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것이 아름답다 김은주의 얼렁뚱땅 순례 참가기
처음부터 순례단과 함께 하지 못하고 순례 사흘째 목포에서부터 저의 순례를 시작했습니다. 신혼여행에서 막 돌아온 한상민·신근정 부부가 내내 샘나는 짓(?)만 해대는 통에 서울 떠나는 기차에서부터 이미 저는 순례였습니다. 흑흑.
‘목포의 눈물’노래 때문이었는지, 목포 하늘에선 봄비가 내리고 있었구요. 장 보러 오는 길에 마중 나왔다는, ‘신혼 부부 예우 차원’에서 차로 모신다는 김태호 간사님 덕분에 숙소인 영암 산포리 마을회관까지 편하게 왔습니다. 아직 순례단은 갯벌을 벗어나지 못하고 열심히 해남에서부터 올라오는 중이라 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영암·금호 방조제 준공탑에 갔습니다. ‘96년 11월 6일 대통령 김영삼’이 자랑스레 새겨져 있는 그 거대한 탑에서 이 땅의 개발정책이 어디까지 잘못되어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글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영산강유역 농업종합개발사업으로 추진된 그 곳 영암·금호 방조제에는 ‘조국 발전과 민족 번영을 성취하고자’축조된 것이라 합니다. 그 탑을 세운 사람들이 혹시라도 무엇이 진정한 발전이고, 무엇이 제대로 된 민족의 번영인지, 한반도 땅이 완전히 거덜난 다음에 만세를 부를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지 뭐 그런 것까지 대답해 주리라곤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탑에 새겨진 “거대한 대자연에 도전하여 이를 이겨내고 방조제 공사를 완공”했다는 촌스러운 ‘간척역군상’이 우리의 오늘을 보여 준다 하겠습니다.
자연을 도전의 대상으로, 극복하고 이겨내야 할 상대로 생각하는 것은 상당히 전근대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습니다. 자연을 인간 외부의 또다른 경쟁 상대로 생각하고 끝없이 호전적으로 대하던 서구 철학을 껍데기만 수용해 지금껏 개발의 면죄부로 삼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니 참, 한숨만 나옵니다. “영남·금호 방조제가 수자원과 토지자원을 조성하고 육상교통을 실현함으로써 농업·공업·상업·관광 등 서남권 개발의 큰 기틀을 마련하는 사업의의를 기념하고자 이 웅비의 탑을 세운다”는 말 역시 빛 좋은 개살구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수자원에는 바다 속 생물을 생명체로서 존중하는 마음은 조금도 보이지 않는데다 서남권 개발의 기틀을 마련한다던 목표와는 달리 방조제 건설 이후 들어선 공단 지역엔 아직도 분양되지 않고 먼지만 쌓여 가는(교통이 좋질 않고, 경제적이지 못한 사회·지리적 위치 때문에) 공장이 한두 개가 아니라 합니다. 이쪽 공단에 생각만큼 호응을 얻지 못하자, ‘그래, 그럼 딴 데로 가지 뭐’하고 시작한 것이 바로 새만금 간척사업입니다.
새만금도 실컷 공사해 놓고 사람들이 외면하면 그 때는 또 어디로 갈 생각이랍니까? 철학도, 사상도, 그렇다고 경제적인 지각이 있는 것도 아닌 우리의 주먹구구식 정책은 답답하기만 합니다. 저 길고 넓은 방조제를 보며 사람들은 ‘인간이 자연을 싸워 이긴 결과’라 생각할까요? 언젠가는 내게 돌아올 업보임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텐데요. 녹색순례단이 갈 길이 멀고 험해 보입니다.
산포리에서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은 각 조별로 함평의 돌머리까지 이동하기로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미 버스를 타고 목포로 간 뒤, 우리 2조만 지나가는 트럭을 세워 짐칸에 타고 삼호터미널까지 갑니다. 조장인 조태경 간사님과 생태팀 이유진 간사 덕분입니다. 그냥 쉽게 버스 타고 가서는 도저히 순례라고 할 수가 없다는군요. 삼호터미널에서 목포까지는 시외버스를 탔는데, 휴가 나온 군인과 그의 애인, 그리고 촌로 몇 분까지 합해 전부 7명의 승객이 타고 있습니다. 선전물을 나눠 주며 녹색순례단 소개도 하고, 새만금 얘기도 합니다. 순식간에, ‘저는 어렸을 때 부모를 여의고…’하는 분위기가 조성됐지요. 다들 관심있게 들어 주셔서 다행입니다.
