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의 삶 읽기 – 오쿠다 히데오 소설

2011.10.28 | 행사/교육/공지

왜 일본인의 삶이야기를 쓰려했는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2005년 야쿠시마를 갔습니다. 그곳에서 정말 우리나라 시골 어디서든 만날 수 있는 촌로와 순박한 젊은 새댁을 만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때 세계자연유산이라는 이곳 야쿠시마가 그들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그들에게 일본이 저지른 제국주의 침략은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라는 의문이 떠올랐습니다. 우리보다 선진국이기에 많은 것을 따라해 오던 우리의 삶에 일본의 시스템이 아닌 일본인의 삶은 어떻게 다가왔는지, 망언을 일삼는 일본 정치인들이 아닌 일본 민초들의 삶은 어떠한지를 볼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건 아마 그때였던 듯합니다. 일본 민초들의 삶을 다룬 더 나은 소설도 있겠지만, 제가 읽었던 책이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이니 오늘은 이것으로 만족하시고, 혹 더 나은 책을 아시 분은 제게 문자나 메일을 주시면 꼭 읽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올림픽의 몸값」을 봅시다. 형의 죽음을 통해 건설일용직의 삶을 살게 된 주인공 구니오는 못 배운 이들이 처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깨닫습니다. 구니오가 1964년 동경올림픽을 상대로 벌인 사건은 신문에 한 줄도 실리지 않는 해프닝으로 끝났으나, 저자가 구니오의 입을 빌려 이야기한 다음 구절은 일본과 한국, 아닌 전 세계 민초들의 삶이 어떠한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목숨이란 얼마나 값싼 것인가. 지배층이 민중을 바라보는 시선은, 19년 전에 본토 결전을 상정하고, ‘1억 국민이 모두 불꽃으로 타오르자’라고 몰아치던 시절 그대로,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민중은 한낱 장기 말로만 취급되고,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희생물에 지나지 않는다. 옛날에는 그게 전쟁이었고, 이제는 경제발전이다. 도쿄 올림픽은 그 헛된 구호를 위해 높이 쳐든 깃발이었다.”

「최악」이란 소설 속 주인공의 현실도 한국과 일본의 소시민들의 삶이 별반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소설 속 주인공 중 한명인 가와타니 신지로 사장은 하청의 하청의 하청을 받아 공장을 운영합니다. 납품업체에서 단가를 후려치고, 터무니없는 요구를 해오는 것에 맞서 싸우기보다, 그냥 감내하고 살아가는 모습이 바로 현실 속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어째서 늘 일이 이렇게 꼬이는가. 조금이라도 좋은 일이 생기면 그보다 몇 곱절 나쁜 일이 덮쳐들었다. 마치 인간의 운명을 갖고 놀듯이 어딘가에서 악마가 킬킬거리고 있었다.”
 
라며 신세를 한탄하고  주인공의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습니다. 그럼에도 소설은 노인의 말을 빌려 “안 좋은 일이 있다는 건 인생의 중심에 서 있다는 증거”라고 이야기하며, 암담하지만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건조한 시각으로 그려냅니다. 
때때로 최악의 상황에 몰리지만 그래도 그 최악의 상황을 견뎌내면 또 그런대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발견하는 것. 삶이란 그런 것이라고 소설은 이야기합니다. 우리나라 몇몇 위정자들이 그렇게 비교하는 일본 소시민의 삶이 사실상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아니 곧 닥쳐올 우리의 모습임을 소설은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남쪽으로 튀어」의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함께 살아가야할 삶의 모습을 나누면 글을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지로, 이 세상에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서서히 변화하는 것들이 있어. 노예제도나 공민권운동 같은 게 그렇지. 평등은 어느 선량한 권력자가 어느 날 아침에 거저 내준 것이 아니야. 민중이 한 발 한 발 나아가며 어렵사리 쟁취해낸 것이지. 누군가가 나서서 싸우지 않는 한, 사회는 변하지 않아.”
“지로, 전에도 말했지만 아버지를 따라하지 마라. 하지만 제 이익으로만 살아가는 그런 사람은 되지 마. 이건 아니다 싶을 때는 철저히 싸워. 져도 좋으니까 싸워. 남하고 달라도 괜찮아.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

글 윤기돈 / 녹색연합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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