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동물권 너머, 자연의 권리 — ‘유해’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2025.11.04 | 생명 이동권, 야생동물, 행사/교육/공지

지난 10월 25일, <동물권 너머, 자연의 권리 시리즈 — 경계를 넘는 동물들, 보호와 제거 사이>에서 우리나라 유해동물 지정의 실태와 생태계 교란종에 대한 행정, 그리고 정치의 한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생태계 교란종 뉴트리아를 바라보는 예술가의 시선을 따라 다큐 <박멸의 공존>을 함께 보고, 이어서 기자, 생태학자의 이야기로 현장과 이론을 교차하며 인간과 비인간 존재의 관계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참가자 세 분의 후기를 소개합니다.

▲행사장을 가득 채운 참가자들이 ‘동물권 너머, 자연의 권리’를 외치고 있다.

생태계 교란종이라 불리는 붉은귀거북, 뉴트리아, 황소개구리, 베스, 블루길, 러브버그. 이들은 스스로의 의지로 국경을 넘은 존재가 아니다. 인간의 선택과 방생, 혹은 무책임한 소비의 결과로 낯선 땅에 던져진 생명들이다. 그리고 그 대가로, ‘살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죽임을 당하는 삶’을 살아간다. 흥미롭게도, 한국의 원앙·잉어·너구리·꿩·가물치 역시 미국에서는 ‘침입종’으로 분류된다. 이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묻게 된다. “진정한 유해동물은 과연 누구인가?”

전 세계적으로 한 해 동안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수는 약 45~50만 건, 동물이 사람을 죽이는 경우는 약 18만 건으로 추정된다. 그중 다수는 ‘공격’이 아니라 ‘방어’의 결과다. 숫자만 보더라도, 인간의 폭력은 스스로 만든 구조적 폭력임을 보여준다.

김아람 작가의 다큐멘터리 〈박멸과 공존〉 속 뉴트리아 라이브캠은 잊히지 않는다. 화면 속 그들은 평화로웠다. 그저 물가를 따라 움직이고, 먹이를 찾고, 살아갈 뿐이었다. 그러나 단 한 명의 인간의 손에 의해 골프채로 맞고, 굶주리며, 익사당했던 5천 마리의 뉴트리아 — 그 참혹함은 결코 ‘생태계 보전’이라는 명분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한국일보 고은경 기자의 지적처럼, ‘나쁜 동물’은 자연이 아니라 언론과 사회가 만들어낸 이미지다. 그리고 생명다양성재단 김산하 대표의 말처럼, 자연이 끼치는 피해, 동물이 끼치는 피해란 없다. 그것은 생물학이 아니라 정치학이다. ‘유해성’이라는 개념은 과학적 사실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며, 인간 중심의 세계관이 만들어낸 정치적 판단일 뿐이다.

결국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공존’이다. Carter & Linnell(2016)은 공존을 “인간과 야생 생물이 땅을 공유하기 위해 상호 적응하는 역동적이고 지속 가능한 상태로, 위험이 용인 가능한 수준에서 야생 생물의 개체군이 사회적으로 정당하게 유지되도록 인간-자연 간 상호작용이 효과적으로 관리되는 것”이라 정의했다고 한다. 즉, 공존은 감정이 아닌 관계의 기술이자 정치적 선택이다.

다시 묻는다. 진정한 유해동물(생태계를 교란시키는 종)은 누구인가?

아마, 그 답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많은 성찰의 기회를 주신 녹색연합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신 강연자분들께 감사드린다.

