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백두대간의 귀여운 포식자, 담비를 만나다

2023.03.14 | 생명 이동권

녹색연합 야생동물기록단(5)-담비

3월 3일은 세계야생동물의 날입니다. 세계야생동물의 날은 1973년 3월 3일,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 동식물 종의 국제 거래에 관한 협약(CITES)’이 채택된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제정되었습니다.

녹색연합은 한겨레교육문화센터와 함께 [멸종위기 야생동물 기록단]을 모집하여 멸종위기 야생동물 5종의 서식지를 조사하고 이를 바탕으로 기사를 완성하였습니다.

5회에 걸쳐 한겨레 인터넷판과 녹색연합 홈페이지를 통해 <산양>, <사향노루>, <수달>, <반달가슴곰>, <담비> 취재 결과를 연재합니다.

2021년 7월 울진삼척 산림 보호구역에서 관찰된 모습

정말일까 숲의 제왕 ‘호랑이를 잡는다’는 포유동물이 있다. 담비다. 50cm 남짓한 몸뚱이와 복슬복슬하니 몸통보다 커 보이는 꼬리. 보기엔 귀엽지만 야수적 본성은 그 어떤 동물에도 뒤지지 않는다. 백두대간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라선 동물이다. 과거 한반도 야생 생태계를 지배했던 호랑이처럼 거대한 송곳니는 없지만 협동하는 지혜를 가졌다. 악화된 자연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백두대간 산줄기 전체를 누비며 먹잇감을 사냥한다. 이들의 활발한 행보는 산림 생태계가 복원됐다는 청신호로 받아들여진다. 마주치면 비명 대신 탄성이 나올 법한 생김새부터 뜯어볼수록 진국인 선한 영향력까지.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녀석들의 이름은 노란목도리담비다.

백두대간의 가장 귀여운 포식자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통고산의 인적 없는 험한 산길. 능선으로 향하는 기슭, 나무 사이사이에 국립생태원이 설치한 무인카메라가 있다. 무인카메라는 야생동물의 사진을 한 아름 안고 있었다. 수두룩한 멧돼지와 멧토끼 사진 사이, 녀석이 있었다. 날렵한 황금빛 몸통과 몸통만큼 크고 풍성한 암갈색 꼬리, 마찬가지로 암갈색인 목덜미와 다리가 인상적이었다. 족제비인가 싶기도 했지만 기껏해야 50cm 정도인 족제비보다 덩치가 두 배나 컸다. 녀석의 이름은 노란목도리담비. 멸종위기 야생동물 2급이자 한국 야생 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에 위치한 최강자다.

무인카메라가 설치된 봉우리 반대편에는 간밤에 찍혔을 담비의 발자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담비는 두 앞발을 공손히 모아 한번에 50~150cm씩 폴짝폴짝 뛰어다닌다. 4~6cm 크기의 작은 발자국이 보였다. 이 발자국에 선명히 남아있는 날카로운 발톱 다섯 개는 담비가 얼마나 사나운 성정을 가졌는지 알려준다. 이따금 담비의 발자국을 따라가면 고라니 같은 야생동물 사체를 볼 수 있다. 담비가 사냥한 흔적이다. 국립생태원의 무인카메라에는 사냥한 야생동물을 자리에 둔 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와 고라니를 뜯어 먹는 담비의 모습이 담기기도 했다.

노란목도리담비는 날카로운 송곳니 대신 명석한 두뇌를 이용해 먹이사슬의 최강자가 됐다. 무리지어 협력할 줄 안다. 꼬리까지 합쳐 1미터도 안 되는 작은 녀석들이 모여 5~10배 크기인 고라니와 멧돼지를 잡아먹는다. 외국 담비가 대부분 단독으로, 주로 작은 동물을 사냥하는 모습과 대비된다. 사계가 뚜렷한 한반도에서 살아가다보니 열매 또한 많이 먹는다. 한국 담비만이 갖는 특징은 한반도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다.

2021년 7월 울진삼척 산림 보호구역에서 관찰된 모습

담비는 20세기 중후반 한국에서 사라진 호랑이나 늑대, 표범 대신 생태계 조절자 역할을 한다. 서식지 인근 수십 킬로미터를 이동하며 고라니나 멧돼지를 잡아먹는다. 현시점에서 한반도 내 대형 초식동물의 유일한 천적이라 할 수 있다. 열매의 씨앗을 자신의 배설물에 담아 광범위하게 퍼뜨리기도 한다. 100㎢를 행동반경 삼아 먹이 활동을 하는 담비는 존재만으로 숲의 건강과 다양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담비는 한국 야생 생태계에서 생물다양성을 유지해주는 우산종인 동시에, 먹이사슬에서 중추 역할을 하는 핵심종이다.

멸종위기종 담비가 도심에서 목격

통고산에서는 숲속뿐 아니라 도로를 낀 산기슭에서까지 담비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제아무리 통고산이 거대한 생태벨트인 백두대간의 일부라 할지라도 분명 특기할 만한 일이다. 최근에는 도심에서도 담비의 목격담이 이어지고 있다. 전라북도 전주시 상림동, 울산광역시 울주군, 대구광역시 수성구 등 서식 기록이 없던 지역의 인가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2021년에는 서울대 학생이 관악 캠퍼스 기숙사 뒤에서 담비를 촬영하기도 했다.

산림 생태계 복원에 도움을 주는 담비의 개체수 증가는 희망적인 신호다. 하지만 안심하기는 이르다. 앞으로 환경정책이 중요하다. 지난 10년간 담비 개체수가 늘어난 이유는 그들의 서식지인 백두대간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됐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처럼 높은 인구 밀도를 가진 나라에서 27만5100ha에 달하는 면적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건 기적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보호구역 면적은 계속 줄고 있다. 우려할 부분이다.

2021년 7월 울진삼척 산림 보호구역에서 관찰된 모습

도시 인근에서 발견된 담비가 다른 야생동물처럼 도시에 적응하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도시 근처에 나타난 담비를 모니터링한 결과, 최장 3개월 남짓 버티다 다시 외부 지역으로 빠져나가는 패턴이 발견됐다고 한다. 어미로부터 독립해 영역을 찾다 먹이 등이 부족하자 되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해답은 이미 확보된 생태축의 연결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생태통로 같은 인공 구조물은 서식지의 연결성을 확보하는 최후의 수단이지, 온전한 해답은 아니다. 기존 생태축을 훼손하지 않는 개발이 가장 중요하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안 쓰는 도로의 아스팔트를 걷어내 생태축의 연결성을 확보하는 폐도로 생태복원 사업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실제로 지난 2013년과 2019년 월악산국립공원과 덕유산국립공원에서 폐도 복원사업이 진행됐다. 2020년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한국판 뉴딜’에 훼손지·폐도로 복원 사업이 포함되기도 했다. 아직은 구상 단계지만, 실현된다면 과거보다 낙동정맥 등의 생태축 연결성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호랑이도 잡는다던 담비는 무분별한 산림 개발로 호랑이와 함께 자취를 감추는 듯했다. 다시 돌아온 담비는 호랑이가 사라진 한반도에서 먹이사슬의 정점에 올랐다. 담비는 계속해서 생태계 조절자 역할을 하며 한국 야생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완전히 사라져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처럼 ‘담비 도심 인근에서 출몰하던 시절’같은 말로 남고 말까? 미래는 우리에게 달려있다.

야생동물기록단 최홍서

담당 : 녹색연합 자연생태팀 김원호(070-7438-8523 / democracist@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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