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방 후기] 현장을 보는 녹색활동가 시선 ②보이지 않던 것들을 보는 시간

2023.06.30 | 행사/교육/공지

현장은 녹색연합 활동의 시작이자 끝입니다. 현장에서 보고 듣고 포착한 내용은 녹색연합 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토대가 됩니다. 현장 교육의 일환으로,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지난 6월 초, 한려해상국립공원과 부산 가덕도 신공항 예정지를 다녀왔습니다. 탐방 후기를 통해 활동가들이 현장을 다녀와서 느낀 생생한 현장을 함께 느껴보세요

현장감수성 교육으로 통영시에 위치한 학림도와 부산 가덕도 신공항 건설 예정지를 다녀왔다. 처음 프로그램을 접했을 때 ‘현장감수성’은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말로 다가왔다. 녹색연합에서 활동하기 이전에 누군가 의미를 물어왔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자연의 고통을 현장에서 느끼는 일이라고 답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순간 관성적으로 생각했던 이 말을 돌아보게 됐다. “나쁜 놈들! 여길 이렇게 파헤치다니”, “역시 인간이 문제야!” 같은 손쉬운 비판에 갇힌 내 모습에서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단순 비판이라면 방구석에서 스마트폰을 쥐고 뒹굴면서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활동가의 물음이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현장감수성에 대한 부족한 이해가 넓어지는 건 아니었다. 부서 배치를 받고 몇 차례 출장을 다녀오며 안게 된 고민이기도 했다.

ⓒ학림도 서쪽 해안가 기암괴석 사이 공간

실마리를 얻은 것은 한려해상국립공원 통영지구에 속한 학림도에서 해양 쓰레기 현장을 살피면서였다. 인솔자인 서재철 전문위원은 섬 주위를 돌던 배 위에서 해안선을 가리키며 해양 쓰레기 분포도를 한눈에 파악했다. 옆에서 설명을 듣고 끄덕이긴 했지만, 여전히 뭉뚱그려진 이미지로 다가올 뿐이었다. 곧 배에서 내려 직접 현장으로 갔다. 학림도 서쪽 끝 몽돌로 이루어진 해변을 지나, 기암괴석 사이 공간으로 들어가니 사방이 해양 쓰레기로 뒤덮여 있었다. 배 위에서 어렴풋하게 인지했던 흰색 덩어리는 어업용품인 스티로폼 부표였고, 잔해물들이 사방에 퍼져 물 위를 떠다니기도 했다. 이외에도 어업용 그물과 장대, 과산화수소병, 석유통, 부탄가스통, 목장갑 등 온갖 것들이 눈에 띄었다. 여기가 국립 공원인지, 국립 쓰레기장인지 혼란스러웠던 순간이었다.

나 역시 오랫동안 바다에 대해서는 불감증에 빠져 있었다. 막연히 환경을 보호해야 한다고 구호를 외쳤지만, 거기에 살아있는 바다와 섬과 생물은 담겨 있지 않았다. 아마도 삶과 맞닿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게다. 오랜 방관의 시간을 잊어버린 채 무작정 정부 관료들만 비판할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해양수산부가 해양산업에 쏟아붓는 예산 일부를 해양환경관리 상설 조직이나 장비에 투자한다면 문제는 개선될 것이다. 그러나 활동가 자신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현장, 믿지 못하는 정보를 가지고 관료들에게 대항하거나, 시민들을 설득할 수는 없다. 너무도 당연해 보이는 해결책들이 항상 실현되기 어려운 이유기도 할 것이다.

ⓒ가덕도 대항동 외양포 마을에 걸린 전략환경영향평가서 공청회 현수막

그런 점에서 다음날 가덕도 신공항 건설 예정 부지 방문은 아프게 다가왔다. 지난 출장을 통해 신공항 건설의 문제점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피상적인 정보를 나열하는 데 머물러 있었던 것 같다. 서울에 돌아와서 가덕도 신공항의 환경영향평가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대처를 할 것인지 생각하지 못했다. 이번 재방문 때 가덕도 신공항 전략환경영향평가서 공청회 현수막이 걸려 있었는데, 그 소식을 여기서 처음 접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문제였던 건 전략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가덕도 대한항과 국수봉 일대

부끄러운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을 때, 절취 예정지인 국수봉의 푸른 신록, 상괭이가 헤엄치고 있을 바다의 전경, 그리고 새들의 날갯짓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렇다. 지금 발 딛고 서 있는 장소를 통째로 밀어버리다 못해 뭉개서 바다에 넣어버리는 것이 공항 사업이었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은연중 깊이 숙고하기를 외면했던 현장의 모습들이 눈 돌리는 곳마다 버티고 서 있었다.

ⓒ배에서 바라다 본 학림도

이번 여정은 현장에 대한 고민의 두께를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또한 우리 각자가 살아온 공간, 맺어온 관계가 삶에서 품어온 시간만큼 깊어지듯, 현장과의 만남에서 자라나는 감수성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싶었다. 그것은 손쉬운 비판과 해소를 넘어, 무엇을 모르는지 인식하고, 그 현장의 문제를 붙잡는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잊을 수 없는 한 순간이 아른거린다. 동료들과 쓰레기를 기록한 다음 섬에서 나오던 길, 점차 멀어지는 학림도 해안가가 눈에 들어왔는데, 옆에서 설명을 들어도 뭉뚱그려졌던 그 섬이 이전과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글 : 녹색연합 박상욱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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