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칼럼] 익숙함과 낯설음이 공존하는 평양 방문기

2019.01.22 | 행사/교육/공지

“첫 방북 3일간의 밀도는 대단했다. 예상한 것과 예상을 넘는 것 사이에서 호기심과 긴장은 고개를 길게 빼고 온종일 밀고 들어왔다” 지난 10월 초 북한 평양에 다녀온 후, 여러 생각에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어느 밤에 제가 쓴 글의 첫 문장입니다. 북한 방문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방송이나 신문에서 본 북한이 전부였던 제게 평양에서의 3일은 아주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예정된 대로 평양의 명소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정성껏 준비한 환대의 오찬과 만찬을 기꺼이 즐겼습니다. 사실, 제가 본 것은 평양의 극히 일부를 돌아본 것에 불과합니다. 짧은 시간의 ‘주마간산’이었지만, 우리와 같고 다름의 많은 장면은 여전히 생생합니다. 이 글에서는 어떤 판단과 분석보다는 제가 본 것 일부를 소개하려 합니다. 이것이 처음 분단선을 넘은 사람이 취해야 할 태도인 듯합니다.

첫날 저는 방북단의 일원으로 성남에서 평양행 공군기를 탔습니다. 국군의 날에 하늘을 나는 비행기 공연을 멀리 올려다본 것이 전부일 뿐, 공군기를 직접 타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공항을 통과하기 전에 방북단은 모두 핸드폰을 맡겨두고 탑승했습니다. 카메라 촬영만 허용되었기 때문이지요. 작은 공군기에 지하철처럼 나란히 촘촘히 앉아 출발했습니다. 비행 중 엄청나게 큰 소음 때문에 미리 나누어준 말랑한 귀막이로 양쪽 귀를 빈틈없이 막아야 했습니다. 공군기는 공해로 나갔다가 다시 평양 순안공항을 향해 우회하였고, 거의 두 시간 남짓 비행한 후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 너나없이 모두 손뼉을 쳤습니다.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말입니다. 공항에 내리자 여느 사진처럼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4월 27일 두 정상의 만남이 없었다면 이런 방문은 물론, 웃으며 사진 찍는 건 거의 불가능했겠지요. 공항을 들어서면서 바로 앞 작은 음료 가게에 삼삼오오 모였습니다. 랭커피 100원, 탄산단물 100원, 인삼 커피 100원, 금강산 샘물 30원, 대동강 맥주 150원, 코카콜라도 있었습니다. 100원은 1달러 정도입니다. 우리 돈으로 치면 냉커피 1,200원, 맥주 1,800원, 생수 400원 정도인 셈입니다. 가게 앞 자판기엔 “손님고뿌 your cup, 판매기 고뿌보충’. ‘음료 받는 곳: 신호종이 울린 다음 고뿌를 가져가시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아차, 인삼 커피를 주문했어야 했는데 얼결에 그냥 냉커피를 달라 했습니다. 북한에서 마신 첫 음료였습니다. 늘 먹던 커피 맛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곧 평양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창문에 바짝 얼굴을 대고 밖을 보았습니다. 옆에 북측 안내자가 앉았건만 얘기 중에도 제 눈은 바깥 풍경을 향해 있었습니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풍경을 조금 더 가까이 유심하게 보고 싶었습니다. 도로변에는 키작은 단풍나무들이 줄 서 있고, 드문드문 작은 빌라형 집들과 멀리 들판에 벼 베기 하는 사람들이 보였습니다. 평양 시내 건물들은 파스텔 톤의 색깔입니다. 연두, 주황, 하늘색, 분홍색 아파트와 상가들은 환하고 연한 색으로 칠해졌습니다. 전혀 예상치 않았던 풍경이었습니다. 지중해 관광지에서나 볼 법한 색채를 평양 중심가에서 볼 줄은 몰랐습니다. 본래 그랬던 것이 아니고, 또 그리 오래전 일도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첫 북한식사인 점심으로 냉면에 낙지(오징어)완자와 숭어튀김 등이 나왔습니다. 낮술이었지만 곁들여진 ‘대동강 맥주’를 마다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습니다. 원조 북한 음식들은 대부분 맛이 강하지 않고 담백했고, 분홍색 노란색 한복을 입은 ‘접대원 동무’들은 신속하고 친절했습니다. 전라도나 강원도 음식도 각기 재료와 맛이 다르니 평양 음식의 특별한 맛과 느낌 역시 당연한 것이었지요.

