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차 없는날] 낮아야 탄다, 시골할매들을 위해 저상버스를!!

2013.09.09 | 행사/교육/공지

어린 시절, 장날이면 유일한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를 타고 장구경을 가곤 했다. 읍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았지만, 동네 마다 구석구석 들리는 시골 버스를 타고 장에 가려면 꽤 많은 정거장을 가다 서다 반복했다. 장날 버스 승객 대부분은 장에 나가 물건을 팔 동네 할매들이었다.

멀리 버스가 오는 게 보이면 할매는 머리에 동그랗게 똬리를 튼 수건을 먼저 올리고 그 위에 보따리를 올린다. 버스가 멈추면 계단에 한발을 올려놓고 한 손을 무릎팍에 눌러 받쳐 힘껏 계단 한 칸을 오른다. 이제 한 손으로는 문 손잡이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머리에 인 보따리가 안떨어지게 붙잡고 남은 계단을 올라야 한다. 마지막 계단까지 오르고 나면 우선 자리부터 확보한다. 짐을 의자 안쪽에 안전하게 내려 놓고 나서야 몸뻬 주머니를 뒤져 차비를 낼 짬이 생긴다. 버스는 할매가 앉기도 전에 ‘부웅’ 출발해버리고, 할매 몸이 크게 흔들린다. 좌석에 붙어 있는 손잡이를 꽉 잡고서야 버스 요금함에 무사히 차비를 넣을 수 있다. 휴~

그 다음 정류장이다. 빨간 고무 다라이(대야, 생생한 현장감을 위해 ‘다라이’라고 표기한다.) 안에 조개가 한 가득 들어 있는데다, 그 위에 크고 작은 바구니가 더 포개져 있다. 족히 10킬로그램은 되어 보이는 다라이는 크기도 상당해서, 앞문으로는 탈 수조차 없다. 뒷문으로 작은 짐부터 던져 올리자, 조개장수 할매를 알아본 동네 아짐이 얼른 손을 보탠다. 할매가 오르자 마자 버스는 서둘러 출발한다. 끙. 정류장마다 어김없이 할매들이 자기 몸집보다 훨씬 크고, 많은 짐을 이고 지고, 버스에 오른다. 허리 굽은 할매 혼자 그 짐을 들고 버스를 타는 것은 애당초 힘든 일이다. 서로 서로 조금씩 힘을 보태야 높은 계단, 성질 급한 버스에 무사히 오를 수 있다. 어린 시절, 장날 시골버스는 다 그런가, 버스는 다 높은가 하고 생각 했다.

그러다 어른이 되어 유럽여행을 갔을 때 만난 버스는 문화 충격이었다. 지금은 서울 곳곳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저상버스를 그 때 처음 보았다. 정류장에는 유모차에 아기를 태운 젊은 엄마가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서자마자 공기가 ‘피~익’ 빠지는 소리가 들리고, 버스 차체가 타는 곳 쪽으로 기우는 것이었다! 몇 초가 흘렀을까. 버스 앞문이 열리는데, 버스의 발판은 어느새 보도 블럭의 높이와 거의 비슷한 높이에 맞춰져 있었다. 아이엄마는 유모차를 앞바퀴를 살짝 들고 밀면서 아주 쉽고 편하게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도 유모차나 자전거 등을 이용하는 승객을 위한 공간이 확보된 상태여서 애기엄마는 여유 있게 자리잡을 수 있었다. 모든 승객이 자리에 앉은 걸 확인한 버스기사는 한쪽으로 기울어진 버스를 조절해서 수평을 맞추고 서서히 출발했다.

요즘에는 장날 조개 다라이를 머리에 인 할매가 아니라 산나물을 이고 진 할매들이 힘겹게 버스에 오르는 광경을 가끔 본다. 선택할 수 있는 대중교통이 버스뿐인 시골에는 아직도 높은 계단의 구형 버스가 많다. 시골 할매들을 위해 높이가 조절되는 저상버스를 도입하고, 바퀴 달린 수레를 보급한다면, 시골장마다 현대화한다며 지붕 설치하고 새 건물 만들며 돈 들이는 것보다 더 가치 있게 지방의 5일장을 좀 더 활성화 할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본다. 훗!

글 / 최연율 회원

최연율님은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는 녹색연합 새내기 회원입니다. 또 깨소금 냄새를 의도적으로 솔~솔~ 풍기는 새신랑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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