글: 김민희


이번 강연에서는 야생 생명과 사람이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공존을 제안하며 대안책을 모색하고, 현실적인 제도의 문제성을 제기하는 등 행정적 변화의 촉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눴다. 생명존중 문화의 확산이 필요하며 환경부 지정의 ‘환경영향평가’의 재고와 ’유해동물 제도’의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김산하 생명다양성 재단 대표의 말이 인상 깊었다. “불편한 공존을 마주하기”란 제목으로 시작된 강연에 앞서 문화인류학과 김아람 작가의 다큐멘터리 <박멸의 공존>을 함께 시청하였다. 제작과정이 담긴 생생한 비하인드 스토리를 이야기를 들으며 뉴트리아 헌터(사냥꾼)와 김아람 작가의 긴장감 넘치는(?) 일상적인 대화와 뉴트리아를 포획-퇴치-제거하는 구체적인 과정이 담긴 영상을 보며 , 끝까지 보는 내내 쉽지만은 않았다. 옆에 앉은 이의 괴로운 표정이 마치 내 마음을 대변하듯이. 생태계 교란종으로 지정된 뉴트리아는 포획하고, 죽이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심지어 사체를 소각하고, 구청직원에게 포획한 것을 증명하면 頭당 2~3만원의 포상금이 나온다고 한다. 누가 그 생명을 죽일 권리를 부여했으며 생명의 가치가 돈 몇 푼으로 환산될 수 있을까? 뉴트리아 헌터는 용돈벌이로 이 일을 한다고 한다. 동물보호단체의 반발로 때려 죽이는 것은 하지 않으나 만만치 않은 안락사 비용은 꿈에도 못 꿔 포획한 뉴트리아를 굶겨서 죽이거나 얼려서 보관한다는 그의 담담한 말투에 영상을 보던 이들의 탄식도 현장에서 들려왔다.

“생명의 존엄은 어디로 갔을까? 우리사회에서 그 생명의 존엄은 왜 인간에게만 해당되는 걸까?”

영상을 보고 난 이후에도 많은 생각들이 스쳐갔다. 환경부와 지자체에서 ‘유해동물’을 선별, 지정하는 제도의 허점과 해외사례만 따르기 급급한 비논리적인 이유도 납득이 가지 않았다. ‘유해동물’로 선정 됨은 곧 ‘박멸의 대상’이 된다는 것.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터무니 없는 예산과 세금을 낭비하는 일들이 멈춰져야 할 것이다.

<위기의 도심동물들>이란 제목으로 동물뉴스를 취재한 이야기를 나눈 한국일보의 고은경 기자는 동물복지전문기자이다. 도시에서 마주칠 수 있는/ 마주 칠 법한 야생동물에 관한 이야기와 기사들을 나눴다. 8종의 개체를 강연에서 다뤘지만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비운의 동물’ 고라니 사례와 ‘억울한 너구리’의 기사였다. 너구리 기사를 사례로 들으며 우리가 야생동물에 대해 알게 모르게 생기는 편견이나 부정적 이미지가 미디어, 뉴스로 인해 생긴다는 점을 지적했다. 나 역시 이 기사를 몇 달 전 본 기억이 있다. 당시 인터넷 기사나 포탈 뉴스들은 “괴상한 동물”ㅡ“외계 생명체” 등의 자극적인 제목으로 이 기사를 배포했다. 조회수와 클릭수를 높이려는 셈으로 이 자극적인 타이틀을 갖다 퍼 나르기 했다. 인간으로 인해 파괴된 열악한 환경, 서식지로 인해 병든 너구리를 혐오의 대상인 것 마냥 악마화하고, 제거의 대상으로 모는 이런 사회의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시대가 반영하는 혐오와 폭력은 언제나 가장 약한 대상(종/개체)을 향하고 있다고 생각이 든다. 그 외에도 야생동물 중 인간에게 조금이라도 피해를 주면 그 종을 싸잡아서 유해하다고 ‘유해종, 유해동물’로 지정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고라니가 그 예이다. 한국에서는 유해야생동물로 지정이 되어있지만, 전세계적으론 멸종위기종이다. 비운의 동물 고라니가 먹는 밭의 농작물은 고작 2만원 어치다.

글: 나해민


나는 길거리에 지나가는 수많은 반려동물들을 예뻐하면서 고기가 전시된 정육점을 지나친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폭설과 먹을거리를 찾아헤맬 동물을 걱정하면서 한국인의 밥상에 나오는 멧돼지고기 손질장면을 지켜본다. 

이번 강연에서 알았다. 제거도 보호도 슬픔도 연민도, 지극한 인간중심에서 왔음을. 어렴풋이만 알고 제도라는 이름 아래 무심코 지나친 것들을 강연은 지적했다. 뉴트리아는 정말 교란종인가? 교란은 무엇인가? 교란되지 않은 상태란 무엇이며, 누군가 침입할 수 없고 새로이 정착하지 않는 그것은 자연이 맞는가? 그리고 반전은, 뉴트리아는 이미 우리나라에 정착하여 고요히 살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뉴트리아를 잡으라 하는 것은 제도뿐이다. 고라니는 정말 유해한가? 유해한 이유는 약 15,000원 어치의 피해 때문인가? 혹은 지나가는 차에 뛰어들기 때문인가? 여기서의 또 반전은, 고라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기준 멸종 위기 동물 취약 등급으로 지정되어있다는 점이다. 유해한 동시에 보호하는 고라니. 알아서 살아가고 있는 고라니를 이리저리 이름붙이는 것은 제도뿐이다. 

