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회원 에세이] 별거인듯 별거아닌 봉사

2019.06.25 | 행사/교육/공지

무인카메라에 찍힌 화면을 확인하고 있다.

처음 녹색연합에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할 때는 그저 이것저것 해보자는 마음이었다. 대학교 1학년, 약대 입시를 준비하다 과연 이것이 적성에 맞는 일인지 회의가 들었다. 더 많은 것을 경험한 뒤에 준비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했다. 입시를 중단하고 하고 싶은 일이 뭐가 있을까 찾다 우연히 발견한 기회가 녹색연합이었다. 학교 커뮤니티에 뜬 ‘기후변화 생태다양성 모니터링’ 공고를 보고 고민 없이, 재밌어 보인단 이유만으로 지원했다. 막상 하고 보니, 별로 재미는 없었지만. 컴퓨터 앞에 앉아 수많은 생물의 학명이 무엇인지 검색했다. 전 세계적으로 규정된 학명은 하나일 텐데, 왜 이렇게 오류가 많은가? 백과사전마다 다른 학명으로 부르고 있었다. 무엇하나 믿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고민은 많은데 결과는 없는, 게다가 지루한 활동이었다. 하지만, 녹색연합에서의 활동의 시발점이자 다른 봉사활동을 시작해 볼 수 있는 불씨를 제공했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2017년, 서재철 전문위원님의 제안으로, 그해 여름 야생동물탐사단 활동을 하게 되었다. 야탐단 활동은 내가 이전까지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삶의 방식에 새로운 제안을 했다. 어렸을 때, 산 중턱에 집이 있었다. 올라가는 길에 수많은 계단과 흙을 지나야 했다. 뱀과 마주하는 일도 많았다. 우리 가족은 그 집을 ‘지네의 집’이라 부른다. 책장에서 책을 꺼낼 때, 책 속에서 삶을 막 시작한 새끼 지네가 우수수 함께 나왔다. 밖에 나가려 신발을 신으면 안에서 꿈틀하는 움직임이 느껴지기도 했다. 책을 읽다 미처 안전한 모기장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잠이 든 날, 커다란 지네에 물려 응급실에 갔다. 허리의 흉터가 10년을 갔다. 다른 곳으로 이사한 이유 중 지네가 큰 몫을 차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곳에서의 기억은 행복하다. 측백나무 열매를 따다 동생과 함께 마법의 파란 구슬이라 칭하며 놀았다. 엄마랑 마당에 분꽃을 심고, 올라오는 새싹에 신기해했다. 텃밭에 후투티가 오기도 했다. 당시에는 너무 화려한 모습에 괴물이라 생각했지만.

야생동물탐사단은 그때의 기억을 일깨워주었다. 산을 곁에 두고 사는 것이 어떤지. 슈퍼에 나가려면 차를 타고 가야 했다. 보건소도 멀다. 하산하고 내려오는 길에 지네에 물린 할아버지를 만나 함께 차를 타고 보건소를 가기도 했다. 물은 찬물만 나왔다. 시기가 한여름인 것이 참 다행이었다. 조금 불편했지만, 그래도 좋았다. 산양의 흔적을 관찰하는 한 달 동안 내가 목표로 삼았던 것은, 산양 뒤꽁무니라도 보는 것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못 봤다. 바라던 것을 이루지 못했는데도, 그때의 시간은 황홀했다. 공간도 좋았고, 사람도 좋았다. 느껴지는 모든 것들이 꽤 자연스러웠다. 아침 안개가 수북이 쌓인 산은 시야가 좁아 바로 오를 수 없었지만 오묘한 느낌을 줬다. 뺨에 차가운 물방울이 자잘하게 닿았다. 안개가 마음속까지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산을 조금만 올라도, 금세 땀으로 흠뻑 젖는다. 그때 맡는 흙냄새와 땀 냄새가 적절히 섞인 향이란! 어느 정도 올랐다 싶으면, 가쁜 숨을 내쉬며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아예 누워서. 누우면 머리에 시원한 감각이 온다. 손목을 간질이는 개미와 함께 나무들이 만들어 낸 하늘을 올려다본다. 코끝을 스치는 살랑이는 바람은, 완벽하다.

‘산을 옆에 두고 살고 싶다.’ 활동 중에도, 활동 이후에도 강하게 들었던 열망이다. 녹색연합에서의 활동을 통해 비로소 진정으로 원하는 것, 감동하며 임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찾았다. 꿈을 설정하니, 앞으로 선택할 길이 달라졌다. 방향을 잡고 원하는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것 중 하나가 ‘아고산대 침엽수 고사 보고서’였다. 기후변화에 취약한 아고산대 침엽수의 고사 상황을 알리는 보고서였다. 처음 날 것의 보고서를 받았을 때는 막막했다. 이미 어느 정도 쓰인 보고서는 완전히 뒤집어야 할 정도로 제멋대로 쓰여있었기 때문이다. 어려운 한자어가 해석 없이 쓰여 있었고 사진의 출처 표기도 없었다. 보고서는 많은 사람의 손을 거쳤다. 보고서 편집을 위해 만들어진 카톡방이 몇 개인지 셀 수 없다. 고난 끝에 만든 보고서가 발표되고, 내가 공들여 그린 그림이 뉴스에 나오는 일은 감동적이었다. 이전에 자료를 찾기 위해 검색했을 때에는 구체적인 자료가 녹색연합의 자료 뿐이었는데, 지금은 여러 기관에서 이 문제를 주목하고 있다.

야생동물의 움직임을 관찰하기 위해 무인카메라를 설치하고 있다.

재밌어서, 기쁘게 했던 일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자원봉사를 하면서 봉사를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임하지는 않았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어야지, 지구를 살려야지 하는 마음이 아니었다. 그저, 했다. 별생각 없이. 즐거워서 산에 올랐고, 궁금해서 나무의 생애를 찾아보았다. 덕분에 지구를 생각하며 일상에 임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되었다. 친구와 하고 있는 플라스틱 지양 일기 소모임도 일상에서의 실천이다. 거창하게 봉사라 명명되지 않은 것도 누군가를 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글. 정현진(녹색연합 회원)
가까운 자연을 알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화여대 식물 생태 소모임 <이싹>에서 교내 생물들의 미소서식지를 지키고 생태를 알리는 활동을 하고 있다.

 

이 글은 녹색희망 267호 <먹을까, 사랑할까>에 실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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