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랜G] 오늘도 격렬히 일회용품을 싫어하는 중입니다.

2017.06.05 | 폐기물/플라스틱, 행사/교육/공지

우주로 쏘아 올린 리싸이클링

얼마 전 ‘재사용 우주선’이 발사에 성공했다. 재사용 우주선이라니. 우주선 앞에 붙은 이 수식어가 낯설어 처음에는 믿지 못했다. 재사용 소주병도 아니고. 재사용이란 무엇인가. 소각하거나 매립처리 하지 않고 다시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사용하기 위해서는 제작 단계부터 재사용/재활용 가능한 재질인지 고려해야 한다. 이를테면 맞다, 소주병처럼 말이다. 그런데 재사용 우주선이라니!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는 지난 3월 30일 역사상 획기적이고 의미 있는 사례를 만들어 냈다. 이미 과거에 한 번 사용되었다가 회수된, 그러니까 지구를 벗어나 우주에 나갔다 돌아온 로켓을 재사용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용 무인화물 수송선인 ‘드래곤’을 발사할 때 지구 위로 쏘아 올려진 1단 로켓이 그것이다.[1] 우주에 한 번도 못 나가본 이 지구인은 방구석에서 입을 떡 벌린 채 괄목할만한 우주 과학의 발전에 감탄했다. 세상에. 이제 로켓도 재사용하는 시대가 되었구나. 바닷가에 모래알만 한 나의 상상력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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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선 재활용하는 멋진 세상. 지구에서도 좀 잘 하자. /사진=뉴시스

 

우주로 발사되는 로켓을 회수하고 재사용한다. 그로 인한 비용 절감과 환경 보호 효과를 기대한다. 기막히게 단순하다. 그리고 마음에 든다. 어쨌든 새로 만들지 않는 딱 그만큼만이라도 지구에서건 우주에서건 쓰레기를 배출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재사용-재활용’이라는 간단하고 명료한 아이디어가 왜 그동안 우주 개발 사업에서는 반짝이지 않았을까? 왜 일회용이 아닌 지속가능한 개발이 진작에 환영받지 못했을까? 왜 우리 인간은 다 망치고 나서야 후회하고 반성할까? 전 인류적 후회의 말줄임표는 엇비슷해보인다. 시험 직전 공부 더 열심히 할걸. 폭식 후엔 조금만 덜 먹을걸. 이별 직후 만취해서 그에게 전화하지 말걸. 우리의 하나뿐인 지구도 쓰레기에 다 뒤덮이는 수난을 겪고 나서야 후회할까. ‘일회용품 쓰지 말걸!’

 

아무것도 쓰레기로 버리고 싶지 않다. 더욱 격렬하게

나는 일회용이 싫다. 일회용품 알레르기 급이다. 일회용 사용을 거부하고 뭐든지 재사용의 의지를 불태운다는 측면에서, 더 나아가 재사용·재활용할 쓰레기조차 만들어내기 싫어한다는 점에서 감히 일론 머스크와 동급이라고 말하고 싶다. 스페이스X의 성과처럼 우주적 스케일은 아니지만 소소한 지구적 실천으로 일상을 촘촘하게 메꿔가고 있다. 매일 손수건을 사용하고, 무겁고 귀찮아도 텀블러와 여분의 에코백을 가지고 다니며 카페에서는 언제나 ‘머그컵에 주세요’ 캠페인 중이다. 휴지나 일회용 종이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곧 나무를 살리는 것이라는 표어는 상상력의 비약이 아님을 실천을 통해 주변인들에게 전파하고 있다. 내가 쓰고 버린 비닐이 어느 먼바다의 고래 뱃속에 들어갈 수 있다는 일종의 부채감은 나를 더욱 전투적인 환경운동가로 만든다. 점심을 먹고 나서 습관적으로 ‘톡톡’ 뽑아 쓰는 휴지 무시하기, 물건을 살 때 일부러 큰 목소리로 ‘봉투는 안 주셔도 돼요.’ 외치기 등. 그렇다. 일회용품을 쓰면 알레르기 반응이라도 일으키는 듯 사용하지 않는 것은 물론, 일상 전반에서 격렬하게 ‘거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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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안에서 ‘테이크-아웃’ 컵을 쓰고 버린다. 출처: 페이스북 페이지 ‘일회용품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

 

습관은 무섭다. 때로는 수동적으로 주어지는 것들에 익숙해진다. 돈을 받다가 갑자기 공짜로 주기 시작한 편의점 봉투가 그렇고, 카페에서 아무렇지 않게 제공하는 일회용 컵이 그렇다. 벌써 익숙해져서 없으면 불편하고 아쉬워지는 것들 말이다. 요즘 카페에서는 일회용 컵이 ‘디폴트값’이나 마찬가지다. 대형 프렌차이즈 카페일 경우 더욱 그렇다. 카페에 앉아 둘러보면 거의 90% 이상 테이블에서 테이크아웃용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있다(정말이다. 못 믿겠으면 지금 당장 가까운 카페에서 확인해보시라). 일회용 컵에 담긴 음료를 받고 당황하지 않기 위해 주문할 때 꼭, 머그컵에 달라고 ‘일부러’ 요청해야 한다. 다회용 잔이 갖춰져 있지 않은 카페도 간혹 있어서 직원과 실랑이를 한다. 정말 황당한 경우도 있다. 머그잔에 달라고 요청했는데 용량 측정을 위해 먼저 일회용 컵에 음료를 담은 후 머그잔에 그대로 따라준다. (응? 일회용 컵 의문의 쓰레기통 행…) 카페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컵은 ‘테이크 아웃’을 위한 것이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때 기업 프렌들리 정책을 위해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를 폐지한 후로 쭈-욱 사용량은 늘고 회수율은 줄었다.[2]

