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진산불현장 참가후기] 함께 했던 발걸음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2022.06.28 | 행사/교육/공지

지난 6월 25일 토요일, 장마 속 햇살이 유난히 반짝이던 날,

녹색연합은 시민들과 함께 검게 타버린 숲을 위로하고, 파릇파룻 새로이 돋아나는 생명을 응원하기 위해 울진 산불현장과 금강소나무 숲길을 다녀왔습니다. 그을린 숲과 울창한 숲을 따로 또 같이 걸으며 기후위기 속 우리의 할 일을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긴 여정을 함께 한 김현아님의 참가 후기를 소개합니다.

글 : 김현아

압구정에서 출발한 버스는 장장 4시간의 이동시간을 거쳐 울진 산불 현장에 도착했다.
도시에서 많이 떨어진 곳이라 내 주위 많은 사람은 울진에 산불이 났는지도 모른다. 사실 나도 뉴스로만 피상적으로 받아들였다. 뉴스에서 피해가 얼마나 큰지 보도해도 체감이 잘 되지 않았다. 어떡해, 한마디와 한숨 한 번으로 산불에 관한 걱정이 그쳤다.

산불 현장에 도착하니 뙤약볕이 내리쬈다. 매미 소리가 들려왔다. 산불을 이기고 우렁차게 울리는 매미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불이 났어도 산속에 조금의 그늘이 있을 줄 알았다. 오산이었다.
불이 난지 3개월가량의 시간이 지나서인지 탄내가 나지는 않았지만 산 속에 들어가면 흔히 느껴지는 푸르른 냄새가 나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나무들은 대부분 다 벌거벗고 있었다. 본래의 모습을 완전히 잃고 검은 모습으로 우뚝 서 있었다. 나뭇가지를 살짝 만져보자 재가 잔뜩 묻어 나왔다. 입고 있던 옷 또한 언제 묻었는지도 모를 재가 곳곳에 묻어있었다. 그때야 알았다. 이곳의 처참한 죽음을 담기엔 산불 현장.이라는 말은 너무나 부족했다.

까맣게 불타버린 산불 현장의 처참한 모습

산양은 잘 살고 있을까? 울진 숲, 산양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무인카메라 설치 모습


우리가 갔던 산 보다 건너편에 있는 산이 산불 피해가 더욱 극심하다고 했다. 푸르른 소나무는 없고 단풍처럼 붉게 물든 소나무들이 보였다. 붉은 소나무들은 모두 죽은 소나무라고 한다. 어디를 둘러봐도 죽은 소나무가 눈에 보였다. 건너편 산은 얼마나 더 처참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다음 코스인 금강소나무 숲길로 갔다. 화재 당시 불이 금강소나무 숲길까지 번졌지만 다행히 초입 부분에서 진화했다고 한다. 만약 불길이 잡히지 않았더라면 멸종위기종인 산양은 멸종에 다다랐을지도 모르고,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돌봐왔던 금강소나무숲을 순식간에 잃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화재의 흔적은 남아있었다. 땅을 손바닥으로 짚어보자 숯검정이 잔뜩 묻었다.

다행히 화마가 비껴간 너무도 아름다운 숲 – 울진 금강소나무숲길


우리는 가끔 숲이 살아있다는 걸 잊곤 한다. 이번 여정에서 숲에서 5분간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숲을 느끼는 시간을 가졌다. 5분의 시간이 굉장히 길 것 같았다. 잠깐의 틈나는 시간에도 스마트폰을 달고 살았으니까. 그런데 숲을 느끼기에 5분은 너무 짧았다. 숲은 조용하면서도 분주했다.
바람에 나뭇잎이 나부끼는 소리, 풀벌레, 새 소리를 들으며 나무를 보니 나무의 울퉁불퉁한 기둥이 나무의 삶을 닮았을 것 같다는 육감이 들었다. 시간을 내어 숲을 더욱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초록색을 좋아하는 것 같다. 신호등, 도로표지판, 소주병, 칠판 등 우리 삶 곳곳에서 초록색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생명력 있고 마음을 치유해주는 초록은 자연에 있다.
인류는 편의를 위해 수많은 자연을 멸종시켰다. 지구 바깥에서 생물 다양성을 추구하며 지구를 살핀다면 멸종위기종은 호모사피엔스가 되어야 할 것이다.
달의 표면에 찍힌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이다. 하지만 그의 발자국에는 아무런 생명력이 없다.
우리가 지금이라도 각자의 위치에서 자연을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가 내뱉는 숨은 생명을 불어넣는 숨이 될지도 모른다.
우리의 발자국이 찍히는 곳에 푸른 새싹이 돋았으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현장에 있을 때보다 현생으로 돌아와 산불 현장을 되돌아보니 마음이 더 아픕니다. 제 주변은 변한 게 없거든요. 하지만 절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어린이라는 세계>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는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로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녹색연합이 절망의 공간으로 저를 데려가, 희망을 주었습니다. 함께 걸었던 발걸음 오래도록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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