘2백 마리’의 다른 뜻은 내 후원금이 제대로 쓰여 되도록 빨리 눈에 보이는 성과가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당장 자신에게 이득이 되지 않을 일에 기꺼이 후원하는 마음이 존경스러우면서도, 특정 사람을 돕는 일과 달리 정확한 수혜 대상을 꼽기 어렵고, 단번에 해결되지 않는 환경문제의 태생적인 특성을 어떻게 공감하게 할 수 있을지 고민스럽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정치적인 환경문제에 후원하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가 가장 많았습니다. 주한 미군 기지의 환경오염 문제를 고발했다가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반미 단체로 낙인찍히던 때였으니까요. 그러다 금싸라기 땅, 아파트 인근 지하수에서도 기름띠가 발견되고, 톨루엔 같은 발암물질이 기준치의 무려 7백 배를 웃돈다는 발표가 이어지자 유해 화학물질에 의한 명백한 환경문제라는 사실에 서서히 공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국가 안보와 맞물려 제한된 정보로 국방부, 외교부, 국토교통부의 높은 산과 다퉈야 하지만 산양보다 사정이 나은 것이 단 하나 있습니다. 바로 내가 살고 있는 곳의 환경문제고, 내가 건강과 재산상의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입니다. 명확히 환경권을 침해당하는 사람이 있는 셈이지요.
환경문제에서 야생동물은 누구나 좋아하는 주제지만 생태계 문제와 야생동물 생명권은 관심을 두기에 조금 먼 이야기입니다. 사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우리에게 보기도 어려운 야생동물을 지키자는 이야기는 저 세상 영역인 것이 당연합니다. 광고를 통해 많이 본 북극곰이 오히려 더 가깝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소풍을 나간 공원에서 청설모가 쪼르르 나무를 타고 오르는 모습을 본 순간을 떠올려보세요.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탄성과 호들갑스러운 감탄! 이것이 바로 생명을 대하는 경외심과 야생동물 생명권에 보이는 관심의 시작입니다. 그 날 소풍은 김밥이 조금 맛이 없어도 괜찮고, 밖에 나오길 백번 잘했다고 생각하게 되겠지요. 친구가 소풍을 가겠다고 하면 이 공원으로 가라고 추천할 겁니다. 도시에서 청설모가 사는 숲은 나무가 잘 가꿔져 우거졌을 테고, 도토리 같은 열매가 풍성해 우리도 혜택을 함께 누립니다. 나와 야생동물의 권리는 아주 멀지만은 않습니다.

야생동물이 살 만한 곳으로 만드는 일은 후원자의 흔한 질문처럼 수를 늘리는 것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에요. 위협 요인을 줄여 불필요한 죽음을 줄이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지난해 제가 일하는 녹색연합에서 ‘새친구 프로젝트’를 시작했어요. 전문가들이 야생 조류를 꾸준히 관찰하고 연구한 결과 도로 방음벽, 건물 유리창 같은 투
명한 창에 부딪혀 죽는 새들이 아주 많았습니다. 새가 풍경이 비치는 창을 열린 공간으로 여겨, 비행 속도 그대로 부딪혀 죽는 것입니다. 대략 1년에 8백만 마리가 이렇게 죽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꽤 오랫동안 이 문제를 줄이는 방법으로 매와 독수리 같은 맹금류 그림 스티커를 붙이는 것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작은 새들이 천적을 피해 부딪혀 죽는 사고가 줄어들 것이라고 여겼지요. 그런데 새는 움직이지 않는 그림을 천적으로 인식하지 않아 유리창에 충돌하는 사고는 여전히 발생했어요. 이 안타까운 죽음을 줄일 가장 좋은 방법은 새가 날 수 없는 공간으로 인식하도록 유리창을 분할하는 것입니다.
새친구 프로젝트에 참여한 사람들이 하는 일은 모금에 합세해 투명 창을 여러 개로 분할해줄 조류 충돌 저감 스티커를 구입해 붙인 후 실제 새들의 죽음이 줄어드는지 모니터링하는 것입니다. 80명의 참여자가 두 차례에 나뉘어 충남 서산시 649번 지방도의 약 100m 구간에 조류 충돌 저감 스티커를 붙여 실제로 새들의 죽음이 줄어드는지 살펴보았습니다. 효과는 어땠을까요? 스티커를 붙이기 직전 6개월 동안 서른두 마리의 새가 죽은 데 비해 이후 단 두 마리만 죽은 것으로 관찰되었습니다. 후원한 사람, 현장에서 스티커를 붙인 사람,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한 사람이 협력해 투명한 창에 부딪혀 죽는 새들의 죽음을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한 것이지요. 이 사례는 새 서른 마리의 죽음을 막아낸 것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후원과 지속적인 활동과 협력이 전국적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제시했고, 앞으로 유리 건축물과 도로 방음벽 시공 조건을 바꾸자고 요구할 근거를 만들었다는 점입니다. 8백만 마리의 죽음을 막는 일의 시작입니다.
환경문제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일상에 깊숙이 파고들어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누구나 느끼는 위기감에 비해 해결 방법에 대한 민감도는 꽤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2019년 현대경제연구원은 미세먼지 때문에 집집마다 월평균 21,260원을 지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마스크, 공기청정기, 건조기, 의류관리기 같은 제품을 구입하고 이용하는 비용이 이에 해당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 환경문제가 삶의 양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간접적으로 알게 되었고, 환경문제에 대한 대응의 책임이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사실에 씁쓸해졌습니다. 환경 공포 마케팅인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사람들과 이득을 취하는 집단, 경제적인 문제로 이를 선택지로 고려조차 할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환경문제는 곧 정의의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기후위기, 일회용 플라스틱의 점령, 야생동물과의 공존, 바이러스 등은 내가 손쓸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고 느껴집니다. 어쩌면 내가 피해자이면서 또 원인 제공자라는 진실이 불편해 남의 탓으로 돌려버리고 싶은 건지도 모릅니다. 내 문제는 네 문제고, 곧 우리의 문제이므로 해결의 주체 역시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어떤 목표를 같이 달성할 것인가이지요. 당장 해결하기는 어려워도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요인을 줄이는 일, 삶이 조금 불편해도 사는 방식을 바꾸는 일, 환경운동 현장에 행동으로 참여하는 일, 지구에 이로운 방식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일, 직접 해결책을 만드는 일에 후원하는 일 등 모든 협력이 필요합니다.
새 8백만 마리를 죽음의 위기에서 살리는 일을 서른 마리를 살리는 방법에서 시작한 것처럼, 어려운 환경문제의 주체적인 해결자로 환경운동 현장에서 뵙겠습니다. 자, 어떤 역할로 함께해주시겠어요?
글 윤소영
*이 글은 빅이슈에 기고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