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토크 후기] 인간을 차별하면서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2022.05.23 | 행사/교육/공지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의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강연 후기
녹색연합X창비 기후위기 특강: 인간을 차별하면서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

지난 4월 28일 창비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녹색연합과 창비가 공동 주관한 기후위기 특강이 열렸다. 최근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를 출간한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가 “인간을 차별하면서 지구를 지킬 수 있을까?”라는 주제로 신간의 내용을 소개하고 참석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오랜만에 열린 반가운 현장 강연이었기에 독자들과 만나게 된 연사의 얼굴에도, 책을 들고 자리를 가득 메운 참석자들의 얼굴에도 설렘이 가득했다. 그래서였을까. 예고된 강연 시작 시간은 저녁 7시 30분이었지만 조효제 교수와 참석자들은 정명희 녹색연합 전문위원의 진행에 따라 7시가 조금 넘은 시각부터 자발적인 사전 대화를 시작했다. “기후위기라는 두려운 위기상황을 돌파할 방법이 과연 있을까요?” “우리가 희망을 가질 수 있을까요?” 성실한 학생이 신뢰하는 스승에게 상담을 청하듯, 환경위기를 둘러싼 현재적 고민들이 봇물 터진 듯 쏟아졌다. 생태학살의 현황부터 최근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의 폐해까지, 듣는 이로서는 심각해질 수밖에 없는 무거운 단어와 주제들이 오가는 자리였지만 연사는 시종일관 웃음과 유머를 잃지 않고 대화를 촉구하며 희망을 이야기했다.

인권사회학자가 왜 환경문제를 연구하는가

조효제 교수는 옥스퍼드대와 런던정치경제대(LSE)에서 사회학을 공부했고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에 기여했으며 세계인권선언 70주년 기념 유엔본부학술대회 기조강연자로 나선 바 있는 저명한 인권사회학자다. 그런데 그의 신간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는 환경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저는 오랫동안 인권학자로 살아왔는데 왜 환경을 말하는 걸까요?” 연사는 모두가 궁금해 할 만한 질문을 던지며 강연의 문을 열었다.

답은 간단했다. 인권을 연구하면서 환경문제를 간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메리 로빈슨 유엔인권최고대표는 2015년에 이미 “기후변화는 21세기 인권의 가장 큰 위협이다”라고 경고했다. 2021년 미첼 바첼레트 유엔인권최고대표는 인권의 세가지 위협으로 ①기후위기 ②생물다양성 상실 ③공해와 독성물질을 꼽았다. 연사는 인권과 환경 문제의 연계성에 대한 연이은 경고를 듣고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시류에 뒤처져 있었나 싶기도 했습니다.” 국제사회는 이미 인권-기후 위기라는 복합위기에 대처하기 시작했는데, 국내의 인식 전환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인식에 부딪혔다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이에 집필하기 시작한 『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에서는 자연스럽게 “인권과 환경을 잇는 사회학적 스토리텔링을 시도했고 인류세 시대에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한편 새로운 전환의 길을 제안하고자 했다”고 밝혔다.

에코사이드의 국제범죄화, 왜 필요한가

이미 기후-생태 위기가 복합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진단 아래 조효제 교수는 에코사이드(ecocide)의 국제범죄화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생태살해를 의미하는 에코사이드는 본래 전쟁 시 벌어지는 환경파괴를 지칭하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지만 최근에는 그 의미가 확장되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기업과 정부가 발전과 성장이라는 미명 아래 벌이는 무분별한 환경파괴 역시 에코사이드라고 말한다. 에코사이드는 그 자체로 심각한 문제지만 인간집단의 절멸, 즉 제노사이드(집단살해, genocide)와도 연계되어 있다는 것이 연사의 주장이다. 브라질 대통령 보우소나루의 무분별한 아마존 개발은 삼림파괴뿐만 아니라 그곳에 거주하던 토착민들의 사회적 말살을 낳고 있다. 또한 코로나19로 가장 큰 고통을 받은 이들이 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살아가는 이들이었듯,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연계 현상은 언제나 약자가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으며 사회적 다양성을 말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를 막기 위한 해법으로 조효제 교수는 에코사이드를 국제 핵심범죄의 목록에 추가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현재 4대 국제 핵심범죄는 최악의 인권유린으로 이어지는 ①제노사이드 ②반인도적 범죄 ③전쟁범죄 ④침략범죄의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다섯번째 범죄로 에코사이드를 추가하자는 제안이다. 전지구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생태살해를 핵심범죄로 지정해 엄중한 책임을 묻기 시작할 때, 비로소 칸막이식 사고로 분리되어 있던 인권-환경 운동의 융합과 분야 간 가로지르기의 계기도 마련될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다.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의 현재진행형, 우크라이나 전쟁

