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임병암 회원을 사람 좋은 임병암으로 인식한다.
여느 사람처럼 예의 차려가며, 말투, 표정 신경써가며 대해야할 사람이었다면 쉬이 피곤함을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허례의식 없이도 언제나 편하게 다가오고, 다가갈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다. 그렇기에 나는 그를 단순한 회원이 아닌 친구로 이해한다.
녹색연합 사무실에서는 그를 살아있는 바위라고 부른다. 이름에 ‘암’자가 들어가기도 하지만.. 외모나, 행동하는 것이나 뭐랄까 정말 바위같은 느낌이다. 그가 필요할때면 언제나 그렇듯이, 나는 그에게 전화를 건다. 언제까지 녹색연합으로 와달라는 말에 그는 별다른 말도 묻지 않고 흔쾌히 OK한다.
넉넉한 웃음의 임병암 회원 (오른쪽) ⓒ녹색친구들
내가 그를 부른 이유는 사실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서이다.
오래도록 우리 곁을 친구이자 동료로 지켜온 그이지만, 문득 돌이켜보니 그에 대해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일단 그의 나이를 모른다. 가볍게 물을 수도 있었지만, 지금껏 그럴 필요를 못 느꼈다. 직업도 모른다. 정확히 출신이 어딘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 대한 그런 배경지식이 없어도, 우리의 관계는 지금껏 잘 유지되어왔다. 하지만 이번 기회를 통해서 우리 곁을 지켜준 이 사람에 대해 더 잘 알아보고 싶어 인터뷰를 기획해 보았다.
그와 약속을 잡은 오늘, 그에게 전화를 걸어 어딘지 확인을 하니 벌써 사무실 근처라고 한다. 사무실에 도착한 그는 모든 사람에게 안녕을 외치며 다닌다. 이미 익숙해져버린 그의 인사라 특별한 감흥을 주진 못하지만, 각자 일에 몰두하느라 침체되어있던 사무실의 분위기를 단번에 뒤집기에는 충분하다.
“오늘은 왜 불렀어. 뭐 하면 되냐?”
“조금만 기다려 봐요.”
하고 있던 일을 손에서 놓지 못한 내게
그는 배낭을 주섬거리더니 큼지막한 박스를 꺼내어 내민다.
“뭐에요?”
‘열어봐”
박스 안에는 빵이 들어있다. 유명체인빵집의 것이 아닌 임병암 회원의 동네 빵집에서 구운 벽돌장만한 소보루와 밤식빵 두 덩이가 박스 안에 꽉 들어차 있다. 회원 임병암은 이런 사람이다.
그의 고향이 전라도라는 것이 얼핏 기억나서,
준비해 간 철맞은 굴과 매생이로 국을 끓여 녹색연합 식구들과 그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올해 들어 처음 먹는 매생이 국을 여기서 먹네.”
큰 대접에 밥을 가득 말아드시고는
“맛있다. 잘 먹었어!” 라고 만족스러운 웃음을 짓는다.
점심시간 동안 수다가 이어지다 각자 자리로 돌아가 일을 시작한다. 그는 누가 특별히 부탁하지 않는데도, 자연스레 빈자리를 찾아 작고 소소하여 우리가 요청하기도 미안한 일들을 찾아서 해주신다. 임병암 회원이 틈틈이 도와주는 일들은 특별히 대단한 일은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하고 싶어하는 일도 아니다. 그는 이렇게 우리의 빈자리를 메우며, 함께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한가족이 되어왔다.
임병암 회원과 녹색연합과의 관계는 1999년 7월 즈음부터였다고 한다.
교회 간사로 일하면서 자연의 의미를 연구하고 있었는데, 자료를 찾다보니 녹색연합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그렇게 자료를 구하기 위해 처음 발걸음을 했다고 한다. 이후 연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 첫 발걸음을 시작으로 그는 녹색연합의 일부가 되었다. 그는 지금 일하는 활동가들이 이곳 녹색연합에 오래 머물며 활동하길 바란다고 한다. “계속 바뀌면 친해지기 귀찮잖아”라고 이유를 대는데, 사실 원체 정이 많은 사람이라 정든사람들과 오래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대한민국 여기 저기 많이 다닌 사람으로서 그가 추천하는 인상적인 장소는 ‘지리산 선비샘’이다. 샘에서 흐르는 물소리와 품에 다 품을 수도 없는 총총한 별들이 어우러져 너무 아늑하고 신비로왔다고 한다. 인터뷰는 계속되었지만, 그것을 시시콜콜 여기에 적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와 녹색연합과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서 말했듯이 그에 대한 정보보다는 그의 행동을 살펴보는 것이 바른 접근법일 것이다. 꾸밈이 없고, 뭘 하든 자연스러운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문득 ‘큰바위얼굴’이라는 소설이 떠올랐다. 세속적인 가치나 배경에 주목하지 않고, 묵묵히 큰바위얼굴을 그리며 그에 어울리는 삶을 살아온 어니스트처럼, 임병암 회원이 내게는 큰바위얼굴 같았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길 바라며 행동하고 말하고, 그런 노력들이 빨리 효과를 내지 못하면 조급해한다. 하지만 진정 누군가에게 특별한 사람들은 꾸준히, 묵묵하게, 그리고 천천히 눈에 띄지 않게 그 자리를 지키며 특별한 존재가 되어간다.
글 : 회원더하기 이용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