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것은 빠르고 착한 것은 느리다.

2020.03.13 | 행사/교육/공지

“감염 확진 판정 환자는 4만8206명입니다.”
오늘 중국 후베이성 확진자는 어제보다 1만4000명가량 늘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지구가 시끄럽다.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확진자와 사망자 소식에 책상 위에 올려둔 마스크를 괜히 한 번 쳐다본다. 마스크 품귀 현상이 생길 정도로 바이러스는 무섭고, 속도는 빠르다.
늘 그렇다. 나쁜 것의 움직임은 매우 빠르다.

자신만의 온전한 속도로 이동하는 달팽이를 사람들은 느리다고 말하곤 한다.

재작년 겨울, 산호 백화 현상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았다. 해류로 인해 같은 장소의 변화를 포착하기 까다롭지만, 바닷속 시행착오를 거듭하여 산호의 변화를 담아냈다. 충분한 광합성을 통해 산소와 포도당을 만들어 산호에게 제공하는 갈충조류는 서식 환경이 나쁘면 모두 빠져나간다고 한다. 다채로운 색으로 생(生)을 뽐내던 산호는 공생 관계를 잃고 점점 탁해지는 바다와 함께 단조로워졌다. 앙상한 산호는 울적한 바다에 우두커니 서 있다. 이 변화가 속상했고, 걷잡을 수 없이 빠른 속도가 원망스러웠다. 울컥하더니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 눈물이 유난스러운 것 같아서 얼른 닦고 말았다.

민망함을 거스르고 눈물이 계속 흐르던 나는 정신이 들었다. ‘실컷 울고 나서 목마르다고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커피를 포장해서 마시면 이런 모순이 어디 있나?’ 생각한 것이다. 눈물이 눈물에서 그치면 부끄러워질 것 같았다. 아. 지금 생각한 것부터 하자.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 다음날 나는 텀블러를 새로 구매했다. 산호 백화가 아주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나의 행동은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다.

SNS를 통해 어느 지인의 2020년 새해 다짐을 보았다. 나열된 그의 다짐은 놀라웠다. 그는 다소 공격적인 문장으로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육식하지 않는 올해를 다짐했다. 가능할까? 과연 나는 할 수 있을까? 내가 내게 물었다. ‘절대 (무언가를) 않는다’라는 것은 굉장한 엄격함을 내포하기에,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음식 절대 구매하지 않기’ 항목에서 적잖은 부담을 느꼈다.

‘절대’가 주는 책임감과 그에 따른 무게에 압도되어 지치지 않을 자신 있는가. 환경에 대한 경각심에서 비롯한 지속 가능한 다짐이 지속 가능한 행동으로 이어지기 위하여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시작하는 내게 중요한 것은 ‘절대’의 부담이 아닌 ‘지속가능한’ 행동이었고, 나는 장바구니에 장을 보기 시작했다. 나의 속도로 환경에 다가갔다. 움직였고, 노력하고 있다.

새해라는 말이 어색해진 2월 중순. 오랜만에 지인의 SNS를 다시 방문했다. 일회용 용기에 담긴 샐러드를 먹고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에 대한 경각심, 야채를 비닐 사용 없이 사 온 일화 등 일상에서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환경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포스팅 되어 있었다. 환경을 위한 좋은 행동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그의 올해는 참 푸르다고 생각했다.

‘사람은 내 주변 다섯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주변 사람이 미치는 영향력에 대한 문장을 보았다. 감사하게도 환경 문제에 경각심을 가지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분리수거 하니까 나는 환경 지킴이’ 라고 생각했던 부끄러운 껍데기를 조금씩 벗겨내고 있다. (알고 보니 내가 해오던 분리수거 방식 마저도 개선해야 할 점이 아주 많았다.) 이제 텀블러 휴대를 생활화한다. 빨대는 사용하지 않는다. 장바구니를 챙긴다. 장바구니 안에는 야채를 담을 재사용 비닐봉지가 항상 구비되어 있다. 분리수거를 ‘제대로’ 하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 할 수 있는 것부터 버릇을 들이며 그렇게 차근차근 움직이는 중이다. 이젠 내가 주변 사람을 움직이게 만들고 싶다. 좋은 주변 사람으로 인해 좋은 주변 사람이 되어 또 나로부터 좋은 움직임을 모은다면, 궁극적인 결과는 ‘건강한 지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플라스틱 페트병이 조명에 반사되어 유난히 반짝인다. 손쉽게 사 온 저 물병은, 물을 다 먹고 버려지면 어느 세월에 분해되어 자기 몫을 다하고 생을 마감할지 알 수 없다. 구매는 쉽고 분해는 어려운 플라스틱 쓰레기들. 빠른 것을 대체하고 느린 것을 지속하는 나의 움직임이 있다면, 지구는 점점 푸르르다.

글 임진아 녹색연합 회원
글쓰고, 춤추고, 아무 생각하고, 오늘에 감사하며 뭐든 만들려고 합니다. 멋진 또라이로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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