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 소장
미군기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진작업뿐만 아니라 지역운동을 해온 파주 토박이 ‘현장사진연구소’ 이용남(48) 소장.
어린 시절, 그는 광산 노동자들을 만났다. 그 자신도 장명광산에서 일하면서 광산노동자들이 진폐증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았다. 이 사실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사진이었다.
“장명산이 광산작업으로 사라져버렸어요. 주변의 학교 교가는 모두 장명산으로 시작한다고요. 우리는 장명산을 봤지만 후세대들은 장명산이 어디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하는 거예요. ‘아, 지켜야 하는 것은 꼭 지켜야 하는구나’ 작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 작은 것을 지키지 못하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어요. 작은 것이 뭐냐. 그것은 우리의 일상생활이더라고요. 실은 가장 근본적이고 가장 큰 것인데도 권력에서는 그것을 가장 작게 취급하는 거예요.”
우리 일상생활을 파괴하는 것이 무엇인가. 산이, 들이 없어지고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 말고도 권력이 어떻게 삶을 파괴하는가에까지 그의 생각이 이르게 되었다. 파주에서는 미군이라는 오만한 권력에 의해 인간, 삶, 자연의 파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우선 그는 자연마을을 찍기 시작했다. 대대로 내려오는 마을들이 사라지는 것을 내 힘이 없어서 막지 못한다면 우선 사진으로라도 기록을 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파주시에 사진을 제시하며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마을에 대한 제안을 해왔다. 그의 노력은 어느 정도 현실에 반영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군문제 만큼은 이렇게 되지 않았다. 사진가로서 할 수 있는 데까지 하자고 마음먹은 그의 작업은 군사시설과 민통선을 드나들며 현장사진으로 이어졌고 그 때문에 고발, 고소도 당했다.
“25사단에서 저를 고발했어요. 영농인으로 위장해서 민통선을 편법으로 들어갔다고. 나는 편법으로 들어갔지만 그들이 그 안에서 하는 일은 불법이란 말이에요. 불법한 사람들은 처벌받지 않고 편법한 사람만 처벌받는 사회라면 나는 거부하겠다는 거요. 단지 편법으로서 불법을 지적하는 건데 어떻게 불법이 편법을 지적할 수 있죠? 나는 수용 못하겠다고 해서 지금은 계류 중이에요.”
그는 지난해 7월 16일, 파주시 조리면 뇌조리의 캠프 하우즈 뒷문 공장증축 공사현장에서 미군 고압선에 감전돼 팔과 다리를 잃은 전동록(54) 씨를 세상에 알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 뒤로 지난 1월 9일에는 전동록 씨 사진전을 열기도 했다.
“왜 고통스런 사진을 주로 찍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나는 사진에 나타나는 전동록 씨 모습이 고통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지 않아요. 오히려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주저앉아 버리는 것이 아니라 팔다리가 다 잘렸어도, 이 사람이 그것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불어넣어 주려는 거예요. 고통 속에서도 당당하게 웃고, 그렇게 헤쳐나가는 거예요.”
그의 사진은 장롱 속에, 전시장의 액자 속에 갇혀있기를 거부한다. 약수터, 길거리가 그의 말처럼 ‘아무데나’가 그의 전시장이다. 사진은 누구라도 가장 편하게 자기 할 일 하면서 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그의 사진은 삶을 담고 그의 사진은 삶 속에 있다.
미군기지 순례길, 파주에서의 이틀 내내 그는 우리와 함께 했다. 누구보다 파주를, 사람을 사랑하고 미군기지의 상황을 잘 아는 안내자로, 기록자로.
“내 평생에 쫓아다니면서 이렇게 많이 찍어보기는 처음이에요. 사진가들은 그림이 안 되거나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면 셔터를 누르지 않아요. 그런데 이렇게 열 통이나 찍었잖아요.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에. 아름다움은 소외된 사람들, 지켜야 할 것에 대한 고통을 안고 가는 거예요. 제각기 등에 지고 땀을 흘리면서 한발 한발 가는 거죠. 이것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어요? 이것만큼 힘이 되는 게 어디 있어요? 그러니까 찍고 싶은 거야.”
열 통의 필름을 꺼내보이며 웃음짓는 그는 사진가를 넘어, 운동가를 넘어 누구보다 아름다운 ‘사람’이었다.【녹색순례 특별취재팀 – 사이버 녹색연합】