 

재활용 ‘잘’하기 vs 쓰레기 안 만들기

이쯤에서 ‘분리배출-재활용만 잘하면 좀 써도 되는 거 아닌가?’라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연간 230억 개의 일회용 종이컵이 쓰고 버려진다. 하지만 재활용률은 1%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카페에서 사용하는 일회용 종이컵의 경우 내수성을 위해 컵 내부에 폴리에틸렌 성분이 코팅되어 있다. 이를 분리해내는 작업에 비용이 많이 든다. 이물질이 묻어 있는 경우에는 그나마 재활용조차 되지 않고 소각 행이다. 현행 제도도 문제다. 생산부터 폐기-재활용에 생산자가 책임지는 EPR(생산자책임재활용제도) 대상 품목에 일회용 종이컵은 쏙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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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활용되지 못하는 불쌍한 일회용 페트들이 재활용센터에서 짜부되었다. ⓒ녹색연합

 

비닐은 또 어떤가. 재활용품 회수 후 분류작업을 하는 곳인 ‘재활용 선별장’. 이곳으로 가장 많이 들어오는 건 비닐인데, 실제로 분리배출이 잘 안 된 채로 회수된다. 자동 선별 기계가 없는 곳에서는 컨베이어 벨트 위를 지나가는 비닐을 사람이 손수 분리해내야 하는데 이물질이 묻어 있는 경우가 많아 재활용이 어렵단다. 우리나라만큼 분리수거에 열심인 나라가 없다고 알려졌지만 ‘잘’ 되는 건 일부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사실 ‘잘’하면 뭔들 안 되겠나. 그만큼 ‘잘’은 때론 무책임하고 때론 어려운 수사다. 프랑스는 2020년부터 플라스틱 용기와 비닐봉지 등 썩지 않는 일회용품을 전면 금지했다. EU 회원국은 2025년까지 비닐봉지 사용량을 연간 1인당 40개로 줄여야 한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1인당 비닐봉지 사용량이 연간 약 300개로 파악되고 있다. 재사용·재활용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레기 문제 해결의 핵심은 원천감량임을 잊어선 안 된다.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아예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이 답이다. 일회용 컵을 사용하고 쓰레기를 생산하는 대신 텀블러나 컵을 사용해야 한다. 제도-정책적으로 쓰레기 감량을 위한 근본적인 시스템이 필요하다.

문재인대통령_일회용컵

커피 매니아 대통령님, 환경 매니아도 좀…

 

더 나은 지구를 위해

대선이 끝났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기대하며 정권 교체를 이뤄낸 촛불 시민의 염원과 희망으로 조금은 달뜬 분위기다. 하지만 프로불편러로서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사용된 공보물과 일회용 현수막, 그리고 전량 폐기-소각된다는 기표용구들은 매우 불편했다. 대선이 끝난 후 청와대로 출근한 대통령이 일회용 컵을 자연스럽게 들고 있는 모습이 찍힌 사진을 보고 ‘텀블러였다면…’ 한 건 나뿐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5월 15일, 미세먼지 응급감축을 위해 국내 미세먼지 원인인 낡은 석탄화력발전소 셧다운을 지시한 것처럼, 늘어만 가는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근본적인 정책도 곧 기획-추진되길 기대해본다. 일회용 컵 보증금 제도의 부활을 넘어, 생산자가 제조 단계에서부터 재사용·재활용까지 염두에 두어 쓰레기 문제에 더 적극적으로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과대 비닐 포장을 제도적으로 막는 것이 구체적인 방법의 하나이다. 또한, 분리배출과 재활용이 더욱 활발하고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과 제도 정비에 힘써야 한다. 새 정부가 ‘상식적으로’ 내딛는 행보를 보며, 나도 직무를 유기하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마치 쓰레기 같았던 지난 정권을 격렬히 ‘거부’했던 기억처럼, 오늘도 지구를 망치는 쓰레기들을 더욱 격렬히 거부하기로 마음을 먹는다. 황경신 작가의 말처럼 ‘우리가 지어야 할 것은 쓰레기가 아니라 사랑’[3]이라고 믿는다. 쓰레기보다야 암만 사랑이 좋지 않은가.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더 건강하고 쾌적하게 살고 싶어서, 앞으로도 기꺼이 불편함을 감수할 것이다.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하기 위해 프로불편러이길 자처할 것이다. 창백한 푸른 점, 지구를 사랑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더 나은 지구 환경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당신도 함께하시겠는가? 일회용품 격렬히 싫어하기, 오늘부터 일일이다!

 

글: 배선영 평화생태팀 활동가

*이 글은 빅이슈 157호 플랜G <그린 이슈 리포트>에 실렸습니다.

*‘일회용품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모임’에 초대합니다. (클릭)

 


[1] 시사저널, 우주에 벌어진 ‘재사용 로켓’ 전쟁, 스페이스X가 이겼다, 2017. 04. 14

[2] 뉴스1, [국감브리핑]하태경 “7년간 일회용컵 이용 급증”…규제는 후퇴, 2016. 10. 12

[3] 황경신, ‘얼마나’, <생각이 나서>,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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