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손에서 곰손이 우산을 수리하다
‘이천역에서 곰손까지 2시간 넘게 걸리네! 그렇다면…’
워크숍 시작 시간인 10시에 늦지 않게 가려면 아침 6시에는 일어나야 했다. 전날의 야근과 일주일 동안 쌓인 피로로 몸은 무거웠다. 하지만 벼르고 별렀던 ‘우산 수리 워크숍’이 아닌가! 알람 소리보다 먼저 일어난 건 순전히 설렘 덕분일 게다.
망원동! 어릴 적 추억을 소환하는 동네다. 방학이면 놀러가 천방지방 뛰놀던 작은아버지 댁이 있던 곳. 어디에 그 옛날의 흔적이 남아 있을까? 도로를 마주한 작은 유리가게에서 도시의 변두리를 탐색하던 꼬마 아이의 마음이 되어 망원역과 망원시장을 더듬었다. 어느 도시에나 있는 뻔한 간판과 건물이었지만 마음이 다정하니 떨어지는 은행잎도 조잡한 골목도 사랑스럽기만 했다.
마중 나온 녹색연합 활동가가 아니었다면 숨바꼭질하듯 골목 안에 숨어 있는 곰손을 찾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건물 입구에 세워진 입간판은 그냥 지나칠 수 없을 정도로 매력적이었고,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의 게시물들은 신세계로 이끄는 주문처럼 느껴졌다. 낯선 공간에 들어섰을 땐 자기도 모르게 위축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인데, 문을 열자 펼쳐진 곰손의 전경은 시사주간지에서 봤던 그대로 따뜻하고 환하고 그래서 마음마저 활짝 피었다. 먼저 온 책 모임 친구가 흔드는 손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반가웠다.
“제 닉네임은 혜몽인데요, 해몽을 연상하시면 외우기 쉬울 거예요.” 우리의 우산 수리 선생님은 수리에 진심인 다큐멘터리 작가였다. 유쾌하면서도 단단한 마음이 느껴지는 말투와 표정이 믿음직했다. ‘왜?’라는 질문을 품고 ‘어떻게?’를 찾아 탐구하는 젊은이의 패기가 부럽기도 하고 멋지기도 했다. 세상은 혼란스럽고 미래도 전망이 없다고 느껴질 때 이런 젊은이들이 희망이 된다.
내가 들고 간 우산은 두 개였다. 아껴 쓰고 있던 세월호 기억 우산 하나, 성장학교 별의 김현수 선생님께서 선물해 주셨던 봄꽃 우산 하나. 살대가 구부러지고 중간 철사가 빠져나와서 우산을 펼쳤을 때 모양이 찌그러지는 우산들이었다. 버리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혼자서 고칠 방법은 없고. 수납장 속에 고이 넣어뒀던 우산이었는데 이제 날개를 펼 수 있겠다 생각하니 신이 났다. 두 개나 가져가는 게 좀 욕심꾸러기처럼 여겨졌으나 어느 하나를 두고 갈 수는 없었다.
중간 철사가 빠져나온 봄꽃 우산은 가까스로 고칠 수 있었지만, 세월호 우산은 수리를 포기하고 말았다. 구부러진 살대를 펴다가 힘 조절을 잘못하는 바람에 그만 분질러버렸기 때문이다. 부러진 우산을 기증하기로 맘먹었는데, 활동가 선생님의 뜻밖의 제안으로 나의 노란 우산은 선풍기 커버로 변신했다. 전면에는 ‘살살펴고 바싹말려 고이접어 오래오래’ 로고를 달고 뒷면에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는 경구를 새긴 노란 선풍기 커버는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천장에서 내려온 끈에 우산을 거꾸로 매달아,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의 눈빛으로 각자의 우산을 고치고 있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아름다웠다. 어설픈 곰손에 낯선 도구를 들고 우산을 매만지다 보니 여기저기서 실수가 이어졌고, 되살아난 우산을 보고 감탄도 터져 나왔다. 참 좋았다. 역시, 좋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 가면 공기가 다르다. 빛의 파장도 다르다. 유난히 부드럽고 푸근하면서 유쾌한 이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참 좋다.
우산은 살살 펴야 하는 것. 사용한 후엔 곱게 접어 보관해야 하는 것. 비를 맞았다면 꼬득꼬득 말려야 하는 것. 장우산은 지팡이가 아니라는 것. 자동 우산은 자동 우산답게, 3단 우산은 3단 우산답게 펴고 접고 관리해야 한다는 것. 우산이 정밀하게 고안된 기계였으며, 쉽게 버리면 안 되는 물건이라는 것을 새삼 배우고 느낀 시간이었다.
워크숍 후에는 책 모임을 했다. 평소에는 주로 분당에서 만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면서 책 이야기를 나눴었는데, 우산 수리 워크숍에 너무나 오고 싶었던 나머지 친구들을 꼬여 망원동까지 왔다. 점심 식사 장소로 선택한 ‘대안식탁 풀’은 여러모로 제격이었다. 우산 수리 워크숍에 대한 후기와 감동을 자아내는 음식 이야기, 이번에 읽은 《소년이 온다》의 감상까지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어느덧 바깥은 어두워지고 비까지 내리니 귀갓길을 서둘러야 했다. 깔끔하게 고친 우산을 팽팽하게 펼쳐 들고 빗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우산 수리를 한 날, 맞는 비라니! 이 비는 우리를 위해 내리는 비였다. 우산을 펼치는, 다시 접는 손길이 어제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글 류재향 녹색연합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