조효제 교수는 현재진행형으로 벌어지고 있는 에코사이드-제노사이드 연계 범죄의 사례로 우크라이나 전쟁을 꼽았다. 우크라이나 영토를 무자비하게 짓밟고 있는 러시아 군대가 학살하고 있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군사작전으로 방대한 양의 탄소 배출이 이루어지고 있고, 도시 폭격으로 인한 분진, 석면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미사일과 폭탄 투하는 토양과 물에 중금속 오염을 일으킨다. 자연보전지역의 파괴는 물론이고 우크라이나의 철새도래지, 야생동식물 파괴로 인한 대규모 생태계 훼손 또한 일어나고 있다. 연사는 이런 사례를 침착하고 담담한 어조로 차례로 언급해나갔다. 결국 이 전쟁에서 ‘침묵의 희생자’(a silent victim)은 우크라이나의 자연이라는 지적에 청중의 분위기는 한때 가라앉기도 했다. 왜 인권의 문제가 환경문제로 이어지는지, 또는 환경문제가 곧 인권문제일 수밖에 없는지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은 이 비참한 현실을 어떻게 타개할 수 있을지 다 함께 암담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착한 시민이 아닌 훌륭한 시민이 되자

“지금보다 더 나아지긴 어렵습니다. 그러나 미래는 우리가 하기 나름입니다.” 연사는 이렇게 말하며 차별을 지양하고 다양성을 옹호하는 인권의 원칙을 기후-생태 위기 상황에도 적용해보자고 말했다. 사회다양성을 말살하는 제노사이드와 생물다양성을 말살하는 에코사이드의 이중 폭력을 작동하게 하는 성장 중심의 사회경제시스템이 갖는 위험성을 지적하며,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사회-생태 전환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그렇다면 시스템의 전환을 바탕으로 시민의 관점에서는 어떻게 움직여야 할까. 연사는 “거창한 영웅적 행동을 요구하지는 않지만 평범한 침묵을 장려하지도 않는 훌륭한 시민이 필요하다”라는 스탠리 코언의 말을 인용하며 “착한 시민을 넘어서 훌륭한 시민이 되자”라고 제안했다. 텀블러를 사용하고 재활용을 실천해 조금이라도 환경위기 해결에 도움이 되려는 ‘착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량소비체제와 경제성장주의, 에코사이드에 적극적인 분노와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녹색가치와 녹색인권을 지향하는 ‘훌륭한 시민’이 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강연이 끝난 뒤에도 열띤 질의응답이 오갔는데, 환경운동을 하다보면 자꾸만 무기력에 부딪히게 된다는 한 청중의 호소에 붙인 조효제 교수의 전언은 무척 인상적이었다. “세상은 생각보다 금방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변화하게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천천히, 하지만 본질적으로 바뀌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세상은 긍정적으로 변화하리라는 연사의 굳은 믿음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세상을 휩쓴 전염병으로 인해 약 2년 반만에 열린 저자와 독자의 만남이라는 점도 뜻깊은 행사였지만,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이어지는 열띤 대화 속에서 어느덧 엔데믹이 눈앞에 다가와 있음을 실감하기도 했다. 미래는 암울해 보이지만 인류가 합심해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지난한 위기를 건너왔듯, 인류세를 무사히 건너기 위해서라도, 우리가 작은 희망을 갖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많은 대화와 교류의 장이 필요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였다.

– 김새롬(<침묵의 범죄 에코사이드> 담당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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