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에 대하여
저자 | 강남순
출판 | 동녘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다는 것이 그 관계의 ‘건강함’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정상적 사랑을 규정하고 사랑의 옳고 그름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건강하지 않은, 관계가 있다. 우리가 설령 누군가를 아주 뜨겁게 스스로를 바꾸어내며 사랑한다고 해도 말이다. 때때로 내가 사랑이라는 단어를 나 자신과 관계에 대한 성찰의 요구를 외면하기 위해 사용해왔음을 말해야겠다.
나는 그가 나를 사랑함과 동시에 나를 원하고 또 필요로 하기를 바랐다. 그는 나를 사랑했다가 나를 원하지 않으면서 필요로 했다. 마침내 사랑하지 않거나 필요치 않으면서 원했다. 어느 날, 복잡하고 긴 연애에 마침표가 찍혔다.
나는 오래 앓았다. 앓으면서 나는 왜 ‘그’를 사랑했는가를 수없이 질문했다. 나는 왜 이토록 내가 아닌 것처럼 그 사람을 사랑했을까? 내가 아닌 것에 대한 가슴 벅찬 찬사는 그토록 내가 아니었던 만큼의 모멸감으로 바뀌었다. 내가 나를 바꾸어내며 그의 곁에 서 있으려 했던 것에 분노하고 그런 나를 비하하며 용서하지 못하는 동안, 스스로를 파괴하는 자신에 대해서는 관대했다. 사랑, 두 음절만으로 ‘관계의 정당성’을 설명하지 않는 것처럼, 용서나 관용이라는 행위가 그 자체로 어떤 이들의 성숙함을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응당 나는 그러한 ‘취급’을 받을 만한 사람이다. 사랑이 끝나지 않았더라도, 불안한 사회에서, 불안한 삶을 사는 동안 우리는 아니 나는 내가 보낸 시간과 관계에 대해, 그리고 나 자신에게 쉽게 모멸의 말을 던진다. 그런 단어들이 언덕을 쌓았을 때 강남순의 <용서에 대하여>를 읽었다.
저자의 정의를 따르자면, 그때 나의 말은 ‘인식론적 폭력’이다. 자기 자신과 타인의, 관계의 변화를 차단하고 성찰의 가능성을 닫았다. 우리는 이러한 폭력을 나 자신과 사적인 관계뿐 아니라,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관계로도 확장한다. 때때로 무참한 폭력의 대상은 무엇보다 자연이다. 마땅히 그러한 취급을 받아도 되는 존재는 곳곳에 널려있다. 폭력이 겹겹이 쌓인 현대사회의 불안 속에서 우리는 늘 누군가와 화해하고 용서하거나 용서를 구해야 하는 구체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용서에 대하여>를 추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떻게 건강하게 화해하고 용서할 것인가 질문한다. 이는 결국 내가 나 자신과 타인의 관계 안에서, 현재를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를 집단 간의 정치적 맥락 안에서 어떻게 좀 더 나아지게 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