첫 방문지는 2016년에 세워진 ‘과학기술전당’이었습니다. 건물 들어가자 입구에 “과학자, 기술자들은 더 높은 과학기술 성과로 부강 조국 건설에 이바지해야 한다”는 김 위원장의 교시가 눈에 띄었습니다. 크고 웅장하게 지어진 높은 천장의 건물 면면은 북한이 과학과 기술 발전에 주력하는 듯했습니다. 방마다 학생들이 강의를 듣거나 컴퓨터에 앉아 무언가를 검색하고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전시장에 있는 전시물 내용과 구호들을 간략히 메모했습니다. ‘령탄소’ ‘령에너지’ ‘녹색건축기술’(Green architecture technology), 석탄은 공업의 생명선, 분산전원계통, 지구온난화, 에너지 보호, 환경보호, 건강 그리고 지능형 건축 등의 용어들. 에너지와 녹색기술에 대한 북한의 관심도를 알 수 있었습니다.

둘째 날에는 본래 방북 목적인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두 정상이 합의했던 ‘10.4 남북공동선언’의 11돌 기념식에 참가했습니다. 기념식장에 들어서자 자리에 앉았던 북한 참가자 전원이 박수로 맞아주었습니다. 큰 박수 소리에 다소간 놀랍기도 어색하기도 했습니다. 좀 민망한 마음이 들어 사람들에게 가벼운 목례를 하며 자리에 앉았습니다. 기념식장 정면에는 한반도기가 걸렸고 바로 아래에는 ‘7.4공동성명, 6.15공동선언, 10.4선언, 4.27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 문구가 그리고 양 벽면에는 ‘평화번영’, ‘자주통일’ 구호가 걸려있었습니다. 북측대표의 ‘열렬히 환영’한다는 인사말을 시작으로 남북한의 대표들은 개성공업지구와 금강산 관광사업 재개를 위해 노력하고, 산림, 방역, 보건의료, 인도적 협력사업, 예술, 문화 등의 교류를 해나가자는 내용의 연설을 이어갔습니다. 초소를 철수하고 포문을 닫고, 비무장지대를 평화의 땅으로 만들자고, 철도를 연결하고 핵 없는 한반도를 모든 사람이 자유롭게 오갈날을 만들자는 연설들을 듣자니 평화가 바로 문 밖에서 기다리는 듯 가까이 느껴졌습니다. 그런데 나오면서 질문이 생겼습니다. 왜 기념식 무대 위에도 무대 아래에도 남자들이 압도적일까. 연설자 전원이 남자이고, 넓은 청중석에 여성은 10% 남짓인 풍경에 왠지 기시감이 느껴졌습니다. 평화에 남녀 공히 참여해야 하지 아닐까. 과정부터 함께 해야 하지 아닐까. 지극히 마땅한 일이어서 덧붙여 말하기 민망합니다.

저녁에는 ‘5.1 경기장’에서 거대한 규모의 그 유명한 집단예술 공연들을 보았습니다. 공연주제인 ‘빛나는 조국’이 드론으로 띄워졌으며 아이들의 공연과 1,200명의 가야금 공연, 군인과 무용수들의 집단 공연 등은 놀랍다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하기 어려웠습니다. 지금껏 어디서도 본 적 없는 공연이었습니다. 공연의 규모, 형식과 내용 모두가 그러했습니다. 각각 공연을 시작할 때 사방의 입구에서 순식간에 수많은 공연자들이 빠르게 경기장으로 달려 나왔습니다. 극적으로 ‘일사불란’했고 웅장하고 화려했습니다. 기술도 연출도 거의 완벽해 보였습니다. 일사불란한 공연을 위해 얼마나 많은 연습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했을까. 공연은 놀랍고 감동적이었지만 또한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제가 본 것은 극히 일부였지만 그 또한 북한의 현실이겠지요. 보지 못한 그 밖의 현실은 어떤 것일까 궁금해집니다. 얼마 전 ‘평양자본주의 백과사전’이란 책을 보았습니다. “반갑습니다, 시장경제! 오시라요, 자본주의!” 베스트셀러 코너에 올려진 그 책의 첫 장 제목입니다. 또다른 현실의 존재를,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변화의 실제를 알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하게 됩니다. 더욱 자주 만나 긴 세월의 물리적 심리적 거리를 가늠하며 서로 좁혀가는 충분한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돌아와서 한동안은 적절히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해 끙끙거렸습니다. 첫 방북이 제게 준 예상과 예상 밖의 장면들의 밀도는 대단했던 듯합니다. 같고 다름, 함께 풀어야 할 매듭들, 익숙함과 낯섦 등 시간을 두고 곱씹어 볼 일이 적지 않습니다. 차근차근 지혜롭게 말이지요. 아주 특별했던 방북의 이야기를 여기서 마칩니다.

 

· 윤정숙(녹색연합 공동대표)

윤정숙 님은 한국여성민우회 공동대표와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로 일했고, 생태적 가치가 개인의 삶과 공동체의 미래를 이끄는 네비게이션이 되기를 소망하며 2017년 녹색연합 공동대표 활동을 시작했다.

녹색연합의 활동에 당신의 후원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