강연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낙인 찍는 인간의 모습을 말한다. 통제의 주체는 인간이다. 인간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제도로서 혐오를 씌운다. 퍼붓는 호우는 혐오하지 않으면서, 산 밑으로 내려온 고라니는 혐오한다.  쏟아져내린 폭설은 덤덤히 받아들이면서 지나가는 귀가 붉은 거북이는 받아들이지 못한다. 더 절대적인 피해 앞에 덤덤하고, 더 작은 피해만 보이는 이유는 돈으로 환산하기 쉽고,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함 때문이다. 

이 순간에도 붉은귀거북과 뉴트리아와 배스와 비둘기와 고라니는 그냥 살아가고 있다. 이게 무슨말이냐 하면, 보호니 공존이니 유해니 어쩌고저쩌고 하는 것은 결국 인간과 인간의 가치관 대결일 뿐이라는 것. 누군가에게 유해하지 않지만 누군가에게 유해하단 이유로 유해종이 된다는 것은, 결국 인간의 상호주관적이해관계의 문제인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기준이라는 표백상태에 있다. 인간이 기준이지 않은 것은 자연재해뿐이다. 강연에서는 자연에서 발생하는 돌발상황을 ‘굴절’하는 시선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하는데, 우리는 자연재해에는 ‘굴절’하면서 동물에는 ‘굴절’하지 않는다. 자연재해는 대자연이니까, 라는 이유로 인간의 표백이 아닌 자연의 관점에서 슬픔과 분노와 무질서를 굴절해 받아들인다. 그러나 누군가 동물에게 피해를 입으면 이는 자연재해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동물은  대자연이지만, 그럼에도 굴절하지 않는다. 동물을 자연으로 대하지 않고 통제가능한 개체로 대하기 때문이다. 

어떤 동물은 아끼면서 어떤 동물은 먹을 수 있다. 자연에선 그렇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보호해야 하고 어떤 동물은 유해하다고 제도화할 순 없다. 자연이니까 그렇다. 동물을 통제할 것이 아니라, 동물에 피해를 입는 누군가가 피해를 덜 보도록 인간의 주거를 기술적으로 도우는 접근이 되어야 한다. 

강연으로, 나의 궁금함은 풀림과 동시에 더욱 알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의 표백된 시선에서 시작된 문제이기에 인간의 시선과 가치관이라는 더 큰 의문으로 나아갔기 때문이다. 

나는 시골여행을 자주 간다. 고라니 울음소리는 꽤 익숙하고, 재빠른 고라니의 뒷다리도 낯설지 않다. 조만간 고라니를 또 맞닥뜨리면 마음속으로 인사해줄테다. 

“안녕! 차 조심하고 건강하렴!”

글: 박정원

▲강연 내용에 대해 질의응답을 진행 중이다. 왼쪽부터 배선영 활동가, 김아람 작가, 김산하 박사, 고은경 기자

‘동물권 너머, 자연의 권리’ 시리즈는 하나의 분명한 답을 제시하기보다는, 질문을 함께 붙잡고 오래 사유해 보기 위해 기획된 연속 강연 프로그램입니다. 동물과 자연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제에는 다수의 시민이 무리 없이 동의합니다. 하지만 막상 “무엇을, 어떻게, 어디까지 보호할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는 쉽게 합의에 이르지 못합니다. 어떤 동물은 보호의 대상이 되고, 어떤 동물은 관리나 제거의 대상이 되는 현실은 그 사실 자체로 불편함을 남깁니다. 이 시리즈는 바로 그 불편함에서 출발했습니다.

