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에 갇혀있으니 멸종위기 걱정없다?

2010.06.14 | 생명 이동권

며칠 전 아이와 함께 간 도서관에서 앤서니 브라운의 ‘동물원’이라는 동화책을 보았다. 앤서니 브라운은 동화작가로선 너무나 유명한 사람이라, 망설임없이 얼마나 재미날까 싶어 책을 펼쳤는데, 혼자만 슬쩍보고 다시 책을 덮어야 했다. 아직 동물원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풍자적인 이야기를 이해하기도 힘든 세 살짜리 아이에게 그대로 읽어주기엔 조금 무리였기 때문이다. 책 속엔 동물원을 가기 위해 길을 나선 엄마와 아빠가 가기도 전에 지쳐버리고, 정작 동물원 가서 만나는 동물들은 모두 외롭고 쓸쓸한 모습으로 갇혀 있고 동물원에 갔다 온 꼬마는 자기도 창살 속에 갇혀 있는 듯 한 느낌을 받는다는 그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아이에겐 아직 알려주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해도 동물원은 동물에게는 ‘감옥’같은 공간이다. 그나마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있는 동물원은 상황이 낫지만, 대부분은 시멘트 바닥에서 살며 시멘트 독이 올라 온갖 질병에 시달리고, 좁은 공간에서만 평생을 살면서 하릴없이 왔다갔다를 반복하는 정신병에 걸린 동물들이 가득한 곳. 북극의 얼음위에서 살아야 할 동물들이 한여름을 나야 하고, 열대의 동물들이 추운 겨울을 나야 하는 우리나라 동물원의 상황. 아무리 사육사들이 입맛에 맞는 먹이를 주며 정성껏 돌보고 수의사들이 질병을 치료해 준들, 그 안의 동물들은 별로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동물원은 세계를 뒤져 가져온 동물들을 가둬 두고 사람들에게 눈요기거리를 제공해 주는 곳이라는 불편한 진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나마 동물복지를 주장해 온 이들의 노력으로 동물원의 환경이 많이 개선되고 있다는게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또 동물원에 아무리 다양한 동물들이 많이 살아있다 해서 그걸 두고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 잘 살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단순히 몇 마리의 개체가 살아 있다는 것으로 ‘멸종위기’나 생물종의 ‘다양성’이 성립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이런 상식을 아예 모르는 듯한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 같다. 그것도 멸종위기에 처한 생물의 보호에 앞장서야 할 나름의 전문가들이 말이다.

최근에 4대강 사업으로 단양쑥부쟁이, 표범장지뱀, 꾸구리, 수달, 수리부엉이 등의 멸종위기종 동식물들이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 확인될 때마다 환경부의 대답은 한결같이 ‘증식, 복원하고 있으니 괜찮다’는 것이었다. 이들의 논리라면 우리나라엔 반달가슴곰을 포함한 1500여 마리의 곰이 사육되고 있으므로 반달가슴곰은 멸종위기종이 아니다.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든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또 하나의 변명은 ‘대체서식지’를 마련한다는 것이다. 지난 해 환경부 산하의 국립환경원에서 나온 연구보고서엔 멸종위기종의 대체서식지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다는 결론이 이미 나와있는데도 말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은 생존력을 지니고 있어 아무리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살아남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많은 종과 개체가 이미 사라지고 때때론 멸종되어버리기도 한다. 최근에 발표된 ‘제3차 세계 생물다양성 전망’을 보면 이미 지구 상에선 최근 30여년간 생물종의 31%가 사라졌다. 현재까지 발견돼 인류가 알고 있는 생물은 동물 약 150만종, 식물이 50만종 정도인데 이중 지구상에 존재하는 조류 1만여종, 양서류 6만여종, 포유류 5천여종이 멸종위기에 직면해 있다.

우리나라에선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221종으로 추정하고 있는데, 이는 1993년 179종에서 꾸준히 증가한 상황이다. 대부분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들은 멸종을 막기 위해 어디에선가 증식, 복원되고 있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멸종위기로 분류되고 있는 것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선 그들의 서식지 환경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각종 토목개발사업으로 서식지가 절단나는 상황에선 아무리 대체서식지를 만들고, 인공적으로 증식 복원되고 있다 한들, 멸종위기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생물이 살아있다는 것은 그들의 자유의지대로, 살고 있던 곳에서 먹고 살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을 때만 말할 수 있다. 이런 걸 뻔히 아는 환경부의 직원들이 4대강 개발사업같은 멸종위기종들을 전멸에 이르게 하는 사업은 놔둔 채, 우리나라의 멸종위기종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공식자리에서 멸종위기 원인이 ‘밀렵’이라는 황당한 발언을 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환경부의 공무원들도 동물원에 한번 가보길 권한다. 그곳에서 다행히 멸종되지 않고 살아가는 동물들을 보고도 멸종위기는 걱정없다고 말할 수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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