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나무, 풀, 우리 이야기가 있는 생태드로잉

2018.06.11 | 행사/교육/공지

평소에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서 종종 혼자 이것저것 그려보곤 했던 저는, 작년에 호주에서 일 년 동안 살 기회가 생기면서 수채화 도구를 새로 사서 챙겨가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유화 도구는 가짓수도 너무 많고 무겁고, 등등… 의 이유로 비교적 간편한 수채화가 낫겠다 라는 생각에서였죠. 그런데 막상 수채화를 그려보니 생각대로 잘 그려지지 않았고 부족함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유튜브 동영상, 동네 도서관에서 빌린 수채화 그리기 책을 선생님 삼아 따라 그려 보기도 했지만 쉽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귀국을 앞두고 수채화 교실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사실 생태 드로잉 공지가 뜨기 전에 나름 괜찮아 보이는 꽃그림 위주의 그림 교실을 발견해서 등록을 할 생각이었었는데, 그때 마침 녹색연합에서 생태 드로잉 교실을 연다는 공지가 올라와 바로 마음을 바꿔 첫 수업을 빠질 수 밖에 없는 상황임에도 등록을 했습니다. 녹색연합에서 진행하는 거면 왠지 더 자연스러운 그림을 추구할 것만 같은 느낌이 있었고 야외 수업이 포함된다는 점도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첫 수업은 빠지고, 녹색교육센터에서 열린 두 번째 수업부터 참여를 하게 되었습니다. 아직 채색은 시작하지 않고 드로잉 연습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특별한 드로잉 기법을 가르쳐 주시기보다는 관찰을 우선 제대로 하고, 보이는 그대로 조금씩 따라 그려나가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따라 그리는 동안, 우리가 보통 무언가를 “본다” 라고 하지만 사실은 많은 경우 제대로 보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펜을 들기 전에 꼭 선행되어야 할 “관찰”의 과정을 그동안 제가 얼마나 등한시 했는지도요. 물병이든 나뭇가지든 우리의 눈이 그걸 보고 있다고 해서 진짜 보는 건 아니었습니다. 선생님의 아주 기초적이면서 특별하지 않아 보이는 가르침의 방식이, 역설적이게도 다른 곳에서는 잘 얻을 수 없는 귀중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야외 수업은 옛 이야기와 생태 교육과 그림 그리기가, 그리고 먹고 나누는 시간이 잘 버무려진 생태 드로잉 수업의 백미였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르는 게 없어 보이는 선생님의 박학다식에 자꾸만 입이 벌어지는 시간이었죠. 함께 배우는 다른 분들도 다들 호기심이 넘치고 유쾌한 모습에 덩달아 힘이 넘치게 되었습니다. 피곤한 채로 수업에 왔다가도 돌아갈 때쯤 되면 오히려 잠이 깨고 정신이 돌아오는 마법을 맛보았습니다.

총 5번, 저의 경우 4번 밖에 듣지 못한 짧은 수업이었지만, 그 안에 많은 것을 배워 돌아갑니다. 관찰하는 힘을 기르게 된 것이 가장 크고 중요한 깨달음이었고, 재미난 나무 이야기와 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참 좋았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수채화의 기법을 따로 배우지 않더라도 저 혼자 조금씩 그려 나갈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얻었고요. 선생님, 그리고 함께한 다른 분들로부터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한껏 얻을 수 있었던 것 또한 너무나 큰 행복이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수강생 모두가 여자였다는… 사실이에요. 왜 이런 수업에는 항상 여자들만 가득한 지 모르겠네요. 다음 기수에는 남자분들도 많이 오셔서 나무와 풀과 그림과 친해질 수 있는 좋은 시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새미(봄을 그리는 생태드로잉 11기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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