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2024 그린컨퍼런스 – ‘자연의 권리’

2024.10.23 | 난개발, 행사/교육/공지

여러분은 ‘우리’라는 말에 어떤 존재들을 떠올리시나요? 가족? 친한 친구들? 직장 동료? 요즘엔 많은 분들이 ‘우리’에 인간 너머 존재들을 떠올립니다. 그들은 그 순간부터 스쳐지나가던 동, 식물이 아니라 겁보 막내동생인 ‘우리 연탄이’가 되고, 가슴으로 낳아 기른 ‘우리 레몬이’가 되며, 내 삶을 재건하는 ‘우리 삐용이’가 됩니다.

스며들어 우리가 된 존재들은 나의 세상에서 기꺼운 환대를 받습니다. 환대받은 존재는 존엄과 격을 갖추며, 보호하고 지켜 마땅한 ‘권리를 가진 자’로 자리매김합니다. 더는 남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돌보면서 무수한 사랑이 쌓이고, 공생이 싹트며, 점차 얽혀 들어가 종내에는 단단하며 다정한 세상이 세워집니다.

이번 2024 그린 컨퍼런스에서도 그런 세상의 확장을 꿈꿨습니다. 자연의 권리가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우리로만 가득한 세상”을요. 동물과 식물들, 나무와 강과 산… 자연 전체가 ‘우리’가 되어 함께하는 세상이 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지금부터 그 생생한 현장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24년 10월 17일 오후 6시, 을지로의 페럼홀이 시끌벅적합니다. 그린 컨퍼런스의 사전 마당이 열렸기 때문인데요. 가장 안쪽 포토월에는 오색의 산을 배경으로 여러 식생과 멸종위기종인 산양, 삵과 담비, 큰부리저어새 등 생명이 담긴 입간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속으로 풍덩 들어가 사진을 찍어보니 커다란 자연이 너른 마음으로 우리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에 불과함을, 자연의 권리를 지켜야 우리의 권리도 지켜질 수 있음을 잊지 말라고 속삭이는 것 같습니다.

실크스크린 부스
실크스크린이 새겨진 에코백

오른편에는 자연의 권리를 SNS에 공유해주신 분들에게 실크스크린 에코백을 제공하는 이벤트 부스가 열렸습니다. ‘자연’스럽게 살아갈 권리!라는 문구가 꽤나 인상깊습니다. 자연스럽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걸까요? 자연을 ‘자연’스럽게 두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요?

자연의 권리 후속 프로그램 안내 부스

입구쪽에 마련된 “자연은 ______를 가져야 한다.” 빈칸 채우기 부스를 빠뜨리면 아쉽겠죠? 쉽게 적을 수 있을 것만 같았는데, 막상 빈칸을 살펴보니 오래도록 생각에 잠기게 합니다. 자연이 가지고 누려야 할 것,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부스 몇 군데 참여를 하고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7시에 가까워집니다. 지금부터는 본격적으로 ‘자연의 권리’에 대한 강연을 들어볼 시간입니다.

‘지구와 사람’ 김왕배 대표

자연의 권리: 바로 세우다.
첫 강연은 포럼 지구와사람 대표, 연세대 사회학과 김왕배 교수님이 맡아주셨습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은 인간 만능주의의 착각을 불러왔습니다. 인간은 스스로가 자연의 일부임을 잊은 채 자연을 지배하고 대상화하기 시작했지요. 그 결과 기후 위기는 팽배했고 종다양성이 파괴되면서 자연의 권리는 흔적도 없이 무너지고 맙니다. 그야말로 인류세의 시대를 부정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김왕배 교수님은 이런 이원적이고 위계를 가진 인간의 이기적 인식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보다 거시적인 시선을 들여올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행성적 사유’입니다. 행성적 사유란 우주로 우리의 세상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우주로 세상을 확대하면, 정교하게 구성된 수많은 생명들이 복잡다단하게 얽혀 탄생했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구에 사는 인간과 비인간 모두 존재론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부여받은 대상에 불과하며, 우주의 모든 성원은 그게 어떤 형상이든 ‘주체로서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바로 세워야 할 것은, 인간의 인식 그리고 자연의 권리이겠습니다.

