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성찰 과제(1)

2014.05.21 | 행사/교육/공지

세월호 참극의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안타까운 죽음으로만 기억하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리 사회의 무엇을 바꿔낼 것인가? 손에 잡히는 변화는 어디까지 가능할 것인가? 

몇몇 제도의 변화가 아닌 우리나라 운영 시스템의 근본 토대를 흔드는 것까지 나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이러한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가장 먼저 울림으로 다가왔던 것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었다.

“한국민들이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윤리적·영적으로 새롭게 태어나기 바란다.”라는.

 

단순한 사고가 아닌, 잘못된 관행과 돈만을 좇아온 탐욕이 만든 비극.

제왕적 대통령이 결단하고 결정한다고 해서 풀 수 없는 문제, 그래서 대통령만 내쫓는다고 풀 수 없는 문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성찰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직접 행동이 필요하다.

 

○ 정부와 재계의 결탁, 이윤만 쫓는 사회

 

   4월 15일 오후 6시 30분 출발이던 배들은 안개때문에 출발하지 못했다. 모든 배들이 운항을 취소했을 때, 세월호만 출발했다. 세월호는 첫 운항을 한 이후 거의 한번도 결항하지 않았다. 운이 좋았던 것일까? 아니면 한번 결항할 때마다 생기는 손해를 막기 위해 무리한 출항을 강행한 것일까?

 

   세월호는 규제 완화의 결과물로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던 배다. 배의 수명을 20년에서 25년으로 연장한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시 30년으로 연장하면서, 18년이나 된 배를 12년 동안 운영할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들여온 배다. 그런데 배의 수명만 연장해 준 것이 아니다. 무리한 증축도 눈 감아주었고, 매번 과적을 해도 눈을 감아주었다. 세월호는 987톤까지 짐을 실을 수 있는데, 사고가 발생했던 날, 무려 3배가 넘는 3,600톤을 실었다. 이러한 과적으로 1회 운항때마다 4,000만원의 이윤이 더 확보되었다. 과적된 만큼 평형수를 빼냈기때문에, 배가 심하게 흔들리면 이를 바로 잡기 어려워 침몰할 가능성이 훨씬 커졌다. 무리하게 실린 화물을 단단하게 고정하였는지 점검하는 것, 배가 안전한지, 만약에 상황에 대비한 비상시 대응방안은 잘 훈련되었는지를 점검하는 것도 요식행위에 그쳤다. 세월호는 사고가 발생하기 불과 2달도 안 된 시점에서 점검을 받았으나 모든 항목에서 양호의 평가를 받은것이다. 설마 무슨 일이야 있겠어라는 안이한 생각이, 내가 알지 못하는 승객들의 안전보다 내가 알고지내는 사업자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 정부의 허술한 안전 점검이 이러한 일들을 반복하게 만들었다. 여기에는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평생을 살아온 판사나 검사, 공무원 등이 직위의 높고낮음과 상관없이그 직을 관두면서 너무나 자연스레 자기가 감독해오던 기업이나 변호사사무실 등에 취직하는 관례가 단단히 한몫을 했다.

 

  우리 사회에 너무나 퍼져있어 으레 그려러니 하던 생각들을, 세월호 참사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의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하나 하나 깨나가야 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그 첫 질문에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단 한 사람도 구해내지 못하는 정부를 보면서, 도대체 왜 국가가 존재하는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의 힘 앞에 미약한 인간으로는 도저히 어쩔 수 없었던 일이 아니라는 것이 하나 하나 밝혀지면서, 그 질문은 위력을 더해갔다.

 

  관련하여 르몽드의 지적(뉴스프로 : 르몽드, 세월호 참사 행정부와 관리능력의 침몰)을 우리는 부끄럽지만 곱씹어야 한다. "또한 이번 일은 국가와 국가 경제의 운영에 대한 광범위한 의문을 불러 일으켰다. 경쟁에만 사로잡혀 속도에 의해 세워진 것은 오늘날 성공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어떤 의미에서는 인간적인 삶을 무시해버린 것으로도 보인다. 세월호 침몰이 남긴 것은 수백명의 사망자와 수백만의 슬픔에 찬 이들 뿐이 아니다. 이번 사고로 이 나라가 가진 무절제함이 온 천하에 드러나고 말았다."라는 그들의 지적에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사회가 아니라고 확신에 찬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 아니라면 적어도 다음 세대가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

 

  다음은  언제까지 돈만 된다면 모든 것을 눈감아 주는 사회로 남을 것이냐의 질문이다. 사실 그 돈이라는 것도 우리 모두의 돈이 아니다. 가진 자들의 배만 더 불리는 돈인 것이다. 그 돈의 떡고물이 혹 내게 떨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이 아니 나의 탐욕이, 내 눈을 멀게 한 것이다. 이를 우리는 세월호 참극을 통해 깨뜨릴 수 있을까?

