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뜨거우나 이따금 부는 바람 덕분에 그렇게 덥지 않은 광화문의 여느 날, 바삐 길을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 알록달록, 희한한 사람들이 모였다. 하양 파랑 검정 황색. 평소에도 사람들의 옷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색들이지만, 그 색들이 한데 모여 있는 모습이 마치 자연의 다양한 동물 무리를 연상시킨다. 저들은 대체 뭘 하려는 걸까? 작게 생긴 호기심에 지나가던 길을 멈추고 기다려보기로 한다.

여기가 맞나? 긴가민가한 마음으로 구석에 있는 검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동그랗게 앉아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방으로 거울이 있는 이곳은 공생 퍼포먼스 상괭이팀의 첫 연습 장소이다.

대안학교인 우리 학교에서는 3학년이 되면 관심 분야의 기관으로 2주간 인턴 생활을 하는 중요한 행사가 있다. 나도 어느덧 3학년이 되어 서울로 떠나게 되었는데, 그 기간에 마침 녹색연합에서 춤에 관련된 퍼포먼스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평소 환경 문제와 춤에 관심이 많았기에 ‘딱 나를 위한 활동이다!’라는 생각으로 이 ‘공생 2’ 퍼포먼스를 신청했고,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첫 연습은 산양, 흰수마자, 연산호, 상괭이, 저어새 이렇게 다섯 개의 팀으로 나뉘어져 각자 만나게 되었다. 나는 상괭이팀에 배정되어 함께 할 팀원들, 또 우리를 이끌어주실 무용수님과 짧은 자기소개를 나누고 단체 군무와 상괭이의 몸짓을 배웠다. 전문 무용수가 내 눈앞에 있다는 사실과 더불어, 춤을 매개로 한 만남은 처음이어서 많이 설레고 들떴다. 상괭이가 물을 유영하는 듯한 손동작과 야생동물을 흉내 내는 것 같은 거친 몸짓, 또 그와 상반되게 딱딱하고 각진 동작들. 무용수님이 알려주시는 안무를 하나씩 보고 따라 하다가, 갑자기 우리가 하는 동작의 의미가 궁금해졌다. 어떤 의도로 이런 동작들이 탄생했고, 우리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는 걸까. ‘공생’의 의미는 뭘까, 하는. 그런 의문이 떠올랐다가 이내 사라졌고, 그렇게 첫 번째 연습이 끝났다.


두 번째, 세 번째 연습은 여의나루 한강공원의 인라인스케이트장에서 진행되었다. 시원하고 넓은 그늘에 흩어져있던 다섯 마리 동물이 모두 모였다. 안무가님의 지시에 따라 각 팀이 동선을 찾아가고, 무용수분들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단독적인 움직임이었던 것이 점점 하나의 퍼포먼스로 만들어져 갔다. 나는 그 공간에서 상괭이의 몸짓을 구사하기 위해 집중했다. 그런데 집중하면 할수록, 상괭이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났다. 내가 표현하고 있는 이 생물은 어떤 움직임을 가졌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비슷하게 ‘공생’의 안무를 몸으로 옮길수록, 무용수분들의 퍼포먼스를 보면 볼수록 맴도는 문장이 있었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 우리는 어쩌다 이런 세상을 만들어 버린 걸까?


세 번의 연습을 거쳐 드디어 퍼포먼스 당일이 되었다. 광화문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우리를 반겨주었다. 긴장된 마음을 안은 채 인이어를 차고, 마지막 리허설을 마친 뒤에 모인 기자들 앞에서 퍼포먼스를 시작했다. 하나, 둘씩 움직이던 발을 멈추며 동물로 변하고, 서로 뒤섞이며 어느새 하나의 움직임으로 변하는, 함께 연습했던 움직임을 진행했다. 그렇게 단체 군무까지 마치고 무용수님들의 퍼포먼스까지 끝나니 대망의 횡단보도를 건너야 하는 순서가 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사람들 곁에 섞여 천천히 사족보행을 시작했다. 도심의 한복판에서 두 발이 아닌 네발로 걷는 존재들이 되어 천천히 나아갔다. 그 순간만큼은 모든 사람이 우리를 보고 멈춰 서기를,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조금이라도 의문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강렬한 경험이었다.





퍼포먼스를 준비하고, 발표하기까지의 과정에서 얻게 된 작은 깨달음이 있다. 나는 인간으로 살며 절대 동물과 자연의 입장이 될 수 없고, 이 인간 중심의 세상 속에서 끊임없이 그들을 죽이고 있지만 그럼에도 인간이기 때문에 외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우리는 광화문에서 ‘공생’을 외쳤다. 나는 아직 공생의 의미를 완벽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퍼포먼스를 통해 내가 받아들인 공생은 자연과 끝없이 연결 되어있는 이 세상에서 인간으로 존재하고,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걸 계속해서 도모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즐겁고 유쾌한 경험이었다! 공생을 함께 외쳐준 모두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글. 참가자 김시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