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보낸 하루
1.
언제나 뻗치는 에너지를 주체하지 못하는 조카와 공을 차고 뛰어 놀다 땀범벅이 되어 집에 돌아온다. 그대로 화장실로 직행, 옷을 벗어던지고 샤워기를 튼다. 적당히 따뜻한 물줄기가 몸을 따라 흐르며 땀을 씻어준다. 이 맛에 땀 흘리지, 하며 한껏 행복해지다 느껴지는 익숙한 기분. 흘린 땀을 보충한다며 벌컥벌컥 마셔대던 물이 몸 밖으로 나가겠다며 아우성친다. 순간, 고민한다. 어쩌지. 샤워를 잠시 중단하고 변기뚜껑을 열어 내 몸을 해방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에라 모르겠다. 서서 소변을 본다. 몸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기다렸다는 듯 배가 고프다. 돈가스라면 사족을 못 쓰는 조카와 함께 집 앞 식당을 찾는다. 바삭하게 튀겨진 돈가스를 먹으며 그새 행복해진 나는 미운 여섯 살 조카의 얼굴을 보며 즐겁게 웃는다. 조카는 또래보다 덩치가 크다. 그만큼 참 많이도 먹는다. 어른 식성을 능가할 정도다. 고모 다 먹었어? 내 대답은 듣지도 않고 돈가스에 포크를 꽂는 녀석. 그래 많이 먹고 쑥쑥 커라.
2.
친구가 집 계약이 끝나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짐 정리가 힘들다, 며 우리를 부른다. 만만한 게 우리지, 토요일 느지막이 일어나 친구 집으로 간다. 친구 집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이 여자 혼자 산다고 또 물 안 내렸어. 에라, 하고 그 위에 볼일을 더한 후 물을 내려 한 번에 흘러 보낸다. 손을 닦고 나오며 허벅지에 쓱쓱. 이사를 앞둔 친구의 방은 전쟁터다. 읽지도 않을 거면서 사 모은 책이며, 전 애인이 줬는데 버리지도 못하고 쓰지도 못하는 가방이며, 살 빼면 입겠다며 사놓고 다리 한 번 넣어보지 못한 청바지며, 버릴 수도 없으면서 쓸 데도 없는 것투성이다. 오호, 이 옷은 내가 입는 게 낫지 않나? 하며 이 것 저것 챙겨서 달라고 조른다. 너네 나 도와주러 온 거냐 물건 뺏으러 온 거냐? 가져가는 게 도와주는 거지, 이삿짐은 없을수록 좋아. 오랜만에 펼쳐진 수다 한판도 즐겁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두 손 가득 챙긴 옷은 더 즐겁다.
혹시 내 몸에 친환경 패치가?
무심코 보낸 지극히 평범하고 즐거운 하루. 그런데 나의 하루가 지구를 살리는 하루였다면? 그거야 말로 엄청난 이득.
1. 샤워 하며 소변보기, 소변 모아 물 내리기?
변기를 내릴 때 사용하는 물은 평균 4리터 정도다. 소변 양을 생각한다면 엄청난 수치다. 소변의 독소가 인체에 해를 끼친다는 의견도 있지만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이 소변을 바로 씻어 피부 등 인체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바로 물에 씻겨 하수구로 들어가니 당연히 화장실 위생에도 문제가 없는 지구를 살리는 행동이다. 브라질에서는 ‘한 가구당 화장실 이용을 하루에 한 번만 줄여도 매년 물 4380L를 절약할 수 있다’며 샤워 중 소변보기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2. 먹부림이 살리는 지구?
세상에나, 우리나라에 한 해 동안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가 1만2천 톤을 상회하고, 이를 처리하는 비용은 연간 1조 원가량이다. 다이어트가 다 무어냐 마음이 예뻐야지 하고 열심히 먹었을 뿐인데 결국 지구를 위하는 일이었다. 체중계도 웃고 지구도 웃고 나도 웃는다.
3. 응답하라 1998?
ⓒ동아일보
무려 20년 전에 등장한 아나바다 운동을 기억하는지. 1998년 당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바꿔 쓰고, 다시 쓰자.’며 유행했던 운동이다. 싸게 사서 한 철 입고 버리는 것이 유행인 지금에 와서는 그저 촌스러운 옛날 말로 들릴 뿐이다. 그런데, 친구 옷을 챙겨 와서 내가 입는 행동이 바로 아나바다라면? 돈을 아낀 것 뿐 아니라 지구를 살리는 행동이었다면? 우리가 일상적으로 입는 청바지 하나를 만드는 데도 약 1500L의 물이 사용된다. 이 뿐 아니라 염색폐수로 이한 환경오염도 무시 못 한다. (참조 : EBS하나뿐인 지구 ‘패스트패션이 말해주지 않는 것들‘ 2014 中)
4월 22일 지구의 날, 선언문을 발표하다.
사진/지구의날 첫 행사
1970년 4월 22일. 미국에서 열린 제1회 지구의날 행사에는 2천만명이 넘는 참가자가 함께 모여 지구의날을 기념했다.
ⓒ녹색연합 | 녹색연합도 매년 지구의 날을 기념한다. 2000년 지구의 날에는 새만금을 주제로 지구의날 행사에 참여했다.
1969년 1월 캘리포니아 인근 해변에서 원유 시추 작업을 하던 중 사고가 발생했다. 그 사고로 원유 10만 배럴이 유출되었고 엄청난 규모의 바다를 오염시켰다. 이를 계기로 1970년 4월 22일 지구의 날이 제정되었고 현재 전 세계적 캠페인으로 발전했다. 1970년에 작성된 지구의 날 선언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이제 우리는 이 파괴된 환경 속에서 우리의 후손들을 그대로 방치해 놓고 우리 자신 성장의 과실을 따먹는 데만 급급할 것인가 아니면 후손들이 자자손손 번영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안전하고 안락한 지구를 가꾸어 가기 위하여 지금 우리의 소비를 부분적으로 포기할 것인가를 결정할 중대한 시점에 와 있다.”
그로부터 약 50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사실 우리는 ‘무심코’ 지구를 살릴 수 도 있는 멋진 지구인이다. 지구의 날을 기념하여 스스로를 칭찬하자. 건강을 위해 한정거장 정도는 걸어 다니는가? 칭찬하자. 탄소발자국을 아꼈다. 너무 피곤해서 씻지도 못하고 잤는가? 칭찬하자. 물을 아꼈다. 환경 보호는 거창한 게 아니다. 우리 생활에서부터 시작하자.
작성: 신지선 (녹색연합 조직팀)
# 이 글은 빅이슈 153호 <플랜G>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