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권리 퍼포먼스 ‘공생’ 참가후기2] 서울 한복판에서 잠시 멈춰 공생을 외치다

2024.06.14 | 행사/교육/공지

6월 5일 환경의 날, 광화문과 청계천, 신촌에서 열린 퍼포먼스 <자연의 권리>에 참여했다. 나는 평소 연극과 스탠드업 코미디 창작 작업에서 기후위기를 자주 이야기하고 있고, 최근 들어 퍼포먼스에도 관심을 두고 여러 시도를 해보고 있다. 그래서 환경과 관련된 퍼포먼스를, 게다가 전문 무용수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아서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일주일 전, 연습을 위해 여의도 한강공원 다리 밑에서 만났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마치 봄소풍을 온 것 같았다. 평일 낮이라 나 같은 프리랜서 예술인들이나 학생들이 오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직장인이나 자영업자, 활동가 등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모였다.
무분별한 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은 동물들인 제주 연산호, 금강 흰수마자, 낙동강 하구 큰고니, 설악산 산양, 새만금 저어새 중에서 참가자들이 표현하고 싶은 동물을 선택할 수 있었다. 나는 연산호가 등장하는, 바다에 대한 연극을 바로 직전에 만들어서인지 제주 연산호를 표현해 보고 싶었다. 무용수들이 만들어 온 움직임을 배우고 박자에 맞춰 연습하고, 네발 걷기도 해보았다. 네발 걷기는 무릎을 대고 기어가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의 사족보행법을 모방하는 것이었다. 평소 내 몸에 익숙하던 방식으로 걷는 것이 아니라 두 손과 두 발이 모두 땅을 디디는 느낌이 생경했다.

퍼포먼스 당일은 광화문에서 모였는데, 여유로운 분위기였던 한강변 연습 장소와 달리 아주 복잡한 도심 한가운데였다. 출근 시간대에 집 밖을 나서본 게 정말 오랜만이었는데, 대중교통에 사람이 너무 많고 길이 심하게 막혀서 놀랐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많은 기자들이 모였고, 광화문 광장을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멈춰서서 우릴 구경했다. 내가 연산호라고 상상하고 자연의 권리를 온몸으로 외치고 싶었는데 사실 조금 긴장되고 몰입이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안영준 안무가의 명료한 디렉팅을 인이어를 통해 실시간으로 들으며 어렵지 않게 따라갈 수 있었다.

청계천 퍼포먼스로 이동하면서 횡단보도에서 네발걷기를 했다. 서울에서 가장 정치적이고, 역사적이고, 경제의 중심이면서 외교의 중심이기도 한 4차선 도로 한복판에서 동물이 되어 네 발로 걷는다는 사실이 굉장히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날이 더워서 아스팔트가 꽤 뜨거웠고, 두꺼운 장갑을 뚫고 도시개발의 열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네 발로 땅을 단단히 딛고 스무 명의 동료들과 함께 큰길을 건너는데, 비장한 마음이 들었다. 신호가 바뀌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걸어 나가서, 온 차들을 멈추게 만들고 싶었다.

광화문과 청계천에 이어 신촌에서 한 번 더 퍼포먼스를 했는데, 느낌이 색달랐다. 정치집회가 자주 열리고 불과 며칠 전에도 퀴어문화축제로 방문했던 광화문 일대와 달리, 신촌은 나에게 대학생들의 열기(근데 또 그게 정치적이라기보단 학벌주의에 기반한 우월감에 가까운)라든지 소비를 조장하는 팝업스토어, K-pop 버스킹이 떠오르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번에 퍼포먼스를 하면서 그 공간을 새로운 의미로 전유한 것 같아서 기뻤다.
처음엔 평범한 시민으로서 공간에 머무르다가 한 명씩 멈춰서고, 모두가 멈춰ㅍ서면 본격적인 안무가 시작되는데, 평소에 자주 방문하던 신촌이어서인지 몰입이 잘 되었다. 정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공간에서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가도 문득 멈춰서서 공생을 외칠 수 있는 힘. 이 퍼포먼스의 기억으로 나는 신촌에서 자주 공생을 떠올릴 것 같다.

한편으로 준비기간이 짧아서, 퍼포먼스의 내용과 의미적인 측면을 사람들과 많이 이야기 나누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네발걷기의 의미라든지 안무 중 하나였던 그물을 걷어내는 것, 채찍 피하기, 팔꿈치 연결하기 등 퍼포먼스의 의미를 찬찬히 분석하고 각자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법인격 부여 이슈에 대해, 전국의 개발지에 대해, 동물을 인간이 재현하는 방식의 윤리성에 대해, 다섯 종류의 동물들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동물들(예를 들면 도시동물)에 대해서도 충분한 시간을 갖고 함께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고 끊임없이 소리를 내는 단단한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다.

글. 참가자 안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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