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식지] 삶과 앎과 쉼이 있는 절기 놀이

2019.09.23 | 행사/교육/공지

추분을 맞이하여 녹색희망에 실린 24절기에 대한 글을 나눠봅니다^^

한여름에는 맹꽁이가 몸을 부풀려내는 목청소리에 귀 기울여보자.

24절기에는 어떤 놀이가 있을까? 예부터 내려오는 전래놀이를 절기 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절기의 의미를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절기는 ‘한 해를 24개 시기로 구분하는 것’이라는 단순한 일 년의 시간 나눔 의미보다는 일 년 동안 해가 만들어낸 생명의 기운(에너지)의 흐름이자 자연의 리듬이라고 할 수 있다. 절기는 농사력이라고 생각하지만 절기는 농사력이 아니다. 물론 절기와 농사는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절기에 맞춰 농사짓는 것은 맞지만 농사 이전에 이미 절기가 있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24절기는 중국 은나라 때 화북지방에서 3000년 전에 만들어졌다. 인류는 1만 년 전에 기후가 안정되어 정착 생활하면서 농사짓기 시작하였다.

7천 년 동안 자연의 흐름에 따라 농사짓다 보니 한 해 동안 24절기가 반복되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오늘날과 같은 24절기를 만든 것이다. 절기는 해를 중심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절기 날은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음력의 세시 명절과 다른 양력으로 정한다. 그래서 정월 대보름 쥐불놀이나 단오 때 그네 놀이와 씨름 등과 같은 세시풍습도, 술래잡기나 비석 치기, 말뚝박기 등 전래놀이도 절기 놀이라고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절기마다 때를 느끼고 자연의 흐름을 즐기는 절기 놀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먼저 봄에 즐길 수 있는 놀이에는 나물캐기나 꽃놀이, 화전 만들기 등이 있다. 입춘과 우수는 봄바람이 불고 봄비가 내려 잠든 생명을 깨우고, 경칩 때가 되면 개구리와 곤충이 봄을 준비하기 위해 깨어나고 풀들이 싹을 내민다. 경칩 무렵 냉이나 쑥 캐기를 요즘 식 놀이라고 할 수 없지만, 절기를 느끼고 알 수 있으므로 절기 놀이라고 해도 되겠다. 다만 봄나물 캐기를 그냥 먹을거리를 얻기 위한 놀이가 아닌 새로 나온 냉이나 쑥잎을 보면서, 봄을 준비하고 맞기 위해 잠에서 깨어나고 있는 생명의 모습을 알고 이때 잠에서 깨어난 생명들처럼 나도 깨어나 새봄을 준비해야겠다는 절기 의미도 함께 안다면 더 좋을듯 하다.
청명 때는 봄꽃들이 활짝 핀다. 이때 진달래꽃으로 화전을 만들어 먹는데, 마찬가지로 화전을 만들기 위해 꽃을 보고 꽃을 취하면서 ‘왜 이때 꽃을 피울까?’, ‘나는 어떤 꽃을 피울까?’, ‘지금 나도 꽃을 피우고 있는가?’ 등을 생각하면서 화전을 만들어 먹어야 진정한 절기 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즘처럼 더운 여름 절기에는 어떤 놀이가 있을까?
옛사람들은 여름 더위를 눈, 귀, 코, 혀, 몸 등 “오감”으로 즐겼다고 한다. 그것은 단순한 더위를 피하는 데 그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즐기는 것이었다. 낙서법(樂暑法)이라고 할까? 옛사람들의 여름 더위 문화는 화석 에너지를 크게 소비하는 지금 우리보다 훨씬 자연 생태적이었다. 먼저 눈으로 즐기기로는 문에 대발이나 모시 발을 쳐 놓고 밖을 내다보면서 발 사이로 들어오는 시원한 기운을 눈으로 맞는 것이다. 밤에는 평상에서 별 보며 하는 놀이도 있다. 귀로 즐기기로는 맑은 계곡물 소리, 풍경 소리, 대숲 바람 소리, 솔바람 소리, 빗소리, 맹꽁이나 매미 소리 등 자연의 소리를 듣는 일이다. 입(먹을거리)으로 즐기는 방법으로 우물물에 담은 시원한 수박과 참외 먹기, 인동초로 만든 차나 더위지기로 만든 차를 마시는 것이다.

계곡물에 발을 넣어보기, 상상만해도 기분좋은 여름놀이다.

몸으로 즐기기로는 등목, 냉수에 발 담그는 일, 평상에 삼베 이불 덮고 자기, 죽부인 안고 자기, 죽 베개 베고 자기, 얼음덩어리를 손바닥 가운데 올려놓고 부채질하기 등이다. 끝으로 코로 즐기기로는 싱그런 오이풀, 땅비싸리잎을 쳐서 나는 풀냄새, 쑥을 태운 모깃불 타는 냄새, 소나기 온 후 흙냄새, 해 냄새(이불 말린 후 뽀송뽀송한 냄새) 등을 맡는 방법이 있었다. 가을 절기에 즐길 수 있는 놀이에는 단풍놀이와 열매 따기 등이 있다. 울긋불긋 물든 단풍을 즐기면서 계절이 바뀜을 알고 겨울을 준비하는 마음을 가졌다.
산과 들에 빨갛게 익은 맛있게 익은 열매를 따 먹어 보면서 나라는 열매도 맛있게 익어가는지, 어떻게 해야 잘 익어가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홍시 등을 딸 때나 도토리 등을 주울 때도 춥고 배고픈 겨울에 살아갈 생명을 위해 남겨놓아야 한다. 겨울 절기에는 겨울 숲 걷기, 얼음지치기나 눈놀이 등이 있겠다. 겨울 숲을 걸으며 낙엽 같은 겉치레와 허울을 벗어던지고 당당하게 서 있는 겨울나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성찰하면 어떨까? 동지 때는 동지 죽을 먹으며 묵은해의 때를 깨끗이 마무리하고, 새 맘과 새 기운으로 새해를 준비하자. 그리고 강한 추위 속에서도 따뜻한 봄을 그리워하고 꿈꾸는 나무처럼 자신의 생명력을 강하게 충전 시켜 새봄을 준비해보자.
진정한 절기 놀이는 일상 속에서 삶과 앎과 쉼이 함께 있는 것이다. 자연의 흐름대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 속에서 자연처럼 사는 일이다. 여름에는 덥게, 겨울에는 춥게, 봄에는 꽃피어 열매 만들고 여름에는 더위로 그 열매를 키워내고 가을에는 키워낸 열매를 익히고 겨울에는 다음 해 봄을 준비하기 위해 추위로 생명력을 단단히 하는 삶이 진정한 절기 놀이라고 할 수 있겠다.

글. 유종반 (인천녹색연합 생태교육센터 이랑 대표)
인천녹색연합을 창립하여 쭉 활동해오다가
2006년 이후 계양산 골프장 반대 운동을 계기로
생명의 의미와 생명 교육의 중요성을 깨닫고,
지금은 인천녹색연합에서 만든 생태교육센터 이랑에서
자연 생태와 생명 살이, 그리고 절기와 절기 살이 공부를 하고 있다.

이 글은 녹색희망 268호 <놀고 – 잇고>에 실린 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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