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산불은 지구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문제였다.

2025.10.29 | 기후위기대응, 행사/교육/공지

지난 10월 18일(토), 녹색연합은 시민들과 함께 안동과 의성의 산불 피해지역을 다녀왔습니다. 지난 3월, 대형 산불로 인한 피해를 되돌아보고, 여전히 버티고 또 회복하는 현장을 직접 확인하며, 산불 이후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입니다. 참가자들은 이른 새벽부터 늦은 저녁까지 피해 지역의 숲과 마을을 걷고, 피해 주민들과 만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활동 이후 산불이 왜 모두의 문제인지, 연대를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할지… 쉽지 않은 질문들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고민과 답을 안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날 참가한 조인숙 님께서는 ‘숲이 자연 복원되는 모습이 뿌듯하고, 계절마다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할 것 같아 기대된다’라면서도 ‘주민들 삶의 억장 무너지는 소리, 예측 불가능한 이차 피해가 또 걱정’이라며 경각심을 갖고 계속 지켜보면서 유대감을 유지하는 게 필요하다는 소중한 소감을 남겨주셨습니다.

한편, 현장 활동에 앞서 평일 저녁에는 김동현 전주대 교수, 정연숙 강원대 명예교수, 서재철 녹색연합 전문위원 세 분과 함께 산불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는 시간도 가졌었는데요. 기후위기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는 대형 산불의 원인과 위험성, 30년 간의 연구 결과 조림보다 빠른 자연 복원, 경북 산불의 원인과 대안 등의 내용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미지1. 온라인 전문가 교육 모습]

2일에 걸쳐 진행된 이번 프로그램 중, 현장 활동에 함께 다녀온 정은주님께서 남겨주신 후기를 나눕니다.

 


 

2022년 산불이 난 충북 음성에 계시던 지인분한테 이런 말을 들었다. 

“그렇게 큰 산불이 나면 사람만 살아남아요.”

‘사람만 살아남는다.’라는 말이 그렇게 절망적일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 3년. 이제 한반도의 산불은 사람도 죽인다. 급격한 기후 변화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란다.

사람도 죽는 산불의 현장을 한번 가보고 싶었다. 언젠가는 산속에 폭 파묻혀 살리라는 귀촌 드림이 여전히 내 머릿속에 유효했으니, 나로선 임장이기도 한 일이었다. 그러나 재난을 당한 이들의 삶 근처를 배회하는 일이라 조심스러웠는데, 녹색연합의 산불ing 문자를 받게 되어 참여하게 되었다.

안동시 임하면 추목리와 의성 점곡 사촌마을로 가는 점곡 둘레길(임도)을 따라 산불이 났던 숲을 둘러본 뒤 점곡면 사촌리로 넘어가 주민분들의 이야기를 듣는 일정이었다.

멀리서 바라본 숲은 군대 갔다가 첫 휴가 나온 군인의 머리 같았다. 까슬까슬 검게 돋은 짧은 머리카락 아래로 두피가 보이는 머리. 그러나 막상 숲으로 들어가자 새까맣게 타버린 채 선 나무들 아래로 1미터가량 높이의 활엽수와 고사리, 각종 초록 풀이 제법 많이 나 있었다. 산불이 난 지 불과 6개월 사이에 일어난 자연 복원의 모습이었다. (사진1 참조) 

[사진1. 회복하는 산불 피해 지역의 숲(산불 발생 약 반 년 후)]

평상시 숲에서 땅에 떨어져 파묻혀 있던 수많은 씨앗 중 자연 발아하여 풀이 되고 나무가 될 확률은 수천 분의 일이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산불 덕분에 햇빛을 가리던 수많은 교목과 관목이 사라져 더 많은 씨앗에게 탄생과 성장의 기회가 왕창 온 것이다. 분명 산불은 오래된 숲을 없애고 새로운 생명을 위한 길을 열어주는 측면이 있다. 성장과 쇠퇴, 재생이라는 역동적인 리듬을 만들어 자연이 끊임없이 변화하게 만들어 준다.

그 엄청난 산불의 현장이었던 숲에서 내가 본 것은 자연의 놀라운 회복력이었다. 문득 언젠가 들었던 최재천 교수님의 얘기가 생각났다. 이런 극심한 기후 위기 상황이 지속되면 종국에는 멸종할 건 인간뿐이라던…

결국, 산불은 지구의 문제도 아니고, 오롯이 인간의 문제인 것 같다.

“아이들은 산불이 오기 전에 혹시나 해서 안동의 친척 집에 보내놨었어요. 일단 면에서도 그러고, 이장님도 그러고 우리 마을까지는 산불이 안 올 거라 하니, 저는 또 집이랑 지켜야 하잖아요. 그래서 여기 있는데, 불이 온 거죠. 사방이 불인데, 그때는 집이고 뭐고 아이들 있는 안동으로 제가 가야 하잖아요. 근데, 갈 수가 없는 거예요. 아무도 가는 방법을 몰라요. 차도 없고, 아무것도 없고······.” 

[사진2. 산불의 증인_의성 산불피해주민대책위와의 대화]

주민 한 분이 전하는 그날의 생생한 증언을 듣고 있으려니, 내 가슴속에서도 울화가 막 치솟았다.

“대피 문자가 마을이 불에 다 휩쓸린 다음에서야 왔어요. 5분 뒤!”

‘재난’의 실질적인 의미가 이런 상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뭔가를 해야 하는 걸 아는데, 도무지 할 수 없는 상황. 속수무책으로 그 자리에서 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산불을 처음 겪은 뒤 주민들은 다양한 후유증,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버스로 돌아가는데, 머릿속에 여러 생각들이 한꺼번에 스며들었다.

가속화되는 기후위기로 앞으로 산불은 더 대형화되고 잦아질 게 뻔하다. 그것에 맞게 재난 대책부터 새롭게 정비하고 시행해야 한다는 녹색연합 전문위원의 말은 현실적이고 꿰어야 할 첫 단추인 것 같았다. 그럼 그걸로 끝인가? 숲은 스스로 잘 복원되고 있고, 우리는 모니터링하며 기다려주면 된다? 뭔가 너무 나이브한 이 결론은 뭐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지구에는 시간이 있어도 인간에게는 시간이 없는 듯하다. 인류가 이 어마어마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문명을 계속하는 한, 이를 흡수할 숲은 절대적으로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 결국 인간이 멸망의 시기를 늦추고 지구에서 계속 살아남으려면 숲이 보존되고 오히려 확장되어야 한다. 암튼, 문제의 원인은 알겠는데, 그 해결을 위해 당장 내가 해야 할 게 안 보이는 것도 참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때 마침 참가자 중 한 분의 티셔츠에서 절묘한 힌트 같은 구호를 보았다.

“덜 소비하고, 더 존재하라!”

그래, 이산화탄소 발생부터 줄이는 일이 가장 단순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대처 방안일 것이다.

하루를 꼬박 쏟아 기후위기, 대형 산불, 재난 대책 등 문제에 대해 회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생각해 본 날이었다. 알면 알수록 답답하기만 문제들이었는데, 현장을 둘러보고 생각하고 얘기 나누는 과정에서 많은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런 문제라면 늘 인터넷, 뉴스로만 보고 흥분하던 나에게 이번 산불ing 행사는 작지만, 꽤 의미 있는 변화를 가져다준 경험이었다.

 

정리.
녹색연합 이음팀 변인희 활동가(02-745-5002, bihee91@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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