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도 괜찮다는 핑계

2018.06.04 | 폐기물/플라스틱, 행사/교육/공지

‘모든 사람에게서 배출되고, 틈이면 틈마다 스며드는 것. 집집마다 도시마다 버려진 땅의 구석구석마다 고이고 쌓이고 썩어가는 것. 바다와 가장 높은 산꼭대기까지 잠식하며, 화학물질로 직조된 두꺼운 담요로써 지구를 뒤덮는 것.’

《Waste》(2017)의 저자 브라이언 딜(B.Thill)이 묘사한 쓰레기의 모습이다. 충격적인 이미지를 제시하지 않더라도 쓰레기가 초래하는 문제적 장면은 쉽게 떠오른다. 오늘날 쓰레기는 그야말로 인간 생활의 동반자다. 인간 삶을 영위하기 위한 모든 활동에서 다종다양한 쓰레기가 쏟아져 나온다.

우리는 10분 후, 한 달 후, 1년 후에 결국 쓰레기가 될 운명의 물건을 끊임없이 소비하고 욕망한다. 하지만 쓰임을 다해 폐기된 욕망의 찌꺼기, 쓰레기가 버려진 뒤 어떻게 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내 시야 밖으로 사라진 쓰레기는 어떻게 될까. ‘폐기’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쓰레기봉투에 담아내다 버리는 행위일까. 쓰레기 매립지에 산처럼 쌓인 상태를 이야기하는 것일까. 폐기의 순간은 과연 ‘언제’며, 쓰레기는 어떤 순간에 쓰레기로 명명될까.

 

내가 버린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는다

한국의 폐기물 발생 총량은 1996년부터 2016년까지 1일 평균 137.7% 증가했다. 환경부 자료에 따르면 1인당 생활폐기물 발생량은 2015년 기준으로 연 3백67킬로그램이다. 4인 가족일 경우 한 달에 약 1백20킬로그램에 달하는 쓰레기를 배출하는 셈인데, 그 많은 쓰레기는 다 어디로 가서 어떻게 처리되나.

가정에서 배출하는 쓰레기 중 생활폐기물의 경우 태워지거나 땅에 묻히거나 재활용된다. 가령, 서울시에서 종량제 규격 봉투에 담아 배출한 폐기물, 즉 재활용되지 않는 가연성 폐기물은 자원회수시설에서 소각된다. 자원회수시설이 설치되지 않은 자치구는 중간집하장으로 운반·압축한 후 수도권 매립지로 운반하거나, 중간집하장을 경유하지 않고 압축 차량을 이용해 직접 매립지로 운송한다.

자원회수시설에서 태워진 쓰레기는 비산재와 바닥재로 남는다. 비산재는 날아가는 재를 잡아 가둔 것이고 바닥재는 바닥에 가라앉은 재를 뜻한다. 이 재들은 지정폐기물로 분류돼 적법한 시설로 다시 운반·매립해야 한다. 결국, 태워도 끝까지 태워지지 않는 쓰레기가 남는 셈이다.

재활용품의 경우는 어떨까. 한국 폐기물관리법상의 폐기물 관리 기본원칙을 보면 ‘폐기물은 소각, 매립 등의 처분을 하기보다는 우선적으로 재활용함으로써 자원 생산성의 향상에 이바지하도록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실제로 한국은 재활용 분리배출을 열심히 한다. 어디를 가나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따로 버리게끔 돼 있고, 지자체별, 주거 형태별로 쓰레기 분리배출 일정과 방법을 홍보한다. 2016년 국민환경인식조사에 따르면 시민이 가장 우려하는 환경문제로 ‘쓰레기 증가(16.2%)’를 꼽았고, 지난 한 달 동안 환경보전을 위해 한 행동이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에는 ‘쓰레기 분리배출’이란 응답이 85%로 높게 나타났다.

 

버려도 괜찮은 쓰레기, 재활용품의 오명

국민 85%가 환경을 위해 실천한다는 ‘쓰레기 분리배출’ 과정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분리 배출된 재활용 쓰레기는 재활용 선별 시설로 이동해 재분류 작업을 거친다. 선별 기준은 재활용이 가능한 것과, 재활용이 가능한 품목이지만 이물질이 묻는 등 재활용 가치가 없어 폐기되는 것, 도자기류와 같이 재활용이 아예 불가능한 잔재 쓰레기 등으로 나뉜다.

재활용이 가능한 것이더라도 선별은 수작업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재활용품으로 분리·배출된 모든 쓰레기가 재활용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플라스틱 일회용 컵을 예로 들어보자. 커피숍에서 테이크아웃 하는 플라스틱 일회용 컵은 PET, PP, PS 등 다양한 재질로 생산된다. 재활용이 되려면 같은 재질별로 모아 분리해야 하지만 모두 투명해 육안으로 구분하기 어렵다. 배출 시에도 섞이고, 재활용 선별 시설에서도 분류하기 어려워 고작 5%밖에 재활용되지 않는다는 보도 내용은 충격적이다.

