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이란 무엇인가? 인권은 말 그대로 ‘인간의 권리’를 뜻한다. 인권은 한 역사적 배경, 국가적,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정의되어 왔다. 또한 인권 개념에 대한 비판은 여러 진영으로부터 많이 제기되었다. 이 중 가장 강력하고 근본적인 인권 비판은 생태주의로부터의 비판이다.
인간을 중심으로 한 권리, 즉 휴머니즘이야말로 인간이 아닌 생명체는 물론이고, 인간의 생존조차 위협하는 하나의 위협요인이 되었다. 인간과 비인간의 상호작용에 근거한 인권 개념의 창출을 정정훈(수유너머 N연구원) 강사님과 함께 스피노자의 철학으로부터 알아보았다.
스피노자는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은 신이 자신의 역량을 표현하는 특수한 방식이라고 말한다. 신은 인격성을 지닌 것이 아니라, 모든 구체적 존재자들을 산출해내는 자연, 그리고 실체와 정확히 동일한 존재이다. 신은 자신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어떤 모드, 즉 양태를 취한다. 양태는 다른 맥락에서 개체라고도 표현되며, 하위의 단일한 것은 복합체를 조성함으로써 상위의 개체가 되는 개체화를 겪는다.
스피노자에 의하면, 하나의 개체는 반드시 다른 개체와의 관계를 전제로 해서만 성립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미 하나의 실재로 존립하고 있는 개체는 자신의 실존과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서 자기 외부의 다른 개체들, 즉 타자를 항상 필요로 한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양태 또한 개체화의 원리로부터 벗어나는 특권적 존재가 아니며, 다른 개체와의 의존관계를 통해서만 실존하고 활동할 수 있는 관개체성을 지닌다. 관개체성이라는 개념은 개체들은 서로 분명히 구별되고 환원될 수 없는 존재자들이지만 그 개체들이 실존하고 활동하기 위해서는 항상 다른 개체들과의 관계를 전제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모든 자연물은 선천적으로 그것이 실존하고 활동하도록 하는 역량의 크기만큼,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스피노자는 역량과 권리를 동일시하면서 그 권리를 자연권이라 부른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자연권이란 오로지 개인들의 연합 속에서만 실재할 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연합은 “모두 함께 더 많은 권리”를 확보하도록 하는 필수적 조건이다.
이러한 연합체의 구성은 역량의 증대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다시 말해, 연합체란 서로 복수의 개체들이 서로 합치될 수 있는 공동의 관계성을 형성할 수 있을 때 가능하며, 이와 같은 공동의 관계성 속에서 각 개인은 자신의 자연권을 실제적으로 확보하고 실행할 수 있게 된다.
스피노자의 사유로부터 우리는 인간이 여타의 양태에 비해 더 우월한 가치를 지닌 양태가 아니라는 강력한 인간주의 비판을 읽을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권리를 긍정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스피노자는 우리가 이성을 사용할 때 인간의 특권이라는 상상으로부터 벗어나 세계를 올바른 질서에 따라 인식할 수 있다고 말하며, 그와 같은 인식에 따라 살아가는 삶의 원리를 윤리학(Ethica)라고 부른다.
인간의 인식은 인간으로 규정된 조건들에 의해 제한될 수밖에 없으나, 윤리적 삶을 자연의 필연적 질서를 인식하고 그에 따라 살아갈 때 인간의 역량은 증대하며 그 권리 역시 확장된다. 자유란 이와 같은 역량의 증대와 결부되어 있으며 역량의 증대는 자연의 필연적 질서를 따를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정리하면, 인권은 인간 양태의 한계 내에서 인간의 권리로서, 다른 양태들에 비해 우월한 특권적 본질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는 인식을 전제한다. 모든 다른 양태가 그러하듯 인간 역시 자기보존을 위해서 세계의 존재자들을 때로는 해체하고 변형하며 이용할 수 있는 역량만큼의 권리를 갖지만, 그것이 자기 보존 조건을 파괴할 권리까지 갖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우리는 개인주의와 인간주의로부터 벗어난 인권의 개념을 모색하기 위해 스피노자의 철학을 알아보았다. 그 결과 인권을 관개인적 권리와 인간-양태의 권리로 다시 규정하였고, 이러한 두 가지 인권 개념은 ‘역량만큼의 권리’ 혹은 ‘역량과 권리의 동일성’이라는 관점에 의해 관통되고 있다. 인권이 관개인적 권리라는 의미는 한 개인이 다른 개인과 더불어 연합의 관계를 능동적으로 구축할 수 있을 때만 비로소 인권이 실효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인권이 인간-양태의 권리라는 의미는 자연을 무참히 파괴해가는 개발주의와, 인간의 이익을 곧바로 경제적 이윤으로 협소하게 규정함으로써 자본의 이윤을 위해 뭇 생명들의 생존조건을 처참하게 파괴하는 자본주의와 결부된 휴머니즘에 대한 비판이 될 것이다. 아메리칸 인디언, 아프리카의 부족민 등 비서구적 문화권은 자기 존재 조건에 필요한 최소치만 필요로 하였다. 그들이야 말로 다른 존재, 즉 양태에 대한 고마움을 알고 다른 존재의 인권까지 존중하며 윤리학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아닐까.
글 : 김영채(녹색인문학 장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