이 기획은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려는 이론적 흐름을 붙잡는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포스트 휴머니즘이나 행위자-연결망 이론(ANT)은 기존의 환경 보전 관점, 즉 인간이 자연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과 함께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로 자연을 바라보도록 요청합니다. 생태주의가 인간의 책임과 윤리를 강조해 왔다면, 이러한 이론들은 인간 중심적 사고 자체에 질문을 던지며 비인간 존재를 공존의 주체로 다시 위치시킵니다. 이 관점은 동물과 자연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을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관계의 문제로 다시 보게 만듭니다.

녹색연합은 이러한 사유를 공유하고, 함께 공부해 보고자 강연을 열어 시민을 초대했습니다. 강연은 지식을 전달하는 형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서로 다른 경험과 감각이 만나는 공론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자연의 권리’라는 다소 낯선 개념을 시민의 언어로 풀어내고, 인간과 자연을 가르는 익숙한 기준을 잠시 멈춰 세우는 자리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2024년 진행한 〈동물권, 동물법 – 공존이 가능한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법〉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본격적으로 다룬 첫 번째 시도였습니다. 동물의 법적 지위를 살펴본 강연에서는 동물이 여전히 물건과 유사한 위치에 놓여 있다는 현실이 드러났고, 동물권 소송과 입법 사례를 통해 보호의 언어와 실제 제도 사이의 간극이 분명히 확인되었습니다. 인류학적 강연들은 인간과 동물을 구분해 온 근대적 사고방식 자체가 환경 문제와 갈등을 반복적으로 만들어 왔다는 점을 짚으며, ‘공존’이라는 말이 단순한 윤리적 수사가 아님을 강조했습니다.

2025년에는 이러한 논의를 보다 구체적인 현장으로 확장했습니다. 사육곰과 반달가슴곰을 둘러싼 강연은 “왜 어떤 곰은 먹고, 어떤 곰은 보호하는가”라는 질문을 통해 생명의 가치가 제도 속에서 어떻게 다르게 평가되는지를 드러냈습니다. 이어진 〈경계를 넘는 동물들 ― 보호와 제거 사이〉 강연에서는 뉴트리아, 고라니, 너구리, 비둘기, 멧돼지 등 인간의 기준에서 ‘문제적’이라 불리는 동물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생태계 교란종이거나 유해야생동물로 호명되지만, 강연이 진행될수록 이러한 이름 붙이기가 얼마나 지극히 인간 중심적인지에 대해 강연장에는 탄식이 이어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분명해진 것은 동물 자체보다 인간 사회의 경계 설정이 문제의 핵심이라는 점이었습니다. 도시의 확장, 농경지의 변화, 제도의 편의성은 동물을 자의든 타의든 ‘경계를 넘은 존재’로 만들고, 그 결과 보호와 제거라는 극단적인 선택지만을 남깁니다. 이는 자연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사회의 선택과 책임의 문제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했습니다.

강연 이후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서는 반복적인 질문이 등장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현실적인 대안은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연사들은 거대한 해결책보다 ‘응답의 태도’를 제안했습니다. 비인간 존재를 일방적으로 보호하거나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인간 사회에 보내는 신호에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묻는 태도입니다. 이는 제도와 정책, 그리고 시민의 감각이 함께 변화해야 가능한 접근임을 시사합니다.

‘동물권 너머, 자연의 권리’ 시리즈는 동물을 비롯한 자연의 권리를 이야기하면서, 동시에 인간 사회의 정치와 책임을 되묻는 자리였습니다. 자연을 보호의 대상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존재로 상상할 수 있는 언어와 감각을 시민과 나누는 것이 이 기획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습니다. 명확한 결론을 남기기보다,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질문을 이어갈 수 있는 씨앗을 남기고자 했는데, 지금쯤 작은 잎들이 피어났을까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새롭게 사유하는 일은 단번에 완성될 수 없지만, 질문을 멈추지 않는 과정 자체가 변화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이 시리즈는 그 긴 질문의 여정을 함께 시작한 기록입니다.

언제나처럼 여러 사람의 참여로 함께 만들어졌습니다.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최명애 교수, 〈박멸의 공존〉의 김아람 작가, 한국일보 고은경 기자, 생명다양성재단 김산하 대표를 비롯해 ‘동물권’을 넘어 ‘자연의 권리’에 관심을 가지고 질문의 여정을 함께 걸어주신 575명의 시민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문의: 홍보팀장 배선영 (bsy@greenkore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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