 

  일제의 침략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이겨내며, 우리는 한강의 기적을 만들었다. 그 기적을 박정희가 뚝딱 만든 것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땀들이 모여 만든 기적이었다. 그 기적을 이루기 위해 민초들이 흘린 땀은 성장을 위한 투자라는 이름으로 저당잡혔다. 아니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들이 기꺼이 나의 땀방울을 더불어 잘 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투자한 것일 수 있다. 멀리는 임진왜란 때 의병들에서, 민주화를 위해 거리로 나섰던 시민들에 이르기까지, IMF를 극복하기 위해 기꺼이 금을 내놓았던 시민들에서 서해안 기름유출 사고 때 몰려든 자원봉사자들에 이르기까지, 무슨 일만 생기면 서로를 위해 나섰던 민초들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적이 이뤄진 순간, 그들이 기꺼이 내놓은 땀의 가치를 온전히 자신들이 누릴 수 있도록 해야 했다. 그러나 권력자는 이미 부를 축적한 재벌들은 서로가 결탁하며, 여전히 파이를 키우기 위해 너의 땀이 더 필요하다는 논리를 폈다. 마치 우리 각자가 우리가 흘린 땀의 가치를 온전히 챙기면 이 사회가 무너질 것처럼 그들은 말한다.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기득권이 위협받을 때, 들고나오는 경제위기 논리는 아직도 이 사회의 지배 담론이다. 기적을 만들기 위한 민초들의 자발적 열정은 잊혀지고, 우리는 기득권이 만든 논리에 세뇌당한 것이다. 그래서 박근혜대통령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신을 만나러 온 세월호참사의 희생자 유가족들이 청운동 앞 거리에서 밤세워 추위에 떨며 기다리고 있을 때, 청와대 세종실에서 긴급민생대책회의를 진행하면서 ‘“경제에 있어서 뭐니뭐니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심리가 아니겠느냐”며 “심리가 안정돼야 비로소 경제가 살아날 수가 있다”고 소비심리론을 펼 수 있었고, “사회불안이나 분열을 야기시키는 일들은 국민경제에 전혀 도움이 안 될 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우리 경제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며 “또 그 고통은 국민들에게 돌아오게 된다”고 비난할 수 있었던 것이다(미디어오늘 박근혜 유족 문밖에 앉혀두고 “세월호 때문에 소비심리 위축).

 

  슬픔과 비통함도 너희 국민들에겐 사치고, 너희는 그저 먹고 살 걱정만하고, 그걸 위해 다른 모든 것은 눈감고 오로지 일만하라는 말로 들릴 이야기를 정말 거림낌없이 내던진 것에는 경제성장의 떡고물을 바라는 우리의 탐욕이 있다. 땀의 가치를 나누기보다,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경제를 살린다는 이름으로 누군가가 흘린 땀의 가치를 빼앗는 것을 용인하는 사회를 우리가 만든 것이다.        

 

  우리가 한 걸음에 이 모든 것을 다 바로 잡을 수 없다면, 최소한 블룸버그가 지적한 것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뉴스프로 : 블룸버그 한국 여객선 참사의 재발을 막으려면). 블룸버그는 사설을 통해 세월호의 참극이 인면수심의 선장과 선원, 청해진 해운과 무능하고 무책임한 해경과 정부가 만들어낸 결과라면, 세월호 침몰의 원인은 우리 사회의 오래된 병폐인 행정권력과 산업계의 유착관계라고 지적하며, '이 참사에서 한국인들이 뭐라도 배웠는가에 대한 시험은 이 일로 인해 마침내, 선박을 포함한 산업계와 한국 정부를 거미줄처럼 얽힌 영향력으로 오랫동안 함께 묶어온, 대중 안전을 훼손하는 유착관계를 잘라버릴 수 있을지가 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격분한 한국인들은 국민 안전을 향상시키겠다는 말뿐인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 그리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그들의 충고를 우리 사회가 받아들여야 한다. 아니 그 충고가 현실이 되도록 하는 책임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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