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롭게 연휴를 보내고자 들린 시골집의 밤, 외투를 단단히 여며 입고 나가 언덕 위에 털썩 눕는다. 불을 끄면 별이 보인다지. 인적이 드문 작은 마을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에는 쏟아질 듯 많은 별들이 떠 있다. 모든 별들이 하나같이 밝다. 눈으로 별들의 움직임을 좇다 빛나는 긴 꼬리를 가지고 떨어지는 별똥별을 보았다. 도시에서 올려다 본 하늘에서 찾은 가장 밝은 별은 늘 행성이거나 위성이거나, 혹은 비행기였는데 말이다.
공항의 진실들
정부가 편성한 2022년 공항분야 예산이 머릿속을 꽉 메운다. 4,234억원. 지난해 9월에 정부는 국내 15개 공항에 10개 공항을 신설/증축하겠다고 밝혔다. 기존의 공항도 죄다 적자로 살림도 어렵다던데, 정부안대로 확정될 경우 대한민국은 조그만 땅덩어리에 25개 공항을 보유한 공항 부자 국가로 거듭난다. 기후위기 시대 나날이 악명만 높아진다. 제주에서는 제 2공항 예정이였던 오름이, 새만금 신공항 부지 군산 수라 갯벌에 서식하는 40여 종의 법적보호종이 살아간다. 생명의 터전에 공항을 짓겠다는 이기심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자꾸 되살아난다. ‘녹색 정치’에 대한 신뢰감이 바닥을 친다.
세계 각국에서는 공항건설이 좌초되거나 수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세계 1위 공항’ 싱가폴 창이 공항 터미널 증축 계획은 보류되었고, 영국 히드로 공항의 활주로 추가 건설계획은 온실가스 감축 책무 위반 이유로 위법 판결이 났다. 프랑스 하원은 열차로 2시간 30분 내에 이동가능한 거리에는 국내선 항공 운항 금지 법안을 통과시켰다.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작년 9월, 인천국제공항 활주로를 신설/확장하는 계획이 공식화되었다. 피켓을 들거나 서명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결국 비행기 운동으로 이어지는 게 어색하지 않다. 뭐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부끄럽고 답답한 형국이다.
플뤼그 스캄 운동으로 보트를 타고 미국까지 횡단한 그레타 툰베리도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환경문제로 비행기를 타지 않겠다고 선언해 세계를 놀래킨 콜드 플레이도. 좋아하는 한 해외 작가도 플뤼그 스캄에 일조했다. 작가의 번역서가 출간되어 국내에서 출간기념회가 있었는데 작가가 환경적 요인으로 비행기를 타지 않아 만나지 못했다. 출판사는 그의 선택을 존중할 수 밖에 없었을 테고, 나와 같은 애독자는 경외심으로 아쉬움을 대신하며 그가 언제까지 비행기를 안 탈 것인지 궁금해했다는 스토리다. 벌써 다섯 해도 더 지난 일이다. 항공사에는 경제적 타격도 없을 것 같은 단 한 명 한 명의 실천이 누군가에게 위안이, 누군가에게는 놀라움이, 존경과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상실감과 다짐
이러한 자극으로 나도 비행기를 타지 않으리라 다짐한 적 있다. ‘20XX년 새해 버킷 리스트’에는 ‘~하지 않겠다’는 구절로 끝나는 문장이 꽤 많은데, 내 몸뚱아리 굶는 한이 있어도 고기를 삼키지 않겠다, 결코 음식을 남기지 않겠다 같은 다짐과 함께 ‘비행기’를 내 삶에서 밀어내고 있었다. 탄소 절감이나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미미하더라도, 뭐라도 하겠다는 심정이었다. 가치관이 견고해질수록, 내가 ‘하지 말아야 할’ 실천 리스트는 쌓여갔다. 비행기를 타고 싶은 마음이나 타야 하는 상황 속에서 마음에 딜레마가 일었다. 에라 모르겠다, 도착한 공항에서 드는 일말의 죄책감은 내 몫. 내 안에서 부딪히는 고민을 털어놓으니 친구가 말했다. “그레타 툰베리가, 콜드플레이가, 네가 비행기를 타더라도 누구도 비난할 수 없어” 생각해보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한 다짐에 대해 완벽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닌가?
개인적 차원의 실천보다 시스템의 전환이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혁명을 위해서, 함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개인의 죄책감을 증폭시키는 것이 아니라 결국 시스템을 바꾸어 같이 변화의 세상에 살아야한다. 가뜩이나 시간이 부족한데 자꾸만 변화에 역행하는 안들이 쏟아지니 이야기를 좀 들어달라고, 생명으로 살아가자고, 똑바로 하라고 거리에서 소리쳤고, 작년 말 제주 제2공항 건설은 부동의를 얻어낸다. 그렇지만 바라는 대로 사회가 바뀌기에는 너무 아득하다. 적어도 내 삶이라도 원하는 세상이었으면, 그러한 형태였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 내가 비켜선 자리에 많고 다양한 생명이 어우러지는 그런 세상. 다짐을 지켰는지 아닌지 수치로 환산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다짐이 생겨나기까지의 간절함과 한번 해보겠다는 마음 씀씀이라 생각한다. 각자의 자리에서 마땅히 최선을 다하는 시민들은 그걸로 충분하다. 마음 한 켠 떠다니던 부채감은 군산 하늘을 나는 저어새처럼 서서히 하늘을 비행한다.
글. 김진아 활동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