그렇다면 재활용 강국이라는 한국의 타이틀은 거짓일까. 2017년 OECD가 발표한 제3차 한국 환경성과평가보고서(EPR)에 따르면 한국은 독일 다음으로 재활용률이 높다. 발생 쓰레기의 80%가 회수되며, 재활용률은 59%를 웃돈다. 하지만 현행 재활용률은 재활용 시설로 유입되는 폐기물량을 실질 재활용량과는 무관하게 전량 재활용량으로 산정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재활용 시설로 반입된 재활용 쓰레기 중 실질적으로 재활용되지 않는 폐기물도 발생하는데, 59%라는 수치에는 모두 포함돼 있는 것이다. 애초에 분리배출이 제대로 되지 않아 재활용 시설로 반입되지 않고 비정상적인 경로로 처리(소각, 매립, 해양투기)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므로 통계 수치는 문제의 본질을 가릴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재활용률을 핑계로 쓰레기를 쉽게 버리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쓰레기가 폐기되는 과정 사이에 사람이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뉴스타파〉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 25개 자치구의 환경미화 청소노동자가 수거해야 하는 폐기물의 양은 연간 2백44만 톤, 하루 6천7백 톤이다. 전체 환경미화 청소노동자 5천2백 명 중 실제 폐기물 수거와 운반, 처리를 맡은 인력은 2천6백37명이다. 청소노동자 1명이 하루 평균 1.29톤, 약 8백가구에서 배출하는 폐기물을 감당해야 한다. 살인적인 업무량과 노동 강도로 쓰레기 처리 과정에서 사고가 끊이지 않아, 인력 보강이나 장비 지급 등 대책 마련과 지원이 시급하다.

재활용 선별 시설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서울 시내 15곳의 선별장 중 한 곳만 지자체 직영으로 운영되고, 나머지 14곳은 민간 업체에 위탁 운영한다. 서울시 공개 자료에 따르면 한 선별장에서 하루 평균 약 48톤의 선별 작업을 한다. 하지만 선별장마다 장비 보유 사정이나 관리 운영 방침이 달라 재활용 품목별 현황을 통합해 통계를 산출·분석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재활용 쓰레기가 담긴 봉투를 뜯는 파봉기나, 플라스틱·비닐·금속·병 등 재활용 품목의 물성에 따라 자동으로 선별이 가능한 고가의 장비가 모두 갖춰진 곳은 거의 없다. 장비가 있더라도 병의 색깔을 구분하거나, 재활용할 수 없는 잔재 쓰레기를 최종적으로 분류하는 작업은 수작업으로 해야 한다. 장비가 없는 민간 위탁 업체에서는 컨베이어 벨트 위를 지나는 재활용 쓰레기봉투를 노동자들이 일일이 찢는 작업부터 내용물을 쏟아낸 다음 재활용 가능 여부를 선별하는 것까지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내가 배출한 재활용 쓰레기는 컨베이어 벨트 위 노동자의 손을 반드시 거치게 된다.


▲ 재활용 폐기물을 노동자가 수작업으로 분류하고 있다. ⓒ녹색연합

 

잘 버리기보다 ‘제로 웨이스트(Zero-waste)’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시스템은 소비와 폐기의 사이클을 점점 짧게 만들었다. 기업과 정부는 경제 논리를 내세워 ‘버리기 쉬운 소비’를 방임하거나 부추긴다. 이를 눈치 챘더라도 버리기 위한 핑계를 대는 것이 가능했다. 쓰레기 분리배출은 산처럼 쌓인 쓰레기더미에 대해서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해준다. 1년에 367킬로그램, 하루에 약 1킬로그램의 쓰레기를 만들어내면서도 ‘잘 버리면 된다’ ‘재활용하면 된다’고 착각하며 쉽게 버린다. 《사라진 내일》(2009)의 저자 헤더 로저스(H.Rogers)의 말처럼 재활용품 분리배출이 환경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근본적인 해결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재활용이 불필요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시민의식에 기대는 재활용 분리배출은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환경을 위한 실천의 종점이 분리배출이 돼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원천적으로 쓰레기를 감량할 수 있는 새로운 삶의 태도로 변화가 필요하다. 제로 웨이스트가 그 답이 될 수 있다.

소비단계에서 적극적으로 쓰레기 발생 기회를 차단해야 한다. 비닐봉지와 빨대 등은 처음부터 거절하고, 장바구니, 손수건, 다회용 컵이나 용기를 사용하는 습관을 기르며 일회용품 사용을 지양해야 한다. 물건을 구매할 때 포장재가 과하게 발생하는지 살피며, 쓰임 이후에 대해서도 염두에 두는 등 의식적으로 소비해야 한다. 기업은 생산 단계에서 쓰레기를 원천 감량할 수 있는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정부는 철저히 이를 관리·감독해야 한다.

‘모든 것은 어디론가 가게 되어 있다’ 배리 카머너(B.Commoner)가 제시한 생태학의 네 가지 법칙 중 하나이다. 고래 배 속에서 수십 장의 비닐이 나왔다는 기사를 접하거나 거북이 코에서 일회용 빨대가 뽑히는 장면을 보고 쓰레기가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문제인 플라스틱 쓰레기는 66년 동안 폐기된 63억 톤 중 9%만 재활용됐다. 플라스틱은 매년 2천만 톤이 바다로 유입돼 마이크로비즈로 변하고, 이는 곧 음식물을 통해 체내에 유입된다. 생태계 안에서 쓰레기는 사라지지 않고 나의 일상으로 다시 환원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버려야 하는 것은 버려도 괜찮다는 핑계뿐이다.

 

 

글: 배선영_녹색사회팀

*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사 341호 [생태]면에 기고한 글입니다. (2018.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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