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를 포함한 모든 투명창이 야생조류를 비롯한 우리나라 생태계 전반에 미칠 수 있는 잠재적 파괴력은 실로 대단합니다. 우리나라야 생물학 연구기반이 취약하여 기초자료가 없는 것은 말할 나위가 없지만, 북미지역 연구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북미 조류의 30%가 지구상에서 사라졌습니다.
그 원인은 서식지 감소나, 농약도 있지만 유리창 충돌 문제도 상위권에 들어갑니다. 그 수를 보자면 미국에서 연간 3.5억~9.9억 마리가, 캐나다에서는 2천 5백만 마리 가까이 희생된다고 합니다만, 무척이나 좁은 한국에서 연간 8백만 마리가 가당키나 할까요? 좀 더 깊게 들여다봅시다. 미국의 인구와 건물수는 약 3억 2천만억 명에 1억 3천 8백만 동의 건물이 있고, 캐나다는 약 3천 6백만 명에 1천만 동, 우리나라는 5천 1백만 명에 724만 동의 건물이 있습니다. 국토 크기보다는 유리창 면적과 수는 인구와 건물수와 비례한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구조센터에서의 경험으로 미루어보면 가정집, 카페, 심지어 시골 창고 작은 유리창에서도 새들은 죽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는 투명방음벽이라는 또 하나의 커다란 함정이 있습니다. 무차별적으로 개설되던 도로는 인근 거주민들의 주거환경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폐쇄형 방음벽으로, 다시 경관을 고려하는 투명형 방음벽으로 진화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자연환경을 돌보지 않았고, 결과 우리 주변에서는 지금도 쉴새 없이 깔리는 투명방음벽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정확한 통계추정도 불가능할 정도로 늘어나고 있고 지역마다 생기는 주거단지와 도로확포장 공사는 크고 작은 방음벽을 대부분 동반하고 있습니다.
반사와 투명성, 그리고 야간 조명 등 문제 원인이 비교적 명확하고 단순한 것에 비하여, 해결을 위해 알아야 할 것이 참 많습니다. 이미 존재하는 건축물 중 위험성이 높은 건물이나 방음벽에 대한 우선 처리방안도 필요하고, 예산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몇몇 국가와 도시에서 시행하고 있는 조류친화적 인공구조물 관련 법률안이나 조례도 만들어져야 합니다.
동시에 어떤 저감, 예방 기법이 효과가 있는지 증명할 수 있는 평가방안도 만들어야 하고, 이러한 제품을 제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법적 토대도 필요합니다. 예방제품은 미적 요소를 가져야 합니다. 소비자가 외면하는 제품은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저감제품은 이미 설치된 인공구조물에 충돌을 줄이기 위한 장치를 더하여 붙이거나 바르는 것이기에 한 번 붙이면 오래갈 수 있도록 내구성이 좋아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사회 전체가 야생생물과 공존할 수 있도록 인식을 바꿔야 합니다.
개인이 할 수 있는 일과 연구기관, 지방과 중앙정부, 국회가 할 수 있는 일이 다릅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많은 분들이 해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는 문제를 끊임없이 널리 알리고 체계적으로 자료를 모아야 합니다. 객관적이고 시각적으로 문제를 전달하는 것만큼 효과적인 방법은 없으니까요. 그리고 생산된 자료를 바탕으로 지역 사회 언론이나 사회관계망서비스를 이용하여 우리 지역의 문제를 알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형 건축회사나 공공기관이 이를 인지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미 설치된 방음벽이라도 저감 조치를 할 수 있도록 요구해야 합니다. 죽어가는 야생동물은 사회 공공재이기 때문입니다. 특정 회사의 이익을 위해 사회 공공재를 해칠 수 없을뿐더러, 희생자는 우리와 공존해야 하는 자연환경 구성체인 것입니다. 이를 위한 시민참여 모니터링도 중요합니다. 건물에서 발생하는 충돌 문제는 관찰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사는 모든 지역에서 문제가 일어난다는 것을 공유하기 위해서는 많은 분들의 관심과, 참여가 필요합니다. 현재 네이처링 야생조류 유리창 충돌조사를 통해 충돌사고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국가나 지방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습니다. 바로 유리창 충돌 문제가 그러합니다. 많이 늦었지만, 잘못된 이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힘이 필요합니다. 도처에 깔린 투명방음벽과 같은 사회적 간접시설의 경우에는 국가의 의지가 직접 작용될 수 있지만, 전체 희생량은 분명히 건축물에서 발생하고 있습니다. 다만 건축물 통계상 국립/공공건물의 비율은 고작 2.7%에 그쳐, 사유건물에 대한 해결방안이 어려움에 봉착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공존을 위한 사회문화적 흐름이 바뀌어야 합니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에서도 환경과 개발이 상충하지 않는 공존의 개발방식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서 녹색건축이라는 개념이 도입되었습니다. 하지만 주요 개념은 건물의 필수 사용에너지 효율향상과 건물 유발 오염원의 최소화에만 맞춰진 것이라 지역 내 생물과의 공존 의지는 부족해보입니다. 야생생물과의 공존이 가능해지는 건축이야말로 명실상부한 녹색건축이라고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비오톱(도심에 존재하는 인공적인 생물 서식 공간) 등으로 인해 오히려 동물을 모아 죽이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빌딩이 즐비한 강남보다 혁신도시에서 더 많은 새들이 죽는다는 점도 아이러니하게도 사실입니다. 더디지만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새로운 아파트 건설 현장에 예방방안이 도입된 아파트 방음벽이 들어서고 있고, 시민들의 조사와 해결 요청에 따라 공공기관이나 관공서가 시범사업으로나마 저감방안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몇몇 시설공단에서도 충돌사고 예방을 위해 심의절차를 마련하고, 공공디자인심의에서도 살피는 추세입니다. 하지만 전체적 규모에서 그 효과는 아직 미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우리의 기억을 울렸던 〈건축학개론〉이라는 영화가 있었지요. 쌉쌀달콤한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개론에 철학이 녹아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 건축학과 정규 교과과정에 조류 충돌 자체를 예방하거나 줄일 수 있는 다양한 접근 방법에 대한 내용과 교육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젊은 건축가들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게 되고, 설계 단계에서부터 비용절감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게 됩니다. 나아가 시장수요가 창출되어야만 산업계에서는 보다 많은 연구와 투자가 이뤄질 것입니다.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니라, 최소라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투명창 충돌과 관련하여 항상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날아다니는 새들이 토마토나 돌멩이와 같았다면 이미 이 문제는 해결되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살피지 않았던 방음벽에는 토마토가 터진 핏자국이 낭자했을 것이고 건물 유리창은 돌멩이로 깨지는 문제가 빈번했을 터입니다. 불행하게 죽는 새들이 아프다는 말 한 마디도 못하고 그저 여름철 구더기 밥이 되어가는 현실 속에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다시금 살펴야 할 때입니다. 네이처링에 가입하여 우리 주변의 죽는 새들을 찾아 기록해주세요. 그래야 세상이 바뀝니다. (네이처링 https://www.naturing.net)
글 김영준 /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 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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