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쯤 전에 녹색연합 야생동물 보호활동 담당자로 자원 활동가들과 함께 깊은 산에 밀렵 도구를 제거하러 다닐 때의 일이다. 대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 눈에는 도무지 야생동물들이 다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엔 그저 빽빽한 조릿대의 군락인 곳에서 올무나 덫이 발견되고, 함께한 전문가들은 산속 어딘가에서 산양의 똥 무더기, 나무껍질에 붙은 멧돼지 털, 다래씨 가득한 담비 똥 등을 찾았다고 알려주는데, 나는 깜깜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나뭇잎 스치는 소리가 났다”라며 “저기 야생동물이 있다”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도시에 살면서 내 청각도 퇴화한 것이 아닌가 절망스러운 기분까지 들었다. 그렇게 조금씩 경험이 쌓이면서 터득한 것은 야생동물의 시점으로 산속을 봐야 그들이 다니는 길이 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녹색연합 상근활동가였던 시절에 오소리 똥굴도 발견하고 그랬던 추억을 떠올리며, 함께 오솔길을 걷는 지인에게 “오소리가 다니는 길이어서 오솔길이래요”라는 말도 해주곤 하는 가운데….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이 기획한 ‘RIGHTS OF NATURE 자연의 권리 공생’에 대한 참가 신청 안내메시지를 받았다. 삶의 터전을 잃을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을 직접 몸짓으로 표현하고, 네 발로 도심 한복판을 걷는 퍼포먼스를 한다니, 과거에 야생동물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자 노력했던 내가 참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국립현대무용단 리허설 디렉터 출신의 연출가님과 전문 무용수의 리드로 설악산 산양, 새만금 저어새, 가덕도 상괭이, 제주 연산호, 금강 흰수마자를 표현하고, 네 발로 광화문 세종대로 횡단보도 4개를 건넜다. 작년 환경의 날 ‘공생’ 퍼포먼스에 이어, 올해에는 5월 22일 생물다양성의 날에 ‘공생2’를 진행했는데 참가자 42명의 군무와 하얀 인간 얼굴 가면 소품까지 추가되어 더욱 멋진 퍼포먼스가 되었다. 짧은 준비기간을 가졌음에도 일반시민 참가자들은 각자 내면에 숨겨졌던 끼를 한껏 뽑아내서 서식처를 침해당하는 생물종을 온몸과 표정으로 표현했고, 다들 에너지가 넘쳐서 함께 춤추면서 힘을 받기도 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다’라고 말하는 타 생물종의 입장이 되어보고, 사람들에게 ‘이제는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과 공생해야 할 때’임을 일깨우는 ‘자연의 권리 공생’ 퍼포먼스가 매년 나의 생물다양성의 날 연례행사가 되면 좋겠다. 안영준 연출가님, 전문 무용수님들, 우리가 광화문에서 로드킬 당하지 않도록 안전을 챙겨주신 진행요원들과 경찰분들, 그리고 멋진 프로젝트를 기획하여서 참여하는 기쁨을 주신 녹색연합 그린프로젝트팀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글. 참가자 이신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