목포터미널에서 열심히 선전전하고 다시 도로에 나가 지나가는 차를 세웠습니다. 이번에 얻어탄 차는 건설일을 한다는 아저씨의 봉고차였는데, “갯벌? 그거 메우면 안 되지, 당연히. 왜냐구? 어… 거야, 낙지를 못 잡아 먹잖아”어렸을 적엔 무지 많았던 낙지를 요즘은 잡기 힘들어졌다며 아저씨는 꽤나 명확한 이유를 들어 줍니다. 목포대학에 볼일이 있으시다길래 거기까지 차를 얻어타고 내려서 목포대학생들에게 다시 유인물을 나눠 주며 교문을 잠시 소란케 했습니다. 조금씩 비는 내리기 시작하고 학생들은 마침 중간고사 기간이라 마음이 바빠 보입니다. 그래도 비 추적추적 맞으며 소리지르고 선전물 나눠 주고 그러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아님, 호기심이었을지도…) 관심있게 들여다보는 이들도 있고 설명을 해 줘도 그냥 말아쥐고 가 버리는 이도 있습니다. 동아리관까지 쳐들어갔다가 다시 차를 얻어타고 이동합니다.
이번에는 냉동차입니다. 운전석 옆에 한 사람 앉고 나머지는 전부 깜깜한 냉동차 속에 앉았습니다. 숙주나물이며 만두며 하는 것들을 운반하는 작은 차였는데 짐을 부리고 돌아오는 길이라 마침 비어 있었습니다. “자리가 이래서 원… 죄송해서…”눈이 맑은 그 광주청년은 계속 미안해했지만, 저희들은 마냥 즐겁고 재미있었지요. 좋은 일 하시는데 자기 같은 사람은 부끄럽다고, 열심히 해 달라고 하십니다. 이것 참, 차도 얻어타고 격려도 받았습니다. 남녘땅에 살고 있는 좋은 분들 차례로 만나게 되는군요.
자, 다음엔 또 트럭입니다. 이번엔 함평 시내로 들어가야 해서 자리가 세 개뿐인 트럭 앞자리에 무려 다섯 명이 끼여 앉게 됐습니다. 티코에는 12명이 탄대, 이 정도면 양호하지… 해가며 함평군청까지 왔습니다. 군청 앞 우리에는 반달곰 네 마리가 자라고 있었는데 군수 취임 기념으로 들어온 세 살짜리 곰이었습니다. 생태팀 이유진 간사님, 새끼곰은 자라는데 우리가 스트레스 줄 정도로 면적이 좁다고 흥분합니다. 그래도 다른 동물원에 있는 곰보다는 훨씬 활발하고 움직임도 좋다고 다행이라는군요. 동물원에선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을 것이니 새끼곰들도 힘이 든 게지요.
녹색순례단이란 걸 알고는 무지 친절하게 대해 준 군청 공무원 덕분에 돌머리까지는 또 승용차를 타고 갔습니다. 걸어가겠다고 해도 막무가내였지요. “이거 순례 맞아?”하는 얘기들 나누며 도착한 함평 갯벌엔 풍요로움으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흥분해서 뛰어다니다가 갯벌에서 도시락을 먹고 그리고 돌머리마을로 접어듭니다. 그 날의 숙소가 거기 어민회관이었거든요. 돌머리엔 유채꽃이 한창인데다 마늘이 푸르게 푸르게 바람에 일렁이고 있어서 마을 끝에서 끝까지 거리가 꽤 되는데도 그 걷는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마을 중턱에 올라 바라보니 천지 사방이 끝간데없는 갯벌이요 그 너머엔 또 수평선이었지요. 이제 내일 아침이면 다시 서울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지 거 참, 아쉽던데요.
물도 없고, 화장실도 없는 거기 어민회관에서는 동네 할머니 도움으로 겨우겨우 밥도 해 먹고, 세수도 할 수 있었지요. 서른 명이 넘는 식구들이 오가며 폐를 엄청 끼쳤는데도 싫다 소리 않으시고 넉넉하게 품어 주시니 어찌나 고맙던지요. 어딜 가나 좋은 사람들 만날 수 있는 걸 보면 세상엔 좋은 사람이 훨씬 더 많은 모양입니다.
정작 녹색순례에 갔으면서도 짧은 일정으로 제대로 걷지도 못하고 다시 서울입니다. 작년 녹색순례 때 강원도 골골을 다니며 송전탑이 망쳐 놓는 이 나라 산하를 보고 온 후 한동안은 어딜 가더라도 송전탑만 먼저 들어와 마음 아팠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때보다 훨씬 짧은 일정으로밖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한동안은 그 너른 함평 갯벌 덕분에 ‘그래도 거기가 최고 좋았어’하는 소리 늘어놓지 않을까 싶네요.
녹색순례단 여러분, 전부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