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보고싶은 영화]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2019.04.03 | 행사/교육/공지

『집의 시간들』
김지은, 2017년 제작

작년 말 국토교통부 발표에 따르면 주거용 건축물 면적 61.5%는 아파트가 차지하고 있다. 아파트는 우리나라의 가장 보편적인 주거 형태가 됐다. 삭막한 사회의 상징이자 이웃간 단절의 원인으로 여겨지던 아파트가 이제 누군가에게는 ‘고향’이라 불린다. 아파트에서 나고 자란 세대 ‘아파트 키드’의 이야기다.

1980년에 지어진 둔촌주공아파트는 1999년에 재건축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인규 씨는 이 둔촌주공아파트에서 나고 자랐다. 재개발로 둔촌주공이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던 그는 2013년 독립출판물 『안녕, 둔촌주공아파트』를 펴냈다. 둔촌주공의 풍경을 담고 추억들을 기록한 이 책의 네 번째 호 주제는 <안녕 둔촌 X 가정방문>이다. 사람들의 주거 공간 풍경을 영상으로 기록해 온 라야 감독과의 공동 프로젝트다. 다큐멘터리 영화 『집의 시간들』은 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집의 시간들』은 둔촌주공 내 8가구와 아파트 단지 곳곳의 풍경을 가만히, 조용히 마주 본다. 그 풍경 뒤로 얼굴도, 이름도 없이 흐르는 사람들의 목소리. 어린 시절의 추억이 사라지는 게 애틋하다가도 낡은 집의 불편을 털어놓고, 재개발에 대한 기대를 품다가도 창밖 풍경을 그리워한다. 굳이 아름다운 추억만을 담지 않는다. 그저 이 공간이 내 삶에 어떻게 새겨졌는지,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한다. 그렇게 영화는 둔촌주공을 넘어 집이란 어떤 곳이어야 할지 돌아보게 된다.

둔촌주공을 추억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떠나보내기 아쉬워하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아파트 단지에 수 놓인 나무들이다. 둔촌주공아파트는 녹지율이 40%가 넘는다. 30년이 넘게 자리를 지켜온 나무들은 주민의 쉼터가 되었다. 새들이 날아드는 숲과 동산은 주민이 아니어도 둔촌주공을 기억하게 만든다. 비싼 이식 비용 등 때문에 둔촌주공 나무대부분은 옮겨지지 못하고 사라진다. 사계절 다양한 모습으로 아파트와 어우러져 있던 그 나무들은 『아파트 숲』이라는 사진집으로만 남았다.

“인공적인 조명, 조경, 분수대 이런 거 싫어요…자연과 조화롭고 우리 단지 안에 있는 산과 녹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재건축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아파트를 원해요.”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미니신도시급 단지’ 지난해 주민 이주를 마치고 철거가 진행된 둔촌주공을 부르는 새로운 키워드다. 집의 재산 가치가 먼저 계산되는 시대에 걸맞은 이름표다. 이곳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집과 나눈 추억들, 집에 남은 기억들, 나무와 숲을 아쉬워했다.

둔촌주공의 시간이 멈춘 자리에 들어설 집은 어떤 모습일까?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둔촌주공처럼 그곳도 기억하고 추억하고 싶어지는 곳이 될까? 기억에 없는 한 살 때를 제외하곤 나는 이사를 해본 적이 없다. 삼십 년을 한집, 한동네에서 살았다. 좁은 골목길, 다닥다닥 붙은 집들 가운데 특별할 것 없이 자리한 집. 한여름 마당에서 등목하고, 밤엔 돗자리 펴놓고 별 구경 하는 집. 눈 쌓인 겨울, 옥상에서 눈사람 만들던 집. 나는 그런 집에서 자랐다. 내가 자라는 동안 우리 집은 낡아갔다. 재개발 소식에 동네가 비어가고 있다.

우리 집의 시간도 곧 멈출 것이다. 내가 우리 집과 보낸 삼십 년의 시간도 사라지겠지. 재개발로 사라지는 것은 오래된 건물만이 아니다. 내가 보낸 시간, 삶, 추억은 사라지지만 또 누군가의 시간이 채워지고, 삶과 추억이 묻은 공간이 들어설 것이다. 그러길 바란다. 투자가치 말고도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것이 많은 곳이길. 높은 건물, 좋은 아파트 말고도 나의 고향, 우리 집으로 불리는 곳이길.

 

·박은정(녹색연합 자연생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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