김동식 촬영감독

자연의 권리: 기록하다.
바다 잠수를 시작한 지 어언 42년, 바닷속 자연의 권리를 전하는 김동식 감독님이 두번째 강연자로 자리해주셨습니다. 김 감독님은 8년동안 <고래와 나>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면서 스리랑카, 모리셔스, 퉁가, 멕시코 등 다양한 지역의 고래들을 만나고 돌아오셨는데요. 열심히 촬영하겠다는 열의에 찬 제작진에게 “촬영은 자연이 도와줄 때야 가능한 것”이라고 일축하며,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자연의 도움을 바라기 미안할 정도로 감독님이 발견한 현장은 처참합니다. 플라스틱으로 가득찬 바다, 촬영 허가를 받지 않은 무분별한 관광객들이 고래를 만지고 촬영하느라 바글댔던 바다 후일담을 전하며 참담한 표정을 내비치셨어요. 생명을 가볍게 생각하는 이들을 보며 허가를 받고 촬영하는데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 더는 촬영하러 갈 수 없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생명체는 지구에서 똑같은 권리를 누려야 하는데, 공존을 포기한 존재에게 자연은 과연 뭐라고 응답할까요? 

녹색연합 이다솜 활동가

자연의 권리: 상상하다.
마지막 강연은 다부지고 고요한 음색을 지닌 녹색연합 이다솜 활동가의 목소리로 채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상상은 빈 토대보다 작은 틈과 점이 있을 때 시작하기 쉬운 것처럼 다솜 활동가가 진행했던 물고기 이동권 캠페인, 자연권리선언문 프로젝트를 전해들으며 자연의 권리에 대한 상상을 구체화해볼 수 있었습니다. 자연물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아 네 차례의 자연물 소송 기각이 이루어졌던 사례를 맨 처음 소개해주셨는데요. 힘이 쭉 빠질법도 한데, 이다솜 활동가는 아쉬움 너머를 말하고 있습니다. “단번에 바뀐 건 없으니까요. 인권도  마찬가지였어요.”


변화를 믿는 사람의 말에는 힘이 담기는 법인가 봅니다. 그 힘을 동력삼아 23년 자연권리 선언문을 제작했던 이야기도 전해 주셨습니다. 그 중 일부를 여러분께도 공유하겠습니다.


“자연은 그 자체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자연과 그 안에 사는 생명은 그 자신의 습성과 모습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다.” 

전 국립현대무용단 리허설 디렉터 안영준이 연출한 ‘자연의 권리’ 퍼포먼스

자연의 권리: 공생하다
마지막은 안영준 연출가와 전문 무용수 4인이 함께 <공생>을 주제로 한 공연이 펼쳐집니다. 산양, 담비, 저어새, 고니, 연산호, 흰수마자가 된 무용수들이 자연의 모든 생명체들은 함께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무대를 꾸렸습니다. 일렬로 선 무용수들이 앞 무용수의 동작을 차례로 따라하는 장면을 보며, 마치 한 생명의 파괴가 시작되면 도미노처럼 모든 생명체가 파괴되고 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뒤집어 생각하면 한 생명을 살리기 시작하면 모든 생명도 같이 살아난다는 희망을 전하는 것 아닐까요? 결국 같이 사는 삶, 더불어 자리하는 삶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울림이 짧은 공연 속에 담겨 있어 울컥했습니다.

청중석

“우리는 어떻게 이 세상에 들어오고, 사람이 되는가?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 받아들여진 것인가 아니면 이 세상에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사람이 된 것인가?”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 중 발췌

우리가 준비한 2024 그린 컨퍼런스는 막을 내렸습니다. 자연의 권리를 바로 세우고, 기록하고, 상상하니, 공생하는 세상이 살며시 우리를 반기는 것 같습니다. 이제 글의 맨 처음으로 돌아가 다시 여쭙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세상에 살고 계신가요?
여러분의 세상에는 어떤 우리가 담겨 있나요? 

저는 조금 더 넓은 우리, 자연의 품에 안긴 우리가 세상을 이뤄 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참가자 전체 사진

2024 그린컨퍼런스 : 자연의 권리
기획한 활동가: 황일수(총괄), 서해, 박상욱, 박은정, 배선영, 이다솜, 윤소영
함께 한 기획사: 솔깃 커뮤니케이션즈
후원해주신 곳: 브라이언임팩트재단, 파타고니아

기록_기후에